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3·8선을 경계로 소강국면을 맞고 있었다. 당시는 동부전선보다 서부전선이 전투가 치열했다. 서부전선이 무너지면 우리도 같이 후퇴하고, 북진하면 같이 북진하는 일진일퇴를 거듭했다.
1951년 1월, 나는 대위(大尉)로 진급했다. 6월에는 김해의 초등 군사반 육군 공병학교에 입교했다. 수석으로 졸업을 한 나는 대구에 있는 육군본부로 발령을 받아 공병 작전교육이 주요 임무인 공병감실 작전교육과 보좌관으로 발령을 받았다. 상당한 고위 보직으로 아마도 초등군사반 수석졸업이 반영된 결과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1951년 5월, 국도 4대 간선도로 확장공사가 시작되었다. 부산, 서울 간 국도(國道) 확장공사였다. 부산에서 출발해 대구(大邱)와 대전(大田)을 거쳐 서울로 올라가는 국도 1호선, 경북 김천(金泉)에서 출발해서 경기도 장호원(長湖院)으로 넘어가는 2호선. 경북 영천(永川)에서 영주(榮州)로 올라가는 3호선, 경북 포항(浦項)에서 강원도 삼척(三陟)으로 올라가는 4호선으로 1차선을 2차선으로 확장하는 공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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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1년 초등군사반 입교생들과 함께 (윗줄 왼쪽에서 3번째가 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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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간선도로는 미군의 주 보급로였다. 확장공사는 도로에 부속되는 교량을 넓히고 암반을 깎아서 10ｍ폭으로 확장하는 일종의 고속도로인 셈이었다. 당시 이 공사에 공병대대가 동원되고 많은 민간인이 동원되었다. 나는 1년여가 걸리는 이 공사의 실무 책임자로 자재, 그리고 공사비를 산출해 미공병 고문관의 결재를 받아 미 8군으로부터 보급을 받아서 조달해주는 임무를 수행했다.
그때 국도 1호선이라는 것이 3, 4ｍ미터 정도밖에 안되어 자동차가 왕래하기는 어려웠다. 반대편에서 대형트럭이 오면 지프차 같은 것은 비켜서 줘야 할 정도로 차량통행이 열악했다. 게다가 일제시대에 만든 도로라 소형차, 삼륜차, 구르마나 다닐 수 있는 정도로 노견(路肩)이 약했다. 그런 도로를 확장하고 노면(路面)에 잔돌을 깔아 강화시키는 공사였다.
당시로서는 암반지대가 나오면 해체시키는 일이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는데 삽과 곡괭이로 되는 것도 아니고 공병대가 가지고 있는 장비로는 암반을 뚫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드릴기계로 구멍을 뚫고 장약(裝藥)을 해서 뇌관을 꽂아서 폭발시켜 파쇄 해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그때만 해도 그런 장비를 조달할 수 없었다. 따라서 미군 공병에 요청을 해서 지원을 받아내는 것인데, 육본 공병감실 작전교육과 보좌관이 그 임무를 수행하게 되어 있었다.
나는 도로확장 공사에 필요한 물자, 혹은 한국에서 조달이 안 되는 물자를 미군에 신청을 하고 지원을 받아내어서 공병부대에 나누어 주어 공사를 진행시켰다. 물론 공병부대의 배치에서부터 미 공병으로부터 받은 물자를 부대에 보내는 일도 육본 공병감실 작전과 보좌관인 나의 임무였다.
그때 가장 필요했던 건설장비는 땅이나 암반을 파쇄하거나 뚫을 수 있는 드릴기계였다. 나는 그런 고가의 장비 등 소요되는 모든 물자를 산출했는데 물자산출이 가장 난해하고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다보니 미군 측의 담당자인 공병 고문관과 밀고 당기는 많은 신경전을 해야 했다. 미군 측에서는 원조는 해주되 최소한으로 줄이려했고 한국 공병으로서는 하나라도 더 얻어내야 하는 입장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미 고문관은 산출서류를 정밀히 검사하며 “이게 다 공짜인 줄 아느냐? 미국사람들의 혈세가 들어 간 것이다. 그러니 무턱대고 주문을 할 게 아니라 정확한 산출근거가 있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사실 맞는 말이었고, 나 또한 정확한 자료를 만들어 제출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미 고문관은 소령이고 나는 대위였는데 그때 신경전도 많이 했지만 결국 내가 정확하게 산출을 한다는 것을 알고 대부분 받아들여 주었다. 그런 과정을 거쳐 결재가 되어 미군으로부터 장비라든가 물자가 보급되어 오면 전선으로 보내는 것도 나의 역할이었다.
당시 미 공병이 지원해 준 물자 중에 암거가 있었다. 암수형태의 구조로 되어 있어서 짝을 맞추어 조립하는 철재교량으로 콘크리트 다리보다 더 강했다. 그때만 해도 한국군은 그런 조립식 다리를 상상도 못할 때였다.
4대간선 도로확장공사 때는 콘크리트 다리를 놓을 여건이 안 되어 암거로 대치를 많이 했는데 아마도 수만 장을 썼지 않나 싶다. 조립식으로 되어 있어서 트럭에 싣고 가다가 필요한 지역에 툭툭툭 던지고 가면 나중에 부대가 와서 조립만 하면 되었다. 물론 정히 큰 데는 부교를 놓는다든가 철교를 놓았지만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