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아군은 역부족이었다. 인민군한테 밀려 전선은 하루가 다르게 남하했다. 그런 전황이었지만 우리는 7월 하순경 상주(尙州)전투에서 17연대와 연합해 인민군 2개 연대를 섬멸하고 나아가 안동(安東)다리를 폭파했다.
안동에서 박흥주 소령이 공병대대장으로 부임해왔다. 육사 4기 출신으로 공병학교 생도대장을 맡았던 분이었다. 박흥주 소령이 부임해 오면서 공병대는 다시 또 전열을 가다듬었다. 실제 이때부터 지휘체계가 제대로 잡히기 시작했다. 각 중대장들은 7기생들이 그대로 맡고 있었고 병력도 300여명으로 보강되었다.
8월 초 국군은 경주(慶州)까지 밀려 퇴각했다. 추세대로라면 부산까지 먹히고 인민군이 완전히 한반도를 점령하는 것은 시간문제가 되었다. 그러니 아군은 낙동강 전선을 마지노선으로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는 절체절명의 방어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았다.
이때 나는 의성(義城)에서 동쪽으로 이동해 청송(靑松)으로 가다가 트럭이 뒤집혀 몇 바퀴 구르는 사고를 당했다. 트럭의 뒤 화물칸에는 지뢰를 잔뜩 싣고 우리 공병대 병력 1개 소대가 이동하고 있었는데, 반대편에서 장군이 탄 짚차가 달려왔다. 장군이 탄 차니 우리 트럭이 비켜섰는데 운전병이 우리보고 먼저 가라고 손짓을 했다.
우리 트럭이 달려 나갔다. 그런데 좁은데다가 꼬불꼬불한 산길이고 우리 트럭이 장군의 짚차를 피해 잔뜩 도로 가장자리로 빠지다보니 노견(路肩)이 하중을 못 견디고 무너지기 시작했다. 산을 깎아서 막대기로 노견을 해서 만든 길이다보니 화차가 짐이 무거우면 노견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데 우리 운전병이 별 단 사람이니까 비켜 간다는 것이 너무 비켜서 결국은 앞바퀴가 커브 도는데서 빠져버린 것이다.
앞바퀴가 노견에서 넘어지면 걷잡을 수 없다. 트럭이 계곡으로 넘어가기 시작하자 걷잡을 수 없이 굴렀다. 나는 운전병 옆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기관총 매는 둥근 앵글이 있었다. 유사시에는 기관총을 걸고 사격을 하게 되어 있는 장치인 이 앵글이 나의 몸을 보호해주었다. 그러니까 일종의 안전밸트 역할을 해준 것이다. 차가 몇 바퀴 돌았으니 나는 차 밖으로 튕겨나가든가 파편이 덮칠 수밖에 없었는데 견고한 아치 모양으로 생긴 앵글 밑에 몸이 끼어 있다 보니 그대로 고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때도 참 운이 좋았다고 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그러나 뒤 화물칸에서는 사병들이 전부 대인지뢰 상자를 깔고 앉아 있었기 때문에 트럭이 구르며 지뢰상자가 그들을 마구 덮쳤다. 사람이 먼저 떨어지고 그 다음에 탄약상자가 떨어져 덮친 것이다.
그 사고로 사병들의 비명과 함께 아수라판이 되었다. 나는 가벼운 부상에 그쳤지만 사병들은 중상과 사망 등의 피해가 컸다. 그런데 부상자를 구출하고 사고를 수습해야 하는 손이 부족한 판인데도 불구하고 장군은 본체만체 가버렸다. 그때 참 많이 화가 났다. 누구라고 밝힐 수 없지만 그는 나중에 전사했다.
우리 국군은 낙동강을 마지노선으로 배수진을 쳤다. 그때 경주 안강 기계 전투가 있었는데 교과서에 6·25 전사(戰史)로 실리기도 한 유명한 전투이다. 제1군단 수도사단·제3사단이 기계, 안강(安康), 영덕(靈德), 포항(浦港) 일대에서 유격대(766부대)로 증강된 북한군 제5사단ㆍ제12사단의 침공을 격퇴한 방어 전투였다. 8월 9일부터 9월 22일까지 피아는 일진일퇴(一進一退)하며 격렬한 전투를 벌였는데 안강지구 전투는 남한 기계전술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유명한 전투인 것이다.
안강과 포항 사이에 형산강(兄山江)이 있고 경주 쪽으로 모아리라는 마을이 있었다. 9월 초순경, 민가와 떨어져 있는 곳에 수도사단 사령부와 작전지휘소가 설치되어 있었다. 이곳에 사단장 이하 작전참모, 정보참모가 있는 사령부와 작전지휘소를 지키기 위해 1개 대대가 요소에 배치되어 있었다. 낙동강 전선의 치열한 격전 속에 9월 중순으로 넘어가며 나는 작전참모의 호출을 받고 작전지휘소로 갔다. 방안에는 각부에 연결한 유무선 통신시설이 가득했다.
작전지휘소 주변에 천단천이 있었다. 천단천은 고지대에 논은 바닥에 있고 내[川]가 논보다 높은 지대에 있는 것을 말한다. 천단천이 성(城)처럼 쌓여있는데 거기에 보따리들 잔뜩 멘 피난민이 쫙 깔려 있었다. 장정은 없고 할아버지, 할머니, 아낙, 아이들이 전부였다.
그런데 낮에는 순수한 피난민 집단이지만 밤에는 인민군 척후병들이 스며들어 피난민 속에서 공격을 해왔다. 그렇게 되면 아군 쪽에서는 방어차원에서도 총을 쏠 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러니까 사령부를 옮겨야 하지만 촌음을 다투는 전황에서 통신시설을 끊고 쉽게 옮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사단장 등 지휘부가 안락의자에 앉지 못하고 엎드리거나 야전병용 접는 간이의자 같은데 걸터앉아 통화를 하고, 지시를 하고, 명령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