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룡령을 넘을 때 나는 또 교통사고를 당했다. 일제시대 때 일제가 오대산, 설악산에서 벌목을 해 본국으로 나무를 많이 가져갔다. 그때 일제가 낸 산로(山路), 나무를 실어 나르는 길을 넘어가는데 노견이 무너졌다.
트럭을 타고 행군할 때 노견이 무너지는 지역이 나오면 차를 멈추고 나무를 베어다 우물 정(井)자식으로 밑에서부터 쌓고 서까래를 올려서 교각을 만든다. 그때도 그렇게 해서 트럭이 지나가게 되었는데 나는 아무래도 임시 노견이라 안심하기 어려워 차만 먼저 보냈다. 내 예감이 맞았는지 그때 트럭이 전복되었다. 마침 우리가 다 내렸기에 망정이지 타고 있었다면 대형 사고를 면키 어려웠을 것이다. 그 사고로 우리는 구룡령에서부터 양양까지 걸어서 행군해야 했다.
3·8선을 돌파할 때 감개무량했다. 주민들이 태극기를 들고 나와서 환영을 했는데 자세히 보면 열렬히 환영하는 주민들도 있었지만 마지못해 하는 주민들도 눈에 띄었다. 아무래도 공산주의 체제를 선망하는 주민들 입장에서는 국군의 진군이 못마땅했던 것이다.
10월 초, 3·8을 돌파한 우리는 장전항[高城郡]을 거쳐 금강산(金剛山), 신고산(新高山)으로 진군했다. 그때 금강산에서 인민군 만 명과 대치하다가 3사단한테 전선을 넘긴 우리는 해안으로 우회해 10월 중순경 기습적으로 원산(元山)을 점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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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극기를 흔들며 북진하는 국군을 열렬히 환영하는 함흥 시민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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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원산시내는 시체가 즐비했다. 인민군이 후퇴하며 남한에서 끌고 간 우익인사들을 바다에 수장해 몰살한 참혹성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다. 인민군은 총살을 하지 않았다. 우물 같은데 집단적으로 몰아넣고 흙으로 덮어 매장해버린다든가, 세 사람씩 엮어 바다에 수장해버리는 식이었다.
원산에서부터 우리 공병대대는 철도를 복구하며 북진했다. 물론 아군의 원활한 수송과 기동력 있는 전진(前進)을 위해서다. 10월 17일. 우리 공병대대는 곧바로 원산을 거쳐 함흥(咸興)으로 진군했다. 함흥 쪽으로 가는 길에 말라비틀어진 국군포로들의 시체가 지천으로 깔려 있었다. 굶어 죽거나, 짐이 되니까 인민군이 죽여 버린 것이었다. 그야말로 파리 목숨만도 못한 주검들이었다.
이때 우리는 함흥 오로리에서 인민군 전차부대와 맞서 혁혁한 성과를 올렸다. 후퇴하던 인민군이 공백상태의 함흥을 탈환하기 위해서 패잔병들을 모아 전차부대를 꾸며서 쳐들어왔다. 말하자면 국군의 북진을 막기 위한 방어전이었다.
오로리에서 올라가면 장진호다. 오로리에는 하천이 있고, 그곳을 지나 함흥이 있었다. 인민군 전차가 나타난다는 첩보를 입수한 우리 공병대가 오로리로 출동했다. 이때 나는 직접 전투를 하지 않고 지휘를 했다. 하천 강변에 웅덩이를 파가지고 매복해 있다가 인민군 전차를 기습공격했는데 공격이 재미가 날 정도였다고나 할까, 그때 우리는 주로 바주카포를 사용했는데 백발백중이었다.
이때 우리는 인민군 전차 다섯 대를 포획했고 전차부대장인 총좌를 사살했다. 우리로 치면 준장급인 인민군 총좌는 소련제 권총을 차고 있었다. 이 오로리 전투로 나는 1953년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북진을 거듭하며 인민군 전차 잡는 부대는 공병대라는 소문이 붙었다. 공병대가 바주카포를 갖고 있었는데 한 번 맞으면 인민군 T36 전차가 완전히 박살날 정도로 위력이 강했다. 당시 수도사단 공병대대는 본부중대와 3개 전투중대가 있었다. 3개 중대. 본부중대하고 4개 중대. 인원은 1700명인데, 약 400여명이었다.
오로리 전투의 여세를 몰아 우리는 10월 말 북청(北靑), 단천(端川), 이원(利原)을 거쳐 함경북도인 성진[城津-현재는 김책시로 바뀜]으로 진군했다. 우리 공병대가 선두였다. 수도사단은 제 1선 부대이고, 그 1선 부대의 가장 선두는 공병대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뢰탐지, 제거, 폭파를 하면 비로소 보병부대가 진군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