어떻든, 이북에서 밀고 내려오는 정면에 있는 부대에 대전차 장애물을 설치하는 등 전투를 지휘해야 할 지휘관이 부재했던 것이다. 결국 26일이면 인민군 전차가 파죽지세로 의정부까지 밀고 내려오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서울로 오는 직통의 길을 막지 못한 것이다. 9연대가 맡고 있는 구역이 동두천, 포천, 한탄강지역인데 포천북방의 만세교, 양문교 다리를 폭파했으면 그렇게 쉽게 건너 올 수 없는 것이다.
사실 유사시를 대비해 공병대는 정면으로 서울로 통하는 포천북방 만세교, 양문교 등지에 폭파장치를 해놓았었다. 다리 양쪽에는 교초(橋礎)가 있다. 교초가 다리 중에서 제일 강한 부분이고 교초가 폭파되어야만 다리가 끊어진다. 잘못하면 다리가 손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콘크리트 바로 뒤편에 있는 교초의 한가운데 뒤쪽으로 구멍을 여러 개 뚫는다. 유사시 그곳에 TNT 등 폭약을 장전해 다리를 절단시키는 것이다. 구멍에는 임시로 전주(電柱)를 여러 개 꽂아 놓는다. 전봇대를 잘라서 바닥에 맞추어 박아 놓은 것이다. 그러면 평상시에는 그 다리위로 차들이 왔다 갔다 한다.
이렇게 해놓은 것은 유사시 그 구멍을 금방 팔수가 없기 때문이다. 적이 들어올 때는 이미 늦는 것이다. 유사시 심어놓은 전주를 빼낼 때는 꺾쇠로 된 곡괭이 같은 연장으로 찍어 제치면 끌려 올라온다. 그리고 다리 콘크리트 두께에 따라 양을 계산해 TNT 등 폭약을 넣고 폭파를 하는 것이다.
우리는 6·25 직전 각 중대 소대장들의 지휘 하에 요소에 폭파장치를 다 해놓았고 유사시 명령만 있으면 터뜨리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인민군 전차가 건너올 때까지 이것을 하나도 터뜨리지 못했다. 폭약은 공병대대 화약고 안에 있었다. 그 폭약을 가져와야 할 거 아닌가?
대대에 M1소총도 있고 폭약도 있는데, 도망 갈까봐 황급히 차에 태워 보낸 것이다. 폭약이 없으니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을 뿐더러 책임 있는 지휘관이 없으니 이런 총체적인 상황을 파악해 명령을 내리지 못했다. 폭파는 대대장의 명령을 받아서 할 수 있는, 대대장의 지휘 하에 있는 것인데, 어처구니없게도 장치를 다 해놓고도 명령을 내리는 지휘관이 없어 인민군 전차가 그 큰 다리를 통해 포천, 동두천, 의정부로 파죽지세로 몰려온 것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를 현장에 있었던 우리나 알지 군 수뇌부는 잘 모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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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침의 최존선에 선 탱크부대 / 사진은 훈련하는 인민군 전차부대 모습으로 남한당국은 북의 남침 준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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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육박공격대, 결사대를 조직할 수밖에 없는 급박한 상황을 맞은 것이다. 6월 25일 12시 경. 나는 소대 30명 중에서 10명의 결사대를 조직했다.
그때 10명을 뽑는데 “장가 안 간 사람 손들어!” 해서 미혼자를 기준으로 했다. 장남, 기혼자, 독자는 제외시켰다. 그때 빠진 소대원들은 자기들도 결사대에 넣어달라고 조르기도 했는데, 물론 의협심이나 전우애 같은 것이 깔려있었지만 그때만 해도 전쟁 맛을 덜 봤기 때문이기도 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있잖은가.
결사대를 뽑고 즉석에서 연대장으로부터 대전차지뢰 쓰는 법을 약식으로 배웠다. 그러니까 전쟁 경험이 전혀 없다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우리는 적의 전차를 한 번도 본적이 없었다. 대전차 지뢰를 본 일도 없었다. 그러니 무식한 결사대였다.
우리는 지뢰를 지참해 트럭을 타고 동두천으로 향했다. 의정부에서 동두천 가는 1번 국도의 야산을 지나니 동두천 벌판이 나왔다. 거기서부터는 도로도 좁고 트럭도 다 보일 정도로 시야가 확 트였다. 그곳에서 트럭을 내렸다.
나는 3중대에서 데리고 있던 최태원 선임하사관한테 결사대를 제외한 소대원 20명을 지휘하도록 해서 그곳에 잠복시켰다. 최태원 상사는 내가 아끼던 부하였다. 그때 그는 내 부관이었고 소대 상사였다.
나는 그때 칼빈을 매고 있었다. 최 선임하사는 내게 “칼빈, 총검술 아무 소용없습니다. M1소총을 가지고 가십시오,”라고 권했다. 그는 또 “결사대원들은 전차지뢰를 놓아야 하니 지뢰만 하나씩 지참하고 총은 소지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의견을 냈다. 최 선임하사는 공비토벌에 많이 나갔던 역전의 용사였다. 까딱하면 총을 적한테 빼앗길 수 있기 때문에 10명의 결사대원들은 대전차지뢰만 지참하고 나만 M1 소총을 둘러매고 총탄을 찼다.
나는 최 선임하사에게 “만약 우리가 후퇴하면 엄호사격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비장한 각오로 10명의 결사대를 이끌고 논바닥을 기어 신작로를 하나 넘었다.
동두천 쪽으로 접근해보니 인민군 전차가 일렬종대(一列縱隊)로 40여대가 쫙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 기세에 위압감이 몰려왔다. 그러나 우리는 물러설 수도 피할 수도 없는 운명과 맞닥뜨린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