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이 흥남비료공장을 지으면서 그 전력 때문에 수력발전소를 지었다. 그게 장진호(長進湖)다. 장진호를 타고 올라가면 개마고원과 꼭대기에 삼수갑산이 나온다. 일제시대에도 삼수갑산에서 왔다고 하면 그 호랑이 나오는데서 어떻게 살아왔느냐고 할 정도로 심산유곡 오지였다. “시집가는 신부가 삼수갑산을 가는 한이 있더라도 신랑을 찾아간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그만큼 살아나기 어려울 정도로 오지라는 뜻인 것이다
후치령 꼭대기로 올라가면서 우리는 들판의 마른 풀을 긁어모아 불을 지펴서 극심한 추위로 언 몸을 녹여가면서 정찰을 했다. 밤에는 또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아무리 깜깜해도 지프차의 라이트를 켜고 다닐 수 없기 때문이다. 불을 켰다하면 적에게 노출되어 저격당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상황을 막기 위해서 요소지역에 가면 소등을 하고 정찰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적을 만나서 길바닥에서 총격전을 벌일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어떤 때는 라이트를 끄고 촉각만으로 정찰을 하다가 주위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면 고도의 판단을 하고 경우에 따라 위협사격을 하거나 총격전을 하면서 탐색해야하는 것이다. 당시 선임하사 둘은 M1소총이 아닌 따발총을 지니고 있었다. 그때 기관총처럼 생긴 인민군 따발총이 괜찮았다. 인민군하고 맞닥뜨려 길바닥에서 싸우게 되면 그 총으로 교전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런 악전고투 속에 풍산개로 유명한 풍산(豊山)까지 올라가 ‘미군 장갑차가 통과할 수가 있고, 전차는 어렵게 되어있고, 트럭은 몇 톤 정도밖에 들어갈 수 없다,’는 이런 식으로 상태를 판단해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 정찰보고를 기준으로 해서 해안부대에 상륙한 미군부대가 “삼수갑산까지 들어갈 수 있는가?” “들어갈 수 없다면 왜 그런가?” “그렇다면 어떠한 정도의 병력과 어떠한 정도의 장비만 보낼 것인가?”라는 작전을 수립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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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0년 10월(陰) 길주 점령 후 / 왼쪽에서 2번째가 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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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 공병대가 그 정찰을 해가지고 보고를 하는 것인데, 대대 작전과장 주임장교인 내가 직접 나서게 된 것이다. 이제 본대로 귀대해 보고서를 정리해 한국군 군단에 보고하면 상위 지휘부대인 미군 군단에 올라가는 것이다. 그 보고서에 의거해 홍원에서 올라오는 미 10군단이 북진 전략을 세우게 되므로 아주 중차대한 임무였다.
어쨌든 우리는 무사히 삼수갑산까지 잠입해 그 임무를 마치고 내려오기 시작했다. 함경남도 이원 쪽으로 빠지는데 마을이 하나 나왔다. 그때 우익치안대가 장대에 태극기를 달고 우리를 대대적으로 환영했다. 우익치안대와 마을사람들은 우리에게 박수를 치고 태극기를 끌어안고 울고불고 난리가 아니었다. 그들은 나, 선임하사 둘, 운전병을 에워싸고 만세삼창을 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인민군 유격부대와 인민치안대가 산속에 숨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하나라도 국군이 보이면 꽹과리 치고 북치며 과대 환영을 하는 것이었는데, 말하자면 적에게 “한국군이 들어온다. 너희들은 견딜 수가 없을 것이다.”하며 일종의 세를 과시하는 것이다.
우리는 한시라도 빨리 부대에 돌아가야 하지만 환영행사를 뿌리치기도 어려웠다. 그들의 세 과시 선전이 인민군 게릴라한테 전파되어서 나쁠 것이 없기 때문이다. 또 그렇게 해야만 서로 안전한 면도 있었다. 우리가 소수 정찰병인 것이 노출되면 공격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거기에 오래 지체할 수 없었다. 거기서부터 부대가 있는 이원까지 더 빠져야 했다. 마을사람들이 소도 잡아주고 대대적인 환영을 해주면 힘도 나고 잠시라도 전장의 삭막함을 잊기도 하지만 무턱대고 응하는 것도 위험한 일이다. 실제 양양에서 아군이 환영군중이 주는 떡을 받아먹었다가 독이 들어서 죽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