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저 멀리 크릉, 크릉, 하는 소리와 함께 인민군 전차가 오는 게 보였다. 보니까 전부 다섯 대로 대형전차가 아니고 척후전차였다. 장갑차였는데, 그것 또한 우리는 처음 봤다. 장갑차는 단지 덩치가 작은 전차일 뿐이다. 그러니까 보병이 아닌 장갑차로 무장한 척후부대였던 것이다.
척후병 공포소리를 들었기 때문인지 인민군 장갑차는 오다가 서고 오다가 서며 잔뜩 경계를 하며 서행을 하며 전진해왔다. 마침내 장갑차는 바위산을 끼고도는 커브 있는 지점으로 들어왔다. 나는 명령을 내렸다. 먼저 발전기를 돌려 암반을 폭파했다. 콰과쾅! 요란한 굉음소리와 함께 암반이 무너졌다. 이어 지뢰가 폭파하기 시작했다. 파편이 튀는 와중에 선두의 한 대는 완전히 묵사발이 되었고, 두 번째 장갑차는 논으로 굴러 떨어졌다. 나머지는 전부 올스톱했다.
각 전차 간격은 30여ｍ 정도였다. 전진할 때 한꺼번에 몰살될 수 있으니 그런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허를 찔린 그들은 허둥거리며 우회(迂廻)를 시도했다. 나는 공격 명령을 내렸다. 화기, 대전차포가 있으면 더 좋겠지만 그 대신에 50㎜ 기관총을 가지고 있었던 것만도 다행이었다. 우리 소대원들의 중기관총과 로켓포가 인민군 장갑차를 향해 불을 뿜었다.
우리가 기관포를 쏘니 묵사발 된 전차와 논바닥에 빠진 전차의 전차병들이 혼비백산, 전차를 빠져나와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뒤에 있는 석 대의 전차병들은 나오지 못하고 죽은 듯이 가만히 있었다. 앞의 두 전차병은 그 전차 아래로 숨었다.
그러나 세 대의 장갑차를 몰살시키기엔 워낙 간격이 멀었다. 결국 그들은 뒤돌아 우리의 사정권을 벗어나 도망을 갔다. 방공호를 나와 기관총을 쏘며 추적했지만 인민군 장갑차는 우리 척후병이 나가 있던 지점인 고개를 넘어가버렸다.
그 다섯 대의 장갑차는 우리가 어떻게 배치가 되어 있고, 어떤 상태인지를 파악할 목적을 가진 척후부대였다.
나는 연대에 연락병을 보내 장갑차 두 대를 포획했다는 보고를 했다. 얼마 후 노획한 장갑차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 연대에서 정보주임인 대위가 나왔다. 정보주임이 연대장에게 보고한 후 철수했다. 연대본부로 가니 연대장이 “장하다! 훈장 신청했다!”며 어깨를 부여잡았다. 이 전과는 내가 처음 올린 전과였고,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6·25에서 국군이 올린 3번째 전과였다. 나는 이 전과로 휴전직전인 1953년 충무공 훈장을 받았다. 훈장번호는 10003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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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훈장 기념촬영 / 1985년 한국전쟁에서 국군이 올린 3번째 전과로 받은 충무공 훈장을 비롯해 공직을 지내면서 받은 훈장을 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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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6월 25일 당일 소기의 전과도 있었으나 국군은 전반적으로 인민군을 막기에 역부족이었다. 우리 소대 또한 이날 밤 인민군에 밀려 송추를 거쳐 창동으로 후퇴해야 했다.
6월 26일 오후 1시 경 인민군은 의정부에 진입했다. 그날 우리는 3번째 결사대를 준비했다. 창동에서부터 우리는 연대가 아닌 사단의 지시를 받는 지휘체계로 바뀌었다. 그런데 병사들의 사기가 문제였다. 인민군의 막강한 위력 앞에 수유리에서부터는 꾀부리는 사병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결사대 자원(自願)도 회피했다.
그날 밤 어떤 소령이 사단 사령부에서 왔다고 하면서 “공병대!”하고 불러서 가니 그는 “특공대로 출동준비를 하라.”고 했다. 그는 지금의 의정부와 방학동 사이 망월사역 근처에 몇 십대의 전차가 집결해 있다며 “야간이고 잠복하기 쉬우니까 야습(夜襲)을 하라.”고 명령했다.
그때부터 나는 무조건적인 출동이 아니라 이성적인 상황분석을 하고 문제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정보가 그것밖에 없고 포도 없는데 무조건 가서 무얼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왜, 공병대가 그런 것도 없나?”
“몸만 겨우 도망 나온 상태입니다!”
결국 그는 더 강요 못하고 갔다.
우리가 수유리를 거쳐 미아리로 남하할 때 수유리 쪽에서 보병전투를 했다. 그러나 공병이든 보병이든 소속도 잃어버리고 오합지졸이었다. 우리 공병대만 하더라도 장교는 10여명이었지만 사병은 100명도 안 되었다. 700명 되는 대대가 전사, 전선이탈로 그런 상태가 된 것이다. 그래서 27일 창동방어선의 주력이 미아리고개까지 후퇴했을 때부터는 독전대가 뒤에 붙어 있어가지고 뒤로 빠지는 사병들을 감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