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전선에서 남하하며 한국군은 주력이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 7사단, 수도경비사단, 18연대를 주도하는 수도사단, 수색에 있는 1사단, 그리고 후방에서 올라온 대구의 3사단, 광주의 5사단, 대전의 2사단 등이 다 한강전방에서 전력을 상실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거기다 강북 쪽에 있던 8사단, 원주와 춘천의 6사단이 진퇴양난에 빠졌고, 결국엔 그로 말미암아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한강전선이 무너진 것이었다.
지휘부대가 없는 우리는 맹목적이었다. 어디 소속되어 있다면 낙오가 되더라도 찾아갈 곳이 있는데 소속이 없으면 맹목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당시 사단 공병대와 대전차포 중대가 행방불명되어 직할 전투부대가 전혀 영향을 발휘하지 못했다. 자기의 연대, 몇 대대, 몇 중대, 몇 소대 소속인 줄도 모르는 패잔병, 낙오병을 필요에 따라 모아 놓은 집단일 뿐이었다. 그러다보니 나 같은 육군중위는 발언권이 있었다. 그러나 사령부 직할부대 위에 상관이 있어서 그곳에서 지휘가 떨어져야 되는데 그게 없으니까 육군중위가 혼자 뛰어봤자 별 소용이 없었다.
결국 한강전선에서 퇴각하며 사단사령부가 어디 떨어졌는지 알 수 없는 상태일 정도로 전열이 또 무너져 버렸다. 또 대열이 흩어지며 나는 안양 쪽으로 향했다. 이때 인민군 비행기가 날아와 마구 사격을 해댔다. 그래서 1번 국도를 통해서 남하하지 못하고 수원 길로 가는데 수원이 인민군에 떨어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내가 한강전선에서 남하할 때 어떤 상사 하나가 따라 붙었다. 어느 부대 어느 상사인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는 자기 집이 발안 근처 어디라고 하면서 들러야 된다고 했다. 나는 그와 수원을 우회해 발안 쪽으로 갔다. 그는 가족과 만나고 나는 백석포를 건너 온양 쪽으로 갔다.
온양에서 나는 천안 쪽으로 갈 것인지 예산 쪽으로 갈 것인지 고민했다. 결국 나는 예산 쪽으로 향했다. 인민군의 비행기 사격이 계속 있었고, 아군은 지리멸렬하니 본선을 피하자는 심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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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0년 7월 지연전 당시 철수하는 한 국군부대 장병들의 모습 / 철모조차 착용하지 못한 국군의 모습이 초라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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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으로 해서 조치원으로 빠지니 청주에 수도사단 사령부가 있다는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나는 청주로 향했다.
한강전선이 무너지자 국군은 계속 남으로 남으로 퇴각했다. 나는 청주를 향해 걸었다. 그 길에 몇 번의 박격포탄 공격을 받았다. 한번은 박격포탄이 발밑에 떨어져, 순간적으로 죽었구나, 생각하며 혼비백산 했는데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불발이었다. 당시 인민군 박격포탄이 불발탄이 많았다. 오랫동안 탄약 창고에 묵혀두어 썩어서 그랬던 것이 아닌가 싶다.
7월 5일경 청주에 가니 수도사단 본대가 있었다. 이즈음 7사단이 없어지고 수도사단에 통폐합되었고 사단장도 유재흥 장군에서 김석원[金錫源, 1893 - 1978] 장군으로 교체되었다.
내가 도착하니 수도사단의 작전참모가 공병대 몇이 집합해 있다며 거기에 합류하라고 했다. 가보니 2백 명 정도의 공병이 있고 소대장급이 두서넛 있었는데 내가 가장 선임장교였다. 이때부터 나는 공병대대 3과장, 작전과장 역할을 맡아 수행했다.
한강전선에서의 패퇴 후 청주 본대에 집결하는 공병대를 모아 재편성을 했다. 군복을 입히고 1중대, 2중대, 3중대 구분할 것 없이 공병대, 하나로 묶었다. 한 개 부대로 재편성한 것이다. 무기를 다시 공급받고 전열을 가다듬고 있는데 “공병대를 18연대로 배속한다. 18연대로 가서 지휘를 받아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다.
사단에서 전투물자가 나왔는데 대전차지뢰가 아닌 미제 대인지뢰였다. 사단 사령부에 갖다 놓은 것이었다. 나는 상자 모양의 대인지뢰는 6·25가 나기 전 포천에 매설한 경험도 있고 익히 잘 알고 있었다. 당시 유엔군이 참전했다는 소식도 있었거니와 미제 지뢰가 왔다는 것은 미군이 대전차 지뢰를 지원해주고 있는 반증이라며 우리의 사기도 차츰 살아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