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나는 그 생과 사를 넘나드는 위급한 전쟁의 와중에 아내가 될 사람을 만났다.
성진으로 들어오며 대대가 주도를 하게 되었다. 그때 대대나 중대가 한꺼번에 들어가 숙박할 데가 없었다. 결국 우리는 민박을 해야 했다. 그러니 동네 하나를 전부 중대가 들어가 집집마다 몇 명씩 자게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 사정 때문에 성진에 주둔하며 내가 지휘하는 공병대 작전과도 어느 집에 민박을 하게 되었다. 그 집에 딸이 둘 있었는데 말하자면 훗날 아내하고 처제였다. 어쨌거나 그 집에서 하룻밤 묵은 이튿날 아군의 흥남철수가 결정되었다.
내가 흥남철수를 준비하는데 딸의 아버지가 두 자매를 함흥까지 열차에 태워 보내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함흥에 친척이 있으니 그리 피난을 보내겠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아내가 된 자매 중 언니인 최기복(崔岐福)은 그때 원산사범과 청진교원대학을 졸업하고 성진 제일여중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교사였다. 국군이 북진할 당시 성진에 진주해오자 최기복은 국군환영회를 주도했다. 따라서 아군이 후퇴한 후 인민군이 성진에 들어오면 반동분자로 몰려 처형까지 당할 위험에 직면한 것이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두 딸과 친구 하나를 피난시키기로 결심하고 나에게 부탁을 해온 것이다. 나는 쾌히 응낙하고 어떻게 하면 무사히 피난시킬까, 궁리하다가 두 자매와 친구를 군복으로 남장(男裝) 시켰다. 그리고 증명서를 하나 작성해 방 상사라고 하는 선임하사를 시켜 두 자매를 흥남으로 철수하는 열차에 태워 보내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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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 자매 중의 언니인 필자의 아내, 최기복 (결혼 후인 60년대 사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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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공병대대는 성진항에서 최후에 L.S.T[美 수송선]를 타고 남하해 흥남에 상륙했다. 나는 두 자매가 무사히 흥남에 도착했는지 수소문해봤다. 그런데 두 자매가 타고 간 열차가 서호진(西湖津)까지 밖에 못 왔다는 것이었다. 함흥에서 난민통제를 했다는 것이다. 마침 그 다음날 우리가 다시 밤새 이동해서 서호진으로 갔다.
당시 부대가 이동해 주둔을 하면 학교 같은 대형 공공시설에는 연대본부나 사단본부가 들어가고, 일반 대대나 중대는 민가의 이장 집 같은 데로 가서 과장이 중심이 되어 각 과별로 숙박을 했다. 서호진으로 이동한 3과 부대는 대대본부 사단이 주둔하고 있는 동네에서 민박을 하게 되었다. 밤새 이동했으므로 우리는 허기져 있었다.
배식은 한군데서 다 해주는 게 아니라 대대가 과에 돈이나 식자재를 보급 해주어 과가 만들어 먹었는데 우리 3과의 선임하사인 방 상사가 식량을 조달하거나 먹을거리를 사오는 일을 맡고 있었다.
서호진으로 이동한 날 아침, 방 상사가 밥을 해서 먹여야 하니 식자재를 구하러 서호진 시장으로 갔다. 그런데 두 자매 등 군복을 입은 처녀 셋이 뭉쳐서 서호진 거리를 배회하고 있는 것 아닌가. 방 상사는 성진에서 차에 태워서 보내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세 처녀를 잘 알고 있었다.
세 처녀를 발견한 방 상사가 부리나케 나에게 왔다.
“과장님, 그 성진에서 열차에 태워 보낸 처녀들이 지금 서호진 시장에 있습니다!”
“아니, 왜 친척집에 안 가고… 서호진에 있지?”
“그건 모르겠습니다!”
“가서 일단 데려오지.”
얼마 후 방 상사가 세 처녀를 데려왔다.
나는 자매 중의 언니에게 물었다.
“아니 어떻게 된 겁니까? 함흥에 있는 고모 집으로 간 줄 알았는데….”
그때 최기복은 “함흥을 못 찾아서 못 들어갔다.”고 대답을 했는데, 나중에 자초지종을 들으니 고모 집은 함흥이 아니라 서호진에 있었고 찾아가니 별로 반가워하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쟁 통에 자기네들도 겨우 끼니를 때우는 처지인데 처녀 셋이 들이닥치니 별로 달가워하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세 처녀는 눈칫밥을 먹을 수가 없어서 고모 집을 나와 서호진 거리를 배회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땅히 갈 곳도 없고, 어디로 갈 건지, 갈피를 못 잡고 서호진 시장을 헤매고 있을 때 열차를 직접 태워서 얼굴을 알고 있는 방 상사에게 발견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