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미국유학은 공병뿐만 아니라 보병, 포병 등 각 병과에서 선발했고 영관급, 위관급 등의 계급별에 육해공군이 총 망라되었다. 공병은 그때 50여명이 선발되었다.
유학은 군사원조의 연장선상이었다. 무기와 장비를 지원하는 것도 좋지만 가장 중요한 지원은 사람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사실 그때 한국공병은 일제시대 일본 공병의 잔재에 머물러 있었으므로 미국공병학을 배운다는 것은 일대 혁신이었다.
미국정부로부터 유학 준비금 100달러가 나왔다. 50달러는 아내에게 생활비로 주고 나는 나머지 50달러로는 유학생활에 필요한 생필품 등을 마련했다. 전쟁통이라 번듯한 의복이 귀했다. 당시 미군 작업복을 뒤집으면 색이 바래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미군 작업복을 뒤집어 몸에 맞게 고쳐 입고 미국 유학 길에 올랐다. 1952년 9월 이었다.
우리 유학생들은 참전한 미군 교대병력과 함께 부산에서 배를 타고 일본 나가사키현[長崎縣]의 사세보[佐世保]로 갔다. 선창에는 복귀하는 미군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갑판에는 유학 가는 한국군 장교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사세보는 2차 세계대전 때 일본 해군의 기지로 대형선박이 닿을 수 있는 항구였다. 사세보항에서 우리는 넬슨이라는 유명한 서양제독의 이름을 딴 3만6천 톤급의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 장장 보름이 걸려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지금도 태평양을 건널 때 배 멀미 때문에 고생했던 기억이 생생한데 한 일주일 동안 먹기만 하면 토해서 밥을 거의 굶다시피 할 정도였다.
15일 만에 도착한 샌프란시스코는 부둣가에 자동차가 쫙 깔려 있고 별천지였다. 처음 미국 땅에 내려서 보니 지상천국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의 아귀다툼 탓도 있었겠지만 미국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미개한 나라였고, 지옥이나 다름없는 땅이었다. 바로 직전까지 생사를 넘나드는 전쟁을 치루다 온 탓도 있었겠지만 샌프란시스코는 참 화사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우리 유학생이 도착하자 군악대가 나와 환영회를 해주었다. 또 미군 소령이 나와 우리를 유람선에 태워 샌프란시스코 골든게이트교(Golden Gate Bridge), 오클랜드 하버 브릿지(Auckland Harbour Bridge) 등을 구경시켜 주었다. 조선반도에 갇혀 식민지 시대에서 성장한 우리로서는 미국이라는 신세계에 그저 눈이 번쩍 뜨이고 입이 딱 벌어 질 뿐이었다.
그 후 우리 유학생들은 열차를 타고 5일 만에 시카고, 워싱턴D.C를 거쳐 버지니아 주에 있는 포트벨바라는 도시에 있는 미국 육군공병학교에 입교했다.
미 육군 공병학교 또한 그 규모나 시설을 볼 때 놀라울 뿐이었다. 학교 부지가 우리나라의 한 개 군(郡)정도가 될 만큼 광활했다. 엔지니어센터, 연구소가 있었고 인상적이었던 것은 군 시설인데도 불구하고 우리처럼 철조망 같은 장막을 쳐놓지 않고 완전히 오픈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진취성이랄까, 대국(大國)다운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일단이었다.
우리가 입교할 때 미군 소장이 나와 대대적으로 환영해주었다. 그 다음날부터는 워싱턴DC를 구경시켜주어 백악관과 국회의사당도 가 보았다. 그 지역 신문에는 우리 유학생들에 대한 기사가 크게 실리기도 했다.
우리의 유학과정은 초등군사반으로 초급장교들이 알아야 할 공병학이었다.
우리는 미국유학을 통해 토목공학, 콘크리트 배합 등 과학적이고 현대적인 공병학을 전수 받았다. 새롭고 체계적인 선진(先進) 공병이론을 배우게 된 것이다. 해방이 되고 얼마 안 되어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우리는 체계적인 공병이론을 정립하거나 배울 시간이 없었다. 실전에서 일본식 공병이론을, 그것도 주먹구구식으로 적용하며 적응해 나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