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남하한 40여대의 인민군 전차부대가 미아리고개까지 밀고 들어와 쫙 깔렸다. 그때 수유리 전선부터 후방의 보병 25연대가 올라와 있었다. 우리 부대가 수유리에서 미아리고개까지 밀려내려 갈 때 25연대가 지원을 나와 신규 배치된 것이다. 25연대는 전투에 한 번도 참가 하지 않은 정예부대였다.
서울의 초입인 미아리고개에서 진입과 사수를 놓고 피아간의 절체절명의 대치를 했다. 보병 25연대가 미아리고개에서 40여대의 인민군 전차와 대치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이때 대대장인 소령을 찾아가 건의를 했다.
“저 전차에 소총이나 기관총을 쏘면 안 됩니다!”
“그래. 왜 그런가?”.
“저놈들이 가만히 있다가 우리가 사격을 하면 위치를 알고 단방에 포를 쏩니다!”
“그런데 어떻게 저걸 보고 가만있나!”
“그러나 절대 전차에 먼저 사격하면 안 됩니다. 보병이 기어 올라오면 그때 공격을 해야 합니다!”
내가 며칠간의 전투경험으로 체득한 인민군 전차부대의 습성에 대해서 설명했지만 대대장은 별로 탐탁치않아 했다. 나는 인민군 전차가 허점을 보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취지였지만 25연대 보병 대대장은 금세 서울시내로 진입할 기세인 적의 탱크를 앞에 두고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폭풍전야 같은 대치 상황에서 우리 공병대는 미아리고개의 길음교를 폭파했다. 미아리고개의 인도교 같은 다리였다. 공격으로 패퇴시키는 것이 어렵다면 일단 더 이상의 진입을 저지시키고 봐야 하는 것이다. 다리를 파괴하자 인민군 전차는 더 이상 건너오지 못하고 정지해 서 있었다.
우리는 대전차 무기가 하나도 없었다. 기껏해야 소총과 박격포와 기관총 정도인데 그 화력으로는 인민군 전차는 끄덕도 안 했다. 보병이 접근을 못하게 하는 정도일 뿐이었다. 우리가 길음교를 끊지 않았으면 전차는 일찌감치 파죽지세로 들어왔을 가능성이 컸다. 다리의 절단으로 그들은 27일 자정까지 정지해 있었다.
보병 25연대가 대대장의 명령으로 사격을 개시했다. 그러면서 인민군 전차부대도 일제히 사격을 하며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다. 그때 우리는 25연대 뒤쪽의 개운산 고지에 있었다. 고지에서 보니 어둠을 뚫고 총알이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적에게 위치를 가르쳐 주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인민군 전차가 조준해서 사격을 가하자 우리 25연대 보병은 오래 버티지 못했다. 대전차 무기가 아닌 이상은 역부족일 수밖에 없었다.
그때 국방헌금으로 구입한 <건국호>라는 잠자리비행기가 있었다. 그 비행기가 3, 4대 날아와 인민군 전차에 박격포탄 공격을 시작했다. 나는 고지에서 그 광경을 지켜봤다. 조종병사가 있고 그 뒤에 앉은 병사가 박격포탄을 들어서 인민군 전차에 던졌다. 그러나 현대적 화력을 갖춘 인민군에게 통하지 못했다. 인민군 전차에서 대공기관포를 쏘아대자 아군의 잠자리비행기는 추풍낙엽처럼 떨어졌다. 그러나 인민군의 미아리고개 돌파는 더뎠다. 옆으로 뚫어서 폭파된 길음교까지는 들어올 수 있었지만 밤새 피아간의 교전상태로 설왕설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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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성금으로 캐나다에서 구입한 훈련기인 T-6 건국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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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우리 소대는 미아리 고개에서 사기가 떨어진 채 후퇴도 전진도 할 수 없는 진퇴양난(進退兩難)에 빠져 있었다. 이미 전투체계도 무너진 상태였다. 고지에 전부 배치되어 있었지만 먹을 것, 탄약 지원이 일절 되지 않았다. 병참지원 하나 없이 그저 사병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쌍권총을 든 헌병들이 미아리 종점에 쫙 깔려서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27일 밤까지 우리는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진퇴양난과 굶주림은 사기저하를 넘어 극심한 상실감을 불러왔다. 나는 그때 총알 한 방을 빈총에 남겨 두었다. 더 이상 다른 방법이 없다면 자결할 생각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