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간선도로 확장공사를 한참 하고 있는데 <백전사(白戰司 - 백선엽 야전군사령부)>가 생겼다. 당시 전남, 북 일대의 지리산에 게릴라들이 수만 명이 있었고 1952년 수도사단과 8사단이 대대적으로 게릴라 토벌작전을 펼치게 되었다. 백선엽 대장을 군단장으로 수도사단과 8사단이 동원되는 전투였다. 이때 나는 지리산 빨치산 토벌작전에 공병 작전보좌관으로 파견을 나가게 되었다, 공병참모가 없었던 상태라 내가 공병보좌관으로 토벌대에 나가게 된 것이었다.
지리산 진입로의 주먹만한 자갈들이 쫙 깔려있는 길을 고치는 것이 공병대의 공비토벌 작전 임무였다. 즉, 길에 울퉁불퉁 깔려 있는 주먹만한 자갈들을 전부 잔잔하게 깨서 깔아 탄탄한 길로 만들어 부대가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 작전이었다.
나는 주로 토벌대 훈련을 맡고 있었는데 지프차를 타고 이동하다가 차가 전복되는 사고를 당했다. 운전병 옆 앞자리에 내가 앉고 뒷좌석에는 선임하사와 연락병이 앉아있었는데 다 중상을 입고 사망하고 나만 큰 부상 없이 살아났다. 차와 같이 데굴데굴 굴렀는데도 아무 이상이 없었다.
나는 전쟁 중에 4번의 교통사고를 겪었다. 그때마다 신통하게도 큰 부상 없이 살았다. 당시는 도로가 허약한데다가 트럭이 수십 대가 행렬하면 노견이 쉽게 무너졌고 그러다보면 차가 옆으로 굴러 떨어지는 사고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게다가 야간에는 헤드라이트를 소등해야 할 때가 많아 커브가 심한 데에서는 사고가 많이 났다. 특히 추격 작전을 할 때는 주력과 떨어지면 매우 위험하니 무리한 질주를 하다가 사고가 나기도 했다.
공비토벌 때도 지붕이 없고 차체만 있으니 앞에 앉은 내가 가장 먼저 떨어졌다. 가장 먼저 나를 떨어뜨리고 몇 바퀴를 돌아 가로수를 들이받았다. 결국 운전병, 연락병 선임하사는 중상을 입었지만 나는 떨어져 나왔기 때문에 큰 사고를 모면하게 된 것이다. 작업복 바지에 담배케이스를 넣어두었는데 그게 납작하게 깨졌을 뿐이었다.
나는 병원에 들어가 간단한 타박상 치료를 받고 돌아왔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보니 텅 비어 있었다. 이웃사람에게 아내가 어디 갔는지 모르느냐고 물으니 육군본부에 면회 갔다는 것이었다. 육군본부로 달려가 보니 아내가 면회소에서 울고 있었다. 정확한 소식을 못 받았던 터라 아내는 내가 죽은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아직 새댁이었던 아내가 그때 얼마나 놀랐을지는 짐작이 간다.
사고 후 육본에 복귀한 나는 소령(少領)으로 진급했다. 그 후 1952년 9월 운 좋게 국비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6개월 과정의 미국유학을 가게 되었다.
한참 출국 준비를 할 때 아내가 첫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처음에 엉터리 진단을 받아서 하마터면 소파수술을 할 뻔 했다.
그때 아내가 자꾸 아팠다. 그래서 육군병원에 얘기를 해 김 소령이라는 군의관이 와서 진찰을 하게 되었다. 진찰을 한 김 군의관은 자궁 발육부진이라며 소파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임신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2년이 다 되도록 임신이 되지 않아 애를 태우고 있던 차이기도 했다.
그런데 아내가 소파수술을 완강히 거부했다. 그래서 나는 헛걸음 할 셈치고 아내를 대구 달성병원이라는 산부인과로 데리고 갔다. 그러니 웬걸, 임신 5개월에 별 이상이 없다는 진료 결과가 나왔다. 임신 6개월을 자궁발육 부진으로 오진해 사람 잡을 뻔 했던 것이다.
나는 임신한 아내를 남겨두고 유학을 간다는 것이 마음에 걸려 유학을 포기하려 했다. 그러자 아내가 “무슨 소리냐”며 적극 밀어 붙였다.
“당신의 꿈이고 천재일우의 기회가 왔는데 가야지요. 애초 육사에 들어간 것도 외국유학의 기회를 준다고 해서 들어갔던 것 아닌가요!”
“생활비도 넉넉지 않은 상태에서 임신한 당신을 혼자 두고 가는 것은 도리가 아닌 것 같소.”
“설마 굶기야 하겠어요. 내가 어떻게든 꾸려갈 테니 걱정 말고 가요!”
아내의 격려와 이해가 없었다면 나는 미국유학을 갈 엄두를 못 냈을 것이다. 아내의 깊은 마음씨가 고마울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