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화(近代化) 초기. 건설부의 국토개발은 박정희 정권의 명운을 건 국가적인 과업이었다. 따라서 장관이나 차관인 나 또한 사명감이 강했다.
초대 전예용[全禮鎔 1909-1994], 2대 김윤기[金允基 1904-1979], 3대 주원[朱源 1909-1988] 장관은 나에게 아버지뻘이었다. 장관은 60대고 차관인 나는 30대였으니 말이다. 지금이야 60대가 그리 노령이라고 볼 수 없지만 그때만 해도 비교적 노령이었던 장관들은 실무적인 일은 나에게 맡겼다. 특히 싸우는 자리는 다 내가 참석했다.
당시는 정부조직법이 아직 자리를 잡기 전이어서 관계부처 간의 갈등이 심했는데 장관대리로 회의에 참석하다보면 나는 차관이었지만 상대들은 다 장관이었다. 특히 보사부 장관, 재무부 장관, 경제기획원 차관하고 대립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들 또한 다 나보다 훨씬 연상이어서 한참 대립하다 보면 어떤 때는 내 스스로 건방진 것이 아닌가 하고 자책감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공적인 일이기 때문에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가를 분별하는 것이 중요한 기준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또 어려운 것은 차관회의에서 진력을 다해 통과하고 난 뒤에 또 위에 가서 걸리는 일이 많았다. 그러면 상대방은 장관이다. 자존심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차관인 내가 발언을 하면 그들은 안들은 척하고 다른 통로를 통해서 압력을 해오는 경우도 많았다.
당시 경제부처회의는 각 부처의 권한 다툼으로 치열한 논쟁과 토론의 자리였다. 특히 건설부가 다른 부처의 업무를 빼앗는 것으로 오인되어 대립이 격화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건설부가 1961년 정부조직법으로 신설된 부처이다 보니 법령이나 정책입법화가 미비했다. 내무부에서 토목국이 왔고, 경제기획원에서 국토기획국이 왔고, 상공부에서 해무청이 왔고, 농림부에서 수리간척, 다목적댐 분야가 왔고, 보사부에서 주택국이 오는 등 여러 부처에 있는 것들을 긁어모아 건설부를 만들었기 때문에 일을 추진해나가다 보면 많은 경우 걸렸다.
법령으로 뒷받침되지 않으니 관계부처와 조율과 합의를 해야 하는 것이다. 가령 다목적댐은 전기발전도 하고 농림부의 수리간척도 해야 하니 관계부처와 관계가 있다. 그러니까 관계부처에서는 자기들의 권리를 건설부가 독차지하려고 한다며 반대하기 일쑤이고 그런 것들이 법에 명시가 되지 않았으니 필요한 재정을 획득할 수 가 없는 것이다.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에서도 치열하게 논쟁하다보니 나는 싸움닭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는데 주택은행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김정렴[金正濂, 1924. -] 재무부 장관과 대립한 일이 지금도 생각난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주택은 보사부가 주무부처였다. 그러나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국민주택 건설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따라서 주택건설촉진법을 만들어 주택공사와 주택은행을 설립하게 되었다.
주택은행의 설립은 주택자금을 회전할 수 있기 때문에 주택건설 활성화와 국민들의 주거안정에 기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융자를 주어 주택을 짓고 상환을 하면 그 돈을 순환시키며 주택자금으로 쓸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재무부가 주택자금운영법을 만들어 주택은행의 기술이사는 재무부 장관에 의해서 임명이 되어야 한다고 고집했다.
재정은 나눠주되 권리는 재무부가 갖겠다고 해서 대통령 앞에서 나와 김정렴 재무부 장관이 치열한 논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결국 박정희 대통령이 끝까지 논쟁을 지켜보다가 “최 차관 얘기가 옳아.”라며 일단락을 시켰던 기억이 새롭다.
수자원도 물 문제이지만 당시 상수도 하나만 건설부가 담당했다. 그런데 물을 공급하는 호수뿐만 아니라 수리간척이 필요한 것이고, 그렇게 하려면 하천개수촉진법을 만들어야 한다. 따라서 전체 입법을 하고 관련법인 다목적댐법을 따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또 공업단지 부지를 조성하는 것은 건설부, 공장을 짓는 것은 상공부(商工部), 물류는 교통부(交通部)인데 당시는 통합법이 미비하다보니 주먹구구가 많았고 의견대립이 심할 수밖에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