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실습시설들의 과학화 또한 놀라웠다. 가령 북극지대에서는 어떠한 장애물이 필요한가를 판단하기 위해서 현지처럼 그 환경을 만들어 놓았다. 불도저가 북극지대에 들어가면 윤활유가 전부 얼어붙어서 고장이 난다. 이런 것을 전부 실증적으로 테스트해가지고 그 기후에 맞는 보완장비를 별도로 개발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런 시설들을 견습하며 실제 테스트해보거나 사용해 볼 수 있었다.
가령 적의 앞에는 장애물이 있다. 장애물을 보호해야지 터뜨려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으므로 터뜨리지 못하도록 엄호시설이 배치되어야 한다. 즉, 적의 전초부대를 발견하는 전초가 있고, 그 다음에 엄호하는 부대와 화력이 있다. 그러니까 전후에 화력이 다 있는 것이다. 그런 미군의 개념을 우리는 그 당시만 해도 잘 몰랐다.
장애물 시설에 있어서 철조망 설치도 강철 철조망이 있다. 그런데 그 강선이 얼마나 질기냐면 적의 전차가 짓밟고 넘어오면 무한궤도에 끼어들어가 전차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한다. 또 막는 철조망을 가마니나 나뭇가지로 덮어서 넘어올 수 있는 그런 시설을 한다. 그런 장애물 설치는 그 지형을 잘 이용해서 설치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고 그렇게 하려면 지형정찰이 정확해야 한다. 들판은 수렁이 얼마나 많은가? 습지가 얼마나 있고, 모래냐 혹은 황토인가? 하는 것을 식별하는 방법, 이런 것을 전부 배워서, 그런 것들을 전부 지도상에 발행하고, 또 지도를 발행하는 방법까지도 배웠다.
지도(地圖)연구소에 들어가서 보니까 각국의 세계지도가 있는데 100만분의 1짜리 한국지도도 있었다. 거기에 전부 좌표를 넣어서 포를 쏠 때는 그 좌표에 북위 몇도 얼마, 동위가 얼마고 서위 얼마에 점을 찍으면 어떠한 지점이라는 것이 나왔다. 그 지점에 대고 포를 쏘면 지도의 축적에 의해서 그게 가늠자가 되어 백발백중이 되는 것이었다.
미국공병은 모든 공법이 매뉴얼로 되어 있어서 그걸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되었다. 사인, 코사인 고등수학까지 동원하는 공법이었다. 예를 들어 50톤 탱크가 지나가야 한다면 폭은 얼마, 정간은 얼마, 이런 계산법이 표에 나와 있었다. 그 표를 인용하면 금세 처리가 될 수 있게 되어 있었고 그 공법과 산출에 의해 전쟁을 지원하는 물자가 대량생산으로 뒷받침되었다.
미국 공병은 철교중대가 있고, 부결중대라는 게 있어 작은 교량은 세트로 된 철교를, 한강 같은 큰 강은 부결중대가 금세 다리를 놓을 수 있도록 세분화되어 있었다. 비행장도 아나방을 불도저로 밀어서 쭉 깔면 활주로가 되는 기동성과 공법을 갖추고 있었다.
지금이야 아무 것도 아니지만 우리는 그때 고도로 발전한 미국공병의 과학화, 기계화와 매뉴얼화 된 공법을 배우면서 깊은 격세지감을 느꼈다. “전근대적인 일제시대의 공병법을 가지고 주먹구구로 전쟁을 했으니 제대로 되었겠느냐?”며 다들 기가 막혀 했다. 우리가 우물 안 개구리였다고 자책하며 많은 것을 배웠고, 깨우쳤다.
당시 한국군의 미 유학프로그램은 국군의 현대화에 많은 기여를 했다. 그러나 유학생활 내내 아직도 전쟁 중에 있는 고국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우리는 호강을 한 것이다. 한 달 급여로 150달러를 받았는데 실컷 써도 한 100달러 쓰고 50달러가 남았다. 1달러만 가지면 장교식당에서 세 끼를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고, 샐러드 요리가 싫어 주말이면 워싱턴DC로 나가 중국요리를 사먹기도 했다. 전란에 휩싸인 고국생활에 비하면 호사스런 생활이었으니 어찌 마음이 편할 수 있었겠는가.
그때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미국장교들은 관사에서 출퇴근을 하는데 부인이 차를 몰아 남편을 출퇴근시키는 것이었다. 우리의 정서로 볼 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자유분방한 것 같지만 또 국기게양식 때 보면 자동차를 타고 가든, 걷는 사람이든 딱 올 스톱이었다. 나는 그것을 보면서 ‘아, 미국의 저력이 저것이구나.’ 하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