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나는 네덜란드 국토개발, 프랑스 리온강, 독일 라인강 유역개발을 시찰하고 돌아와 본격적으로 고속도로와 한강개발계획을 세웠다. 나아가 아산만(牙山灣), 서산(瑞山)반도 종합개발계획, 울산(蔚山) 공업단지, 광양만(光陽灣) 석유화학단지, 창원(昌原) 중공업단지, 구미(龜尾) 전자공업단지 등 산업단지 조성 계획을 수립했다.
이런 계획을 뒷받침하기 위해 건설부는 국영기업법을 입법해 수자원공사, 준설공사, 도로공사, 주택공사, 토지개발공사 등을 설립했다. 건설부 산하의 공사 설립은 미국의 원조자금인 차관(借款)지급을 순환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가령 원조자금으로 서민주택을 지으면 그 상환금이 있다. 그 돈을 돌려서 경제개발에 투자할 수 있는 것이다. 나라에 돈이 없는 당시는 그랬다. 월남 파병을 해 피 흘린 대가(代價)로 받은 돈을 경제개발에 썼으니 말이다.
나는 1966, 67년 연속 로마 <WFP(세계식량기구)> 총회에 한국 수석대표로 참석했다. 요즘 이북이 식량지원을 받지만 60년대에는 우리가 그랬다. 절대적 빈곤상태인 당시 우리는 식량원조가 절실했지만 WFP로부터 동의를 얻어내기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원래 식량문제는 농림부 소관이고 그런 점에서 농림부 차관이 갔다 와야 함에도 내가 한국 대표를 맡아 세계식량기구에 두 번이나 갔다 온 것은 박정희 대통령의 믿음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1965년 네덜란드, 프랑스 등 서유럽 국가를 다녀와서 석유콤비나트 건설, 고속도로 건설과 관련한 순방보고서를 대통령에게 올렸는데 그것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그 이전에 세계식량기구 회의에 김학렬[金鶴烈, 1923. - 1972.] 경제수석이 갔다 와서 보고를 드렸지만 별로 만족을 못하고 66년, 67년 연속 나를 한국 측 수석대표로 낙점했다는 후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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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HP 치수사업협정조인식 / 왼쪽 첫번째가 필자, 두번째가 김윤기 장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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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미국 공병학교 유학을 갔다 온 나는 다른 사람에 비해 강점이 있었다. 이미 지적도나 차트를 만들 줄 알았던 나로서는 어떤 업무사안이 생기면 과학성에 입각한 기획과 통계를 차트로 만들어 조망했다. 이런 것은 논리적 설득력이 강했다.
당시 WFP로부터 식량지원을 받기위한 우리의 노력과 로비는 눈물겨울 정도였다. 나는 식량 원조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남들과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농림부, 경제부처에서 뽑힌 대표단과 만반의 준비를 해서 로마 세계식량기구 회의에 참석했다.
이때 우리는 우리나라가 왜 식량 원조를 받아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영상물을 만들어 사무총장과 6개국 대표한테 주었고 WFP 회의장 복도에 한국농부들이 무상원조 받은 양곡을 배급받아 도로확장, 야계사방, 하천개수하는 모습의 대형사진을 전시하며 무언의 압력을 했다.
그 한편으로는 WFP에 감사패를 전달하기도 했다. 또한 자수정 목걸이와 일제 카메라를 준비해 각국 대표와 그 부인에게 선물을 하기도 했다. 로비만 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식량 원조를 받아야 할 이유와 자료도 주도면밀하게 준비를 해서 요즘말로 하면 프리젠테이션이라고 할 수 있는 브리핑을 했다.
그런 노력이었는지는 몰라도 WFP회원국으로부터 한국에 대한 우호적인 평가가 형성되었다. 그때 우리는 10만ｔ의 양곡을 원조 받을 수 있었다. 기껏해야 2만 달러, 3만 달러인데 무려 9만 달러를 지원받았던 것이다. 그 정도의 많은 양은 당시 WFP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받은 원조는 범(凡)국민적으로 시행한 치산(治山), 치수(治水)사업, 하천개수(改水)사업 등에 쓰였다. 지금이야 격세지감이지만 당시 우리나라 산은 대개 벌거숭이였다. 비만 오면 홍수 나고 하천이 범람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때 우리는 전국에 있는 산(山)의 야계사방(野溪沙防)에 아카시아, 오리나무 등의 나무를 대대적으로 심었다. 산림녹화를 해서 비가 안전하게 냇가로 흐르게 하고 소하천 개수를 한 것이다.
나아가 대대적으로 농지정리를 했다. 마을 주민들을 동원해 그 작업을 하게하고 노임(勞賃) 조로 원조 밀가루 한 부대씩을 주었다. 말하자면 무상원조로 일자리를 주고, 농촌을 근대화하는 일석이조(一石二鳥) 효과였다.
원래 WFP회의에 농림부 차관이 가는 것이 타당함에도 내가 간 것은 식량차원을 넘어 국토건설의 차원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당시 WFP대표가 이런 말을 한 것으로 기억한다.
“경제개발은 1차 산업이 정착되고 자본이 축적되어야 한다. 그게 경제 이론이다. 그런데 너희는 자원도 자본도 없는데 어떻게 2차, 3차 산업을 하려고 하느냐?”
이론적으로나 경제원리로는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때 경제개발 주체들은 “1차 산업을 하려면 종자 하나 개량하는데 10년이 걸린다, 정석으로 갈수는 없다. 그러다가는 남북이 대치하는 우리 상황에서 북한한테 먹힌다. 서구가 100년이 걸려 이룬 산업화를 우리는 10년 안에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압축성장 논리였고 실제 그 전략이 성공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