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결산 후 나는 육군본부 공병감실 정보과 선임 장교로 발령되었다. 그때 서울대학 출신의 통역장교가 한 사람 있었는데 웬일인지 나오다 안 나오다 하며 근무가 태만했다. 어느 날 나는 그를 호출해 “왜 그렇게 근무를 태만히 하느냐?”고 물었다. “죄송하게 됐습니다. 새로 오셨는데 인사도 못 드렸습니다.”라며 그는 “사실은 고시공부를 하고 있는데 준비기간이라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되었다”라며 말끝을 흐렸다. 나는 “그러면 그렇게 얘기를 하고 양해를 구해야지 다른 사람이 볼 적에는 근무가 태만한 것밖에 더 되느냐.”며 나무라고 “고시가 얼마 남았느냐?”고 물었다.
“두 달 남았습니다.”
“그러면 두 달 동안 휴가를 줄 테니 이곳은 걱정하지 말고 고시준비에 전념하시오.”
그렇게 해서 그는 공부에만 전념했고 두 달 후 고시에 합격했다. 그는 훗날 외무부 장관과 국무총리를 지낸 노신영(盧信永) 씨다.
파견 근무자였던 그가 고시에 합격을 하자 대번에 육군본부 공병감실에서 철수시켰다. 그리고 특무대장실과 참모총장실로 픽업되었다. 어쨌든 고시합격 후 노신영 씨와 인연은 끝났는데 훗날 조우하게 되어 “옛날에 신세를 졌습니다.”라며 공손히 인사를 해오기도 했다.
1953년 6월. 나는 1103 야전공병단 112대대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112 야전 공병대대장으로 부임해 휴전선 접경인 화천(華川)으로 간 것이었다.
1954년 육군에 야전군(野戰軍)이 창설되면서 112대대가 각 군단에서 2개 중대씩 지원을 받아 야전군사령부 공사를 하게 되었다. 112대대를 모체로 각 군단에서 1개 중대 씩 야전공병단에서 1개 중대씩 병력을 지원받아 전부 12개 중대를 데리고 공동 엔지니어 데스크 포스, 공병특수 임무부대라는 공식 명칭으로 야전군사령부 숙영공사를 하게 된 것이었다. 직할부대까지 포함해서 대규모의 시설공사였다. 사령부는 석조 건물로 지었고 예하부대는 콘세트 건물로 수백 채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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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2대대장 취임식에서 인사말을 하는 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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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12개 중대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 1개 중대는 트럭중대와 중장비중대였고, 나머지 10개 중대는 일반 공병대였다. 이때 나는 사병들의 사기가 가장 중요하다고 보고 노는 날은 완전히 휴식을 하도록 했다. 또 원주의 야산 계곡 등에서 요즘말로 휠링을 할 수 있도록 오락을 즐기게 해주었다. 그럴 때는 내가 직접 현장에 가서 확인을 했다. 왜냐하면 야전의 예하부대가 전부 대령이다 보니 그들이 와서 집적거리는 경우가 있었다. 공병단에는 기름도 많고 중장비가 많으니 뭐 해달라고 하거나 일거리 가져와서 공갈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통솔을 해나가니 나도 사병들도 사기도 충천했고 6개월여의 공사기간 동안 많은 성과를 낼 수 있었다. 그때 내 나이가 스물여섯이었는데 일개 소령이 공병특수임무대장이라는 직책으로 12개 중대, 1개 여단 병력을 지휘했으니 사기가 충만했다. 야전군 사령부 참모들은 다 장성급이고 예하 부대는 대령급들인데 공병만 소령으로서 내가 진두지휘를 한 것이었다.
특히 그런 대규모의 공사를 하면서 사고가 하나도 없었다는 것도 나로서는 자부할 만한 일이었다. 아무리 큰 공사를 하고 잘 지어도 사람이 죽으면 빛이 바래는 것이다. 그때 1군 공병부장이 5·16 후 서울시장을 지낸 윤태일[尹泰日, 1918. - 1982.] 씨였는데 나에게 전폭적인 신임을 보냈다. 특히 야전군 사령관인 백선엽[白善燁, 1920 ~ ] 대장이 주말마다 현장시찰을 나와 등을 두드려주며 격려를 해주었다. 그리고 “내가 식사 대접하지."라며 장군식당에서 회식자리를 만들며 각별히 아껴주었다.
훗날 5·16 후 백선엽 장군이 교통부 장관을 할 때 내가 건설부 차관을 했다. 그때 내각이 모이는 자리에서 우연히 만나 인사를 드리니 처음에는 잘 못 알아 봤다. 내가 ”53년 야전군 사령부를 지을 때 특수임무부대장을 맡았던 소령 최종성입니다.“라고 하니 그때서야 ”아, 알고말고. 자네가 이렇게 출세했구먼!“ 하시며 무척 반가워하셨던 기억이 난다.
또 이 시절은 나에게 있어서 지휘관으로서의 어떤 리더십과 철학을 가져야 하는지 고민을 많이 한 시기였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대대에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집에 들어가니 아내가 “부대에서 이런 걸 가져왔네요.”라고 해서 보니 쇠고기 통조림 박스였다.
“아니, 누가 그걸 가져왔단 말이오?”
“대대 보급과에서 가져왔어요.”
부대에 사병들 특식으로 나온 통조림을 간부 집으로 챙겨 보낸 것이었다. 그때 스물일곱의 젊은 나이여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나는 고지식할 정도로 한 점의 그른 일도 용납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