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여 1967년 12월 정일권 [丁一權, 1917. - 1994.]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고 주원 건설부장관을 단장으로 하는 고속도로 기획단이 발족했다. 나는 기획반장에 임명되었다. 고속도로 건설의 소신을 갖고 애를 쓴 나로서는 가슴이 벅찼다. 사실 행정부 내에서 고속도로 건설을 계획하고 추진해나갈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외국의 고속도로 견학도 많은 사람이 갔다 왔지만 내가 젊다보니 감수성 강하게 받아들이고 추진한 측면이 있었다.
1968년 2월 1일 착공식을 하며 본격적으로 고속도로 건설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당시만 해도 우리 건설사들이 재정이 허약하다보니 중장비(重裝備) 같은 장비를 보유하지 못하고 있었다. 또한 현대가 태국에서 고속도로를 건설한 경험이 있었지만 춘하추동 기후가 있는 우리나라에 있어서는 기술이나 공법에 있어서 달랐다.
그 이전 경인(京仁)고속도로 건설만 하더라도 현대, 삼성, 대우 등이 연합해서 맡아야 할 정도로 회사규모도 작았다. 우리는 산업차관(借款)을 들여와 건설사들을 도급순위 1위에서 10위까지 선정해 정부가 지불보증을 해서 중장비대금으로 500만 달러씩 주었다. 그리고 공사구간(工事區間)을 나누어 할당했다.
주원 장관과 나는 거의 현장에 상주하다시피 했다. 대통령이 현장시찰을 나오면 기획반장인 내가 수행을 했는데 박 대통령은 헬리콥터를 타고 다니며 직접 노선을 잡을 정도로 고속도로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나는 군에 있을 때든, 정치계로 나와서든 박 대통령과 사적인 인연이나 친분은 없다. 다만 부산 공병학교 교수단장 시절에 박정희 2관구 사령관을 두어 번 조우한 적은 있다. 1960년 3·15 부정선거 당시 마산에서 시위가 일어나 2관구 공병학교 예비장교들과 시위진압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한 끝에 공병학교에서 6백여 명의 기간요원들을 선발해 진압훈련을 했다. 내가 단장이었는데 박정희 2관구 사령관이 검열을 왔다. 그때 처음 나는 박정희 소장을 만났다. 그는 내게 “대단히 양호하다.”라고 한마디 했고, 별다른 일은 없었다.
그 얼마 후 동래온천에서 올라가면 나오는 <금정사>라는 절에서 공병학교 야유회를 한 적이 있다. 그때 박정희 소장도 2관구 사령관 자격으로 야유회에 참석을 했고 8기생들과 어울려 술도 마시고 농담을 나누기도 했다. 그런 정도의 인연이었지만 건설 차관으로서 나의 업무수행 능력은 신뢰했다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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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해대책본부를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에게 현황을 설명하는 필자 / 서 있는 필자 바로 앞이 장기영 부총리이고 그 다음이 박 대통령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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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잊히지 않는 일이 있는데, 아침을 먹고 느긋하게 쉬고 있는 어느 일요일, 박 대통령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온 적이 있다. 아침 아홉시 쯤, 아내가 대통령한테 전화가 왔다는 것이었다. 나는 의아스럽기도 하고 놀라기도 해서 전화를 받았다.
“자네 오늘 일요일인데 안 됐지만 출장 좀 가야겠어. 동해안에 폭설과 해일로 피해가 많다는데 빨리 가봐”
피난민촌인 강원도 양양, 속초, 고성에 태풍이 휩쓸고 있을 때였다. 나는 “알겠습니다!” 하고 전화를 끊고 즉각 출장준비를 했다. 그런데 대통령한테 또 전화가 왔다.
“자네 혼자는 안 되니 내무부 차관, 보사부 차관하고 같이 가. 그리고 조치는 다 취해놓았으니 공항으로 가면 비행기가 대기하고 있을 거야.”
“알겠습니다, 각하!” 하고 전화를 끊고 부랴부랴 나가는데 대통령한테 또 전화가 왔다.
“내무부 경찰 비행기로는 위험하다니까 공군에 수송기를 준비시켰으니 그거 타고 가.”
나는 내무부 차관, 보사부 차관과 함께 즉각 피해지역인 동해안으로 가서 실태조사를 했는데 그때 설악산에 조난사건이 있어서 수색하는 헬리콥터를 탔다가 위험스런 일도 당했다. 헬리콥터가 커브를 돌자 갑작스레 바위봉우리가 나와서 충돌할 뻔했기 때문이다.
그때 월남한 난민들 3천 세대가 피해를 입었는데 정부가 융자를 해주고 군부대를 동원해 전광석화로 보루코 벽돌과 슬레이트 지붕으로 집을 지어주었는데 당시를 기억하면 박정희 대통령의 사려 깊은 전화도 함께 기억이 난다.
사람에 대한 평가라는 것은 극히 주관적일 수 있다. 내게 잘 해주는 사람은 선인(善人), 못해주는 사람은 악인(惡人)으로 평가되기 십상이다. 내가 아는 한 박정희 대통령은 독재자라는 정치적 평가도 뒤따르지만 따뜻한 인간미를 가진 사람이었다.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철권통치를 편 지도자라는 역사적 평가를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라를 잘 살게 하겠다는 깊은 열정을 지닌 지도자였다는 것 또한 부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