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처녀는 나를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그때 내가 어떻게 왔느냐고 물었지만 자존심인지, 당시만 해도 여자가 표현하는 것을 경박한 것으로 치부할 때여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최기복은 우물쭈물할 뿐이었다.
그러나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면 김해에서 삼척까지 그 먼 길을 올 리 만무한 것이다. 당시만 해도 교통도 없고, 전시(戰時)라 일선으로 온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데 걸어서 걸어서 오다가, 일선이 가까워서 군 트럭을 얻어 타고 온 것이다. 아마도 수도사단 공병대가 삼척에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물어물어 찾아왔을 것이다. 그러니 몰골도 말이 아니었다.
“그래, 부산에서 여기까지 걸어왔단 말이오?”
나는 세 처녀를 부대로 데리고 왔다. 일단 내 숙소를 임시로 주고 선임하사가 식사도 제공해주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느냐고 물으니, 이랬다. 김해에 있는 연락병의 집에 무사히 도착해 묵었는데 한 달 정도가 지나면서 눈치가 보이더라는 것이다. 처녀 셋이 와서 퍼먹고 있으니 부담이 되었던 모양이다. 게다가 연락병의 남동생이 있었는데 처녀들이 괜찮아 보이니 짝을 맺고 싶어 하는 눈치도 보이더라는 것이다.
결국 여러 가지로 뜻하지 않은 일이 생겨서 세 처녀는 그 집을 나왔다. 사고무친한 남한에서 아는 사람이라고는 수도사단 공병대 작전과장 최아무개 밖에 없으니 걷고, 차 얻어 타며 찾아온 것이었다. 용케 길에서 만났다는 것도 기적적인 일이었다. 전란 중에 서호진에서의 만남과 삼척에서의 만남이 그저 우연이었을까? 지금도 나는 아내와의 만남을 필연과 운명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한다.
성진에서 남장을 해서 함흥으로 보내고, 서호진에서 김해로 보낸 후 대대친구들은 최기복과 나를 연인사이로 간주하고 놀렸다. 최기복이 써서 보낸 것처럼 위장해서 내게 가짜 연애편지를 보내기도 하고 부대에서는 최기복을 향한 나의 마음이 화제거리였다.
많은 사람이 생이별을 하는 전란의 와중에 나는 최기복과 해후(邂逅)했다. 세 번의 기적 같은 만남 끝에 결국 나는 최기복과 운명적 관계임을 예감했다. 전란 중에 꽃 핀 사랑이었다.
부대에 세 처녀를 데리고 온 나는 박흥주 대대장한테 보고를 했다.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을 갖고 있느냐는 그의 질문에 나는 “최기복(崔岐福)을 아내로 삼고 싶다.”고 답했다.
그 후 최기복과 나의 결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1951년 마침내 나는 박흥주 대대장의 주례로 최기복과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다. 그야말로 냉수 한잔 떠 놓고 올린 결혼식이었다.
우리는 주문진(注文津)에서 신접살림을 시작했다. 안채와 바깥채로 이루어진 꽤 괜찮은 기와집의 바깥채를 세 얻어 아내와 처제를 같이 살게 하고 나는 부대생활을 하며 짬을 내어 열흘에 한 번 정도 가는 그런 신혼생활이었다.
전황(戰況)에 따라 남북으로 오르락내리락 하며 주문진 집에서 몇 달 살았다. 집주인 남편은 인민군에게 납치되어서 어려운 형편이었는데 그 집을 떠나온 후로도 계속 친분을 나누었고 아들이 장성한 후에는 내가 취직을 시켜 주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