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관시절, 나는 마포구 서교동의 국민주택에 살았다. 이때 건설업자들이 찾아오는 경우가 많았지만 나는 일절 만나지 않았다. 로비일 것이 뻔한데 만나면 잡음이 안 생길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새벽부터 우리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내가 출근할 때 따라 올라타는 일도 있었고, 아무튼 처신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월남전 때 현지에 큐논이라는 난민수용 주택 3천 세대를 짓게 되었다. 그때 내가 로마 식량기구 회의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월남을 방문을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월남 주둔 미군 사령관을 만나서 어떻게든지 현대건설이 공사를 맡도록 공작을 해달라.”는 청탁이 있었다. 그때는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대통령, 혹은 정부차원에서도 나서 로비를 할 때였다.
나는 식량기구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사이공으로 날아가 미군 후방 사령관과 월남 건설부 장관을 만났다. 선물도 주고 파티도 열어주며 큐논주택 공사를 한국의 현대건설한테 달라는 전방위 로비를 펼쳤다. 결국 그 공사는 현대건설이 수주를 했다.
건설부 재임 7년여. 1969년 나는 장관으로의 영전에 뜻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건설부를 떠나 공화당 정책연구실 차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기획관리실장 시절부터 7분의 장관을 겪었고 6년여의 차관재임 동안에는 전예용, 김윤기, 주원, 이한림 등 장관이 4번 바뀌었다. 나는 장관이 바뀔 때마다 신임을 물어야 하기 때문에 사표를 내야 했다.
군에 있을 때부터 4대간선 도로 공사, 전재복구 실무를 맡았던 나로서는 국토건설이라는 점에서 특기가 있었고, 또 여한 없이 일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싸움을 많이 해서 미움을 샀는지 끊임없이 영전설이 있었지만 결국 장관은 못됐다. 나이 먹고 세상을 너무 알면 행동을 하기 전에 따져 보고 하게 되는데 혈기왕성하다보니 세상 무서운지 모르고 나섰던 것은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아쉬운 대목이다.
|
|
| ▲ 1966년 WFP회의에 참석하고 귀국길에 월남에 들러 월남 건설부장관의 영접을 받고 있는 필자 |
|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 진중해지는 면도 있지만 자기 손해 볼 짓은 안 하게 되는 면도 있다. 그러면 부정한 일에 눈을 감아버리게 된다. 나는 권력실세들이 배후에서 정치자금을 만들려고 하는 여의도 윤중제 개발을 반대했고 강변 매립 때 건설업체들이 정치자금 내고 공사 따려고 압력 넣는 것도 끝내 안 들어주었다. 이는 권력의 미움을 사는 기제가 되었는데, 실제 친지들로부터 “적당히 타협하고 살아야 하는 거 아니냐.”는 핀잔도 들었다.
내가 좀 까칠한 성격이어서 주위에서 말도 듣지만 천성이어서 그런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나는 군대 있을 때부터 아첨하는 사람을 싫어했다. 특히 다른 사람을 험담하는 사람은 곁에도 못 오게 했다. 사람이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자기 욕한다는 소리 들으면 기분 좋을 리 없다. 그래서 안 듣는 게 최고고 안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
각설하고, 사실 건설차관으로 지내는 동안 나는 충청남도 지사로 3번이나 갈 기회가 있었지만 여의치 않았다. 나 자신 지방자치제가 시행되기 전인 당시 도지사에 그리 애착을 느끼지 못했던 탓도 있었다.
그때 길재호[吉在號, 1923.-1985.], 김용태[金龍泰, 1926.-2005.] 의원이 충남도지사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던 공화당의 막후 실력자였는데, 두 분 다 나를 충남지사로 밀었다. 처음에는 김용태 의원이 충남지사로 나가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타진해왔는데 나도 썩 내키지 않았고, 아버지도 탐탁찮게 생각해서 확답을 안 했다. 두 번째는 정일권 총리 집에서 길재호 의원이 권유했는데 정일권 총리가 “건설부는 최 차관이 없으면 곤란하다.”며 만류했다.
그러던 끝에 육사동기인 오치성[吳致成, 1926. ~ ] 공화당 사무총장이 나에게 당으로 올 것을 강력히 권했다. 그는 내게 “장관, 지사 같은 임명직보다는 선출직은 능력만 있다면 보장되니 더 낫다.”며 당 정책연구실 차장으로 보임했다. 그 후 1970년 한 선거구였던 충남의 보령(保寧), 서천(舒川)이 분구되며 나를 보령 지구당위원장으로 임명했다.
그런데 이때 또 8대 총선 전에 개각을 한다며 충청도 지역안배 차원에서 내가 보사부 장관 물망에 오르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나 막상 개각에서 나의 이름은 빠졌다. 그 후 김형욱 부장을 만났는데 직선적인 성격인 그 답게 자기가 반대했다고 실토했다. 그는 “최종성은 혁명주체도 아닌데 왜 장관까지 거론되느냐.”는 불만이 있었다며 그렇게 말했다.
그렇게 장관발탁설이 유야무야되고 그 후로 박경원[朴敬遠, 1923 - 2008] 내무장관이 직접 내 사무실로 찾아와서 충남지사로 나가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지만 계파싸움이 개입되어 있는 것 같아서 사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