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우리는 회문(會文)에서 큰 위기를 맞았다. 전진하면서 철도복구를 할 때 급수시설은 완전히 복구를 하지 못했던 것인데 그로 말미암아 열차가 회문에서 멎어 오도가도 못 하는 상태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북한의 기관차는 석탄을 때는 보일러 식이었다. 보일러식이다보니 석탄에 불을 붙여 “칙칙폭폭”하고 발동이 걸리려면 7시간을 불을 때야 했다. 따라서 물이 떨어지면 터지는 상태인데다 엄동설한의 강추위에 깡깡 얼어붙어 버렸다.
우리 사병이 총을 들고 지키고 북한의 기관사가 운전을 해서 가는 식이었는데 한번 물을 데워서 기관차를 가게 하려면 일주일이 걸린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북한의 기관차에 대해서 모르니 북한철도원 출신의 기관사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어대진에서 급수시설인 타워가 있는 봉강(鳳岡)이라는데 까지 가려면 어랑천을 넘어가야 했고 물을 공급받기위해서는 40㎞ 거리에 있는 봉강까지 가야 하는 것이었다. 나는 급수시설이 그렇게 중요한지 그때 알았다.
할 수 없이 물을 공급받으러 기관차를 봉강으로 보냈다. 그런데 막상 봉강역에 가보니 다 파괴되어버린 상태였다. 18연대하고 1연대 보병이 빠져나가면서 배속된 공병대가 그 역을 다 망가뜨린 것이었다. 낭패였다. 뒤따라오는 부대는 생각도 안하고 다 파괴해버린 것이다. 우리가 최후로 철수하는 부대이고 공병 1개 중대 가까이 되는 병력이 최후 마감작전을 하면서 내려가고 있는데 말이다. 앞에 간 중대들이 파괴를 할 적에는 우리 지시를 받고 해야 하는데 통신수단이 끊어져 우리하고 연락이 안 되니 보병연대 연대장 지시를 받고 폭파해버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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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0년 11월(陰) 함흥, 길주 점령 후 / 왼쪽에서 3번째가 필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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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시설이 다 파괴되면서 물 보급 타워가 부셔졌으니 물을 공급받으러 간 열차가 오지 않았다. 뒤 쪽에 기관차가 하나 있어 또 보내니 다 파괴되었다는 것이었고 먼저 간 기관사는 기관차를 버리고 도망가 버렸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화물열차는 오도 가도 못하는 상태에 빠져버렸다. 결국 우리는 진퇴양난의 운명을 맞게 되었다. 촌음(寸陰)을 다투는 상황…. 그 다음날 여섯시까지 성진에 도착하지 못하면 우리는 독안에 든 쥐 꼴이 되어 당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던져졌다.
고민 끝에 어대진 쪽으로 나가면 항구가 있어서 배를 타고 빠져나가보려고 척후부대를 보냈다. 그런데 전부 피난민과 군이 징발해가는 바람에 배가 한 척도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어대진 쪽에서 봉강으로 다시 왔다. 그리고 남은 기관차와 36개 화차를 파괴하기로 했다. 30개가 넘는 화차를 끌고 갈 연료가 없고 적은 시시각각 좁혀오니 한시라도 빨리 몸이라도 빠져나갈 수 있는 방도를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당시 전차와 장갑차 등 가치 있는 노획품이 많았지만 화차에 실은 채 폭파시키고 말았다. 탄약, 식량, 폭약, 폭파용구, 바주카포 등 최소한의 장비만 남기고 전소시켰다.
그리고 우리는 봉강에서부터 달구지 몇 대를 징발해가지고 식량과 탄약만 싣고 걸어서 후퇴를 했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지만 그때 막 눈이 오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만 남는구나’ 이런 참담함이 어깨를 짓눌렀다. 시시각각, 인민군의 추적은 좁혀오고, 결국 우리는 앉아서 당할 수는 없다는 판단 아래 열차를 그대로 두고 걸어서 후퇴를 시작한 것이다. 사실 성진까지 몇 백 리 길을 걸어 인민군 사정권을 무사히 벗어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우리는 황급히 봉강에서 어랑천을 넘었다. 그런데 하늘이 도왔을까. 영안 쪽으로 가는 길에 박흥주 대대장을 만났다. 트럭 다섯 대를 가지고 우리 중대 병력들 철수시키러 온 것이었다. 3과장인 나와 중대병력을 구하기 위해서 찾아온 것이었다. 눈물이 날 정도로 반가웠다.
우리는 트럭에 타고 안전하게 성진으로 철수할 수 있었다. 또한 예정에 없던 3사단이 길주에 들어오게 되어서 그 밑에 있는 성진 철수까지 3일의 여유도 생겼다. 촌음을 다투는 위기를 무사히 벗어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