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소양강(昭陽江)댐 건설을 둘러싸고 건설부는 경제기획원, 상공부, 한전, 그리고 중앙정보부까지 개입된 극심한 갈등과 대립을 겪게 되며 나는 공직생명의 위기를 맞기도 했다.
수자원공사(水資源公社)도 설립하고 다목적(多目的)댐법도 통과되면서 건설부는 소양감댐 착공을 서둘렀다. 600만 달러의 건설예산도 확정이 되어 예산집행을 기다렸다. 그런데 경제기획원에서 예산을 주지 않았다.
사실 경제기획원은 당시 200억이 소요되는 소양강댐 건설예산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장기영[張基榮 1916-1977] 경제기획원 부총리는 상공부로 하여금 한전이 청평(淸平)댐 같은 소규모 댐을 만들도록 할 구상을 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중앙정보부하고까지 그렇게 얘기가 되어 있었다. 거기에는 이런 연유가 있었다.
일본 도쿄에 조총련(朝總聯)이 조선장학회 부지 땅을 가지고 있었는데 일본의 재벌기업인 마르베니가 여기에 10층 빌딩을 지었다. 조총련이 발주를 해서 마르베니가 빌딩을 지었던 것인데 조총련이 공사비를 주지 못했던 모양이다. 이것을 중앙정보부가 알고 마르베니를 부추겨서 공사비청구 소송을 걸게 했다. 건물을 차압하게 해서 조총련이 건물을 쓰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이렇게 한 이유는 친(親)북한의 재일동포 조직인 조총련을 견제하고 재일동포 사회에서 힘을 빼기 위해서 말하자면 중앙정보부가 이면공작을 한 것이었다. 중앙정보부는 마르베니 측에다 “한국의 대일청구권 자금 중에 댐건설 비용으로 600만 달러가 있다. 그것을 너희 마르베니에게 발주시켜 주겠다.”라며 조총련에 소송을 걸게 한 것이다.
실제 마르베니가 조총련에게 소송을 걸어서 건물을 쓰지 못하도록 차압을 해버렸다. 그럼으로써 중앙정보부가 마르베니를 통해 조총련을 골탕 먹이고 대신 마르베니에게 소양강댐 건설을 발주해서 한국의 건설사가 하청을 받아 소규모 콘크리트 구조로 만들 계획을 세운 것이다.
당시 이것은 중앙정보부와 권력 핵심만 알고 있을 정도로 절대 대외비였다. 따라서 건설부도 나도 이런 내용에 대해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1967년 3월 경제기획원에서 대통령과 내각, 그리고 당의장, 정책위의장이 참석해 매월 열리는 경제동향 보고회의가 열렸다. 이때 나는 출장 중인 장관을 대신해 이 회의에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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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6년 건설부를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 / 왼쪽 첫번째가 박 대통령, 두번째가 전예용 장관, 오른쩍 두번째가 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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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장기영 경제부총리가 차트를 놓고 대통령에게 브리핑을 하면서 “소양강 댐 건설의 주관사업부처를 상공부로 하고 한국전력으로 하여금 착공을 시키겠습니다,” 이렇게 보고를 하는 것이 아닌가. 건설부 계획과는 전혀 딴판이거니와, 한마디 상의도 없었던 금시초문이었다. 건설부가 6백만 달러의 예산을 들여 건설하게끔 로비를 해서 모든 준비를 마쳤는데 엉뚱하게 상공부가 따 먹고 한전이 그 돈을 가져가게 되었다.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건설부가 악전고투(惡戰苦鬪) 준비를 하고 있는데,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급작스런 변경은 차관인 내가 대리 출석한 사이 장관 없을 때 해치우려는 심산이 아닌가 싶었다.
이윽고 장기영 부총리의 브리핑이 끝났다. 이의제기가 없으면 이제 경제기획원의 안대로 결정이 나게 되었다.
나는 장 부총리의 브리핑이 끝나자마자 “이의있다.”고 소리치며 벌떡 일어났다. 일순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했고 박 대통령이 고개를 돌려 후미 자리에 있는 나를 바라보았다.
“최 차관, 이의 있으면 나와서 얘기해요.”
박 대통령은 나에게 발언 기회를 줬다.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토론하고 활발하게 의견 개진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 까닭인지 나의 얘기를 흥미롭게 지켜봤다.
나는 앞으로 나가 “서울인구 500만에 수도권 인구 천만을 위해서 용수(用水)가 얼마나 필요”한 지를 설명하고 “다목적 댐을 안 만들면 경인지역 종합개발 계획도 성립이 안 된다, 이번에 못하면 장차 수도권 일대에 많은 용수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백년대계(百年大計)를 해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또한 나는 “건설부가 다목적댐을 만들어 광역상수도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실 광역상수도 라는 개념은 그때 처음 나온 얘기였다. 나는 마지막으로 “예산이 없으면 한강을 매립해 그 땅을 팔아서 만드는 방법도 있다.”고 역설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