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주를 손에 넣은 우리 공병대는 계속 철도를 복구하며 명천(明川), 어랑(漁郎), 영흥(永興), 경성(鏡城)을 거쳐 청진(凊津)까지 올라갔다. 수도사단이 청진에 입성한 것은 11월 25일이었다. 그리고 28일에는 한반도의 머리, 부령(富寧)으로 진격했다. 그리고 전쟁의 승리가 바로 눈앞에 있는 듯 했다.
그러나 10월 26일 이미 참전한 중공군이 1차 공세에 이어 3차로 11월 27일 서부전선의 미 8군을 공격하며 대대적으로 공격을 해왔다. 이어 12월 1일에는 장진호의 미 제1해병사단을 포위 공격함으로써 아군은 수세에 몰렸다. 또한 12월로 접어들자 한반도 북단 산맥지형 특유의 혹한(酷寒)에 유엔군이 고전을 면치 못했고,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인민군 또한 격렬히 저항했다.
12월 4일 유엔군 사령부는 유엔군의 전면후퇴를 결정했고 12월 6일에는 미 8군이 평양을 내어주고 임진강까지 철수하게 되자, 흥남 일대의 미 제 10군단은 측방이 그대로 노출되어 버렸다.
우리는 동부전선 상황을 잘 모르고 있었는데 후퇴하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후퇴명령을 받을 때는 청진입성식을 할 때였다. 당시 수도사단 공병대대의 본부는 경성(鏡城)에 있었다. 우리는 입성식 준비를 위해서 수도공사를 하느라고 18연대를 따라 하루 전에 청진에 갔는데 그 다음날 사단참모장한테 “공병대대는 청진에서 철수하라”는 통신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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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0년 11월(陰) 공병대 본부중대의 길주 입성을 기념하며 / 가운데 맨 앞의 오른쪽이 필자이고 왼쪽이 박흥주 대대장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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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공병대의 인원은 현지 주민들로 구성한 복구대까지 합해 3천여 명이 됐다. 원산서부터 성진, 경성까지 가는 동안에 인민공화국의 철도원들이나 기타 기술자들을 우리 공병대대의 보조 인력으로 편입시켜 철도공사나 수도공사에 투입했기 때문이다. 복구대까지 우리가 다 먹여 살려야 하는데, 그때 인민군에게 노획한 군복쪼가리와 식량으로 그들을 입히고 먹이고 있었다.
우리는 함경북도 도청이 있는 경성을 거쳐서 성진으로 철수하게 되었다. 살을 에이는 추위 속에 광목으로 만든 인민군 내복을 복구대에게 입히고 철수를 시작했다.
진군과 달리 또 후퇴는 공병대가 가장 최후에 해야 한다. 보병이 제일 먼저고, 공병이 최후인 것이다. 또 우리만 철수하는 게 아니라 우선 18연대가 철수해야 한다. 적군의 진로를 방해하기 위해 시설을 다 파괴하고, 장애물을 설치하며 후퇴하기 때문이다. 수송차, 군수물자를 보관을 해가면서 도로, 항만, 철도시설 이런 것을 다 파괴하면서 최후에 철수하는 것이다.
후퇴 당시 공병대대는 18연대와 1연대와 기갑연대에 1개 중대씩 파견 나가 있었다. 그러니 대대는 이제 알몸만 남아가지고 작업대대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4개 중대 중에서 예비 병력이 내가 작전과장으로 있는 1개 중대밖에 없었다.
최우선으로 물자와 병력을 열차에 실어 보내고 나니 화물열차만 남았다. 화물차는 최종적으로 우리 공병대가 끌고 나와야 하는데 나는 작전과장이니 육로(陸路)와 철도 양쪽을 지휘해 가장 늦게 나오게 되어 있었다.
임시부대 편성인 복구대, 즉 작업대대에게 노획품인 식량, 탄약, 축성용품 등 화물운송을 맡겨 철수하는데 열차가 자꾸 탈선을 했다. 아무래도 이북 민간인 출신들로 구성된 노역부대이다 보니 한국군이 후퇴하는 마당에 순순히 협조할 리가 없었고 일종의 태업하는 일이 발생하곤 했던 것이다. 감시를 했지만 그런다고 다 죽일 수도 없고. 달래서 빠져나갈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