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건설 프로젝트는 각 관련부처의 협조체제 차원뿐만이 아니라 국회동의나 입법 등의 협조를 얻어야 할 일이 많았다. 특히 야당의 협조가 중요했는데 당시 40대 리더로 떠오른 김대중(金大中), 김영삼(金泳三) 의원이 많은 도움을 줬다.
IBRD 주택자금 회전운영 법안의 경우는 훗날 청와대 비서실장이 된 김정렴(金正濂) 재무부 장관의 반대가 심했다. 당시 김대중 의원이 야당 간사였는데 그는 내게 “이 법안이 서민들이 혜택을 받느냐?”며 논리정연하게 따져 물었다. 내가 그렇다는 논리를 조목조목 설명해주니, 그는 “아, 그렇다면 당연히 해야지요. 경제기획원, 재무부가 반대를 하더라도 해야 됩니다!”라며 적극 찬동했다.
결국 김대중 의원은 재무부 이재(理財)국장한테 압력까지 넣으며 법안이 만들어지는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당시도 김대중 씨는 국민경제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고 확고한 신념과 깊이가 느껴졌다.
그런데 지금도 그렇겠지만 지역구 의원들이 건설예산을 인구비례에 의해 나눠먹자고 하면 참 곤혹스럽다. 예산을 쪼개면 집중개발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강다리를 놓는다고 하면 1년에 겨우 빔 하나밖에 세우지 못하는 형국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거부하면 국회입법을 안 해주니 답답한 노릇이 되는 것이다.
전후(戰後), 아버지는 정계에 뛰어들어 민주당 수원시지부장을 지내기도 했는데, 내가 정부에 있을 때도 야당정치인의 길을 걷고 있었다. 이것도 부자(父子) 간의 기구한 운명이었다. 아버지는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했다며 끝까지 박정희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으셨던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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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7년 국회본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는 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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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그런 인연으로 나는 중령시절 공병재생창장으로 부산에 있을 때 아버지로부터 김영삼 의원을 소개받았다. 그 후 내가 군복을 벗고 정부에서 김영삼 의원을 만났을 때 그는 원내총무였다. 마침 김영삼 의원이 추천한 장치훈(張致勳)의원이 국회 건설위원회의 야당 간사로 있어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국회 상임위 간사는 여당과 야당에서 각각 맡고 있는데 야당 간사가 합의해주지 않으면 집권여당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나는 여야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방안으로 건설업자의 지원을 얻어내 여야 의원들을 주요 선진국에 시찰을 보냈다.
그때 장치훈 민주당 간사가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집트의 나일강뿐만 아니라 독일 등 유럽의 산업시찰을 하고 돌아온 후 김영삼 의원 등 야당의원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국토건설에는 여야가 없다. 예산을 집중해야 한다.”며 적극 동의해 주었다.
국회 입법절차를 통과해야만 프로젝트를 집행할 수 있는 행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사실 건설부는 국회를 컨트롤 할 수 있는 잇점이 있었다. 지역구에 “다리 놓아 준다.”, “도로 포장해준다.”, “하천 보수해준다.” 하면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당시는 그것이 지역구 관리의 최대 인기였다. 사실 국회를 잘 이용하면 일을 빨리 할 수 있다. 각종 건설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나는 경우에 따라서는 의원들의 지역구문제를 적절히 이용하기도 했다.
차관으로 재임하는 동안 나는 35여개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것은 국토건설의 토대가 되었고 오늘날 대한민국의 모습이 되었다고 자부해보기도 한다. 당시 국토건설 붐에 동참했던 기업들은 오늘날 재벌로 도약하기도 했다. 내 개인적으로도 이때가 가장 왕성한 정열을 불태운 시절이었고, 또 가장 보람찬 시기가 아니었나 하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