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부터 건설부는 국토의 대동맥, 고속도로를 은밀히 추진했다.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는 마차와 경운기가 물류운송의 주요 수단이었다. 차량으로 서서히 운송이 교체가 시작되었지만 그때 우리의 도로 사정은 마차가 앞에 버티고 있으면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도로가 차량을 받쳐주지 못한다면 속도는 무용지물이었다. 건설부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물류비용을 줄이려면 아무래도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했던 것이다.
물론 물류 문제가 대두되면서 본격적인 고속도로 건설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지만 실상 그 이전부터 건설부는 조용히 고속도로 건설을 준비해왔다. 1963년 건설부 기획관리실장 시절 박정희 의장의 지시로 일본을 방문했을 때 나는 동경―나고야 선인 도메이고속도로를 시찰했다. 2주 동안 일본의 건설대신인 고노 이치로 씨의 주선으로 일본의 건설성의 법령에서부터 댐, 고속도로 건설현황을 견학한 것이다.
일본은 동경 올림픽 때 나고야, 오사카, 고베를 잇는 명신(名神)고속도로를 이미 완성해 사용하고 있었고, 내가 갔을 때는 동경하고 나고야를 잇는 6차선의 현대식 도메이(東名)고속도로를 건설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공사비용은 어떻게 조달하고, 사업주체는 누구고 하는 것을 전부 알아가지고 왔다. 돌아온 후 나는 보고서를 작성해 청와대에 몇 차 냈다.
그 후 1967년 유럽 공업시설 시찰을 가서 네덜란드의 석유 콤비나트 단지와 이탈리아의 고속도로를 견학했다. 이탈리아 고속도로는 로마에서 밀라노, 로마에서 나폴리까지를 잇는 고속도로였는데 쭉 뻗은 도로가 장관이었다. 문제는 재원(財源)이었는데 일본도 그렇지만 이탈리아도 IBRD차관을 도입해 건설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견학에서 돌아온 나는 IBRD, ADB를 통한 재원조달과 사업주체인 도로공사 설립 등 고속도로건설 보고서를 작성해 청와대에 제출했다. 그러나 청와대로부터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 후 1967년도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건설부 기획안에 고속도로 건설에 대한 내용을 다시 넣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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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유럽국가 산업시찰을 하고 돌아올 때 김포공항에 아내와 아들이 마중을 나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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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1967년 사실상 건설부는 경인(京仁)고속도로와 경수(京水)고속도로 건설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청와대에서 본격적으로 경부, 호남 고속도로 건설을 공론화하기 전에 건설부가 독단적으로 수도권에서 고속도로 건설을 착수한 것이다.
물론 박정희 대통령이 1964년 독일을 방문한 길에 아우토반을 시찰한 후 고속도로 건설에 대한 강한 의욕을 가지고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그런 점에서 보면 건설부와 별도로 청와대 라인에서도 고속도로 건설을 추진하고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1968년 청와대로부터 결재가 떨어져 IBRD차관을 도입해 고속도로를 건설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공기업, 도로공사(道路工事)를 설립하고 ‘통행료로 차관을 갚아간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도로정비촉진법‘ 입법화를 추진했다. 산업차관을 도입해 사업을 하고 상환할 수 있는 주체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제기획원은 절대 반대였다. 건설부가 석유세(稅)를 빼앗아 간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건설위원회 발의만으로는 안 되고 재정에 관계되기 때문에 경제기획원의 담당 상임위인 재정위원회를 통과해야 하는데 암초를 만난 것이다.
나는 도로정비촉진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막전막후로 로비를 하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마침 장기영 경제기획원의 부총리가 출장을 가게 되어, 나는 그때다 싶어 김태동[金泰東 1918. - 1982.] 차관을 설득했다.
“김 차관님! 서로 나라를 위해 일하는 건데 너무 강팍하게 생각하지 말고 좀 융통성을 가져 봅시다!”
“최 차관 마음이나 건설부를 이해 못하는 것 아니지만 우리 경제기획원 입장도 생각해 주시오!”
“좋습니다. 정 그러시다면 재경위에서 동의할 수가 없다고 하지 말고, 최소한 필요하긴 한데 시기상조라고만 대답해주시지요.”
“그 정도야….”
김 차관은 내 청을 받아들여 재경위 심의에서 그렇게 답변을 해주었다. 그때 재경위원장이 쌍용 창업자 김성곤[金成坤, 1913. - 1975.] 의원이었다. 그도 사실 삼척에 있는 쌍용양회 공장에서 생산하는 시멘트 운송 때문에 나름 고민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원활한 물류운송을 위해서는 삼척에서 묵호까지 도로를 내야 했지만, 개인으로서는 엄두를 낼 수 없는 일이었고, 국가 차원에서 도로를 내지 않으면 시멘트 공장의 가동이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러던 차니 그는 고속도로 건설에 적극 찬동했고 “결국 필요한 겁니다.”라며 도로공사촉진법의 재경위원회 통과를 적극 도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