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공화당 정책연구실은 학자들을 불러 은밀히 ‘3선개헌’ 연구를 진행시키고 있었다. 나는 3선 개헌 같은 정치적인 의제에는 거리를 두고 내 전공인 건설을 살릴 수 있는 일을 연구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내 지역구인 보령군에 시범적으로 농촌 근대화를 시행하는 일이었다. 이는 훗날 새마을 운동의 모태가 되었다.
박경원[朴璟遠, 1923. - 2008.] 내무부 장관이 정책연구실 차장이 예산심의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내 말을 잘 들어주었다. 그때 나는 내무부로부터 충청남도 특별교부세로 2천여만 원을 따냈다. 요새로 환산하면 20억 이상은 족히 되는 거금이었다.
나는 이 돈을 보령군의 200여개 자연부락에 10만원씩 배당을 해서 철근, 시멘트 등 건축자재를 지원해주었다. 그렇게 해서 주민들이 자치적으로 노동력을 동원해 경운기가 다닐 수 있도록 마을 길을 넓히고 회관을 짓게 했다.
마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회관을 지으면 나는 국기 게양대를 세워주고 은행나무를 두 주씩 심어주었다. 또 정부의 원조를 내 농업 관련 서적을 보내 마을회관에 문고(文庫)를 만들어주었고, 기금을 주어 오늘날 새마을금고(金庫)의 전신인 금융사업을 시범적으로 운영시켰다.
마을문고는 선진영농을 공부하고 농촌청년을 계몽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마을금고는 초등학교 기성회비를 빌려주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초등학교 기성회비가 500원이었다. 그 돈이 없어서 학교를 못가는 농촌아이들이 많았는데 마음금고가 그 돈을 빌려주는 역할을 하며 가난한 농촌마을의 학자금 지원역할을 톡톡히 한 것이다.
당시 보령군 마을이 200여개가 되었는데 한 부락 당 만 원을 주고 주민들이 또 만 원을 더해 2만원을 종자돈으로 해서 하나의 금융으로 자리를 잡아 나간 것이었다.
1971년 제7대 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의 박정희 후보와 신민당의 김대중 후보가 박빙의 승부를 펼쳤다. 보령은 전통적으로 야당세가 강했지만 이때 나는 박정희 후보의 만 표차 승리를 이끌어 냈다. 그리고 대선에 이은 8대 총선에 나는 공화당 후보로 출마해서 무난히 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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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2년 8대국회에서 충남 국정감사를 하고 있는 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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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에 당선되고 나서도 나는 지역구활동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가장 기억나는 것은 국기함을 보령군 전 세대에 지원해준 일이다. 당시 농촌지역에서는 국기를 게양했다가 하강하면 마땅히 둘 곳이 없으니 똘똘 말아서 처박아두기 일쑤였다.
나는 국기가 그렇게 취급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플라스틱으로 국기함을 만들어 보령군 전 세대에 나누어 주었다. 그런 연유로 1970년대만 해도 보령에는 집집마다 마루 선반에 국기함이 하나씩 있었다. 보령군 전 세대에 돌아가도록 함을 만들었으니 당연히 많은 돈이 들어갔는데 다행히 보령 출신의 기업인 보령약국, 보령제약에서 물적 지원을 해주었다.
사실 내가 그렇게 지역구 활동에 열성적이었던 것은 그만큼 지역기반이 허약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선대 대대로 살아왔지만 나는 보령에서 초등학교 졸업도 못했을 정도로 뿌리가 깊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보령에서 초·중·고 다 나온 후보들에 비해 고향얘기가 먹혀들지 않았기 때문에 지역구 활동에 더 신경을 쓴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나의 국회의원 생명은 짧았다. 박정희 대통령은 8대국회 개원 1년 6개월 만인 1972년 10월 국회를 해산했다. 결국 나는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도중하차했다, 운이 없었다. 그 후 10월 유신, 긴급조치(緊急措置) 발동으로 정국은 혼란스러웠다.
8대 국회가 해산하고 소(小)선거제가 중대(中大)선거구제로 바뀌면서 보령, 서천, 부여가 한 선거구로 통합되었다. 이 지구당위원장 자리를 놓고 공화당 정권의 2인자인 김종필 씨와 부딪히게 되었다. 나는 그와 싸우는 것보다는 내가 양보하는 것이 순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