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나는 고심 끝에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수원(水原)으로 내려와 농사를 지었다. 물론 나는 서울 연희동에 집이 있었고 1986년 공직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그곳에 거주했다. 말 나온 김에 여기서 잠깐 그동안 내가 살아왔던 집 얘기를 해야겠다. 나는 부산에서 공병재생창장을 하던 시절 영도 청학동에다 AID자금으로 처음 내 집을 마련했다.
그 후 군에서 예편하고 건설부에서 기획관리실장으로 근무하던 시절인 1963년 경 홍익대학교 앞인 서울 서교동에 15평짜리 국민주택을 배당받아 샀다. 그때 마침 군에서 예편했기 때문에 퇴직금이 있었다. 그런데 운전사와 비서, 선인장 관리인, 가정부 등이 숙박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방 두 개짜리 집으로서는 영 불편했다. 그러던 차에 마침 옆의 국민주택이 매물로 나와서 나는 이 집을 구입해 방도 두 개 더 들이고 온실도 만들었다.
공화당 충남 보령 지구당 위원장을 맡고나서는 시골사람들이 상경하는 일이 잦아졌다. 서울에 오면 여관에서 재울 수밖에 없는데 여관비 대주는 것도 부담되고, 통행금지 걸리는 일도 많았다. 통금에 걸리면 경찰서에 가서 데리고 와야 하고 우리 집에 재워야 하는데, 마루 바닥에 재울 수도 없고 난감했다.
그때 연희동에 120평 대지가 나와서 나는 국민주택을 팔아 집을 지어 이사를 했다. 백오십만 원 했던 서교동 국민주택이 10년 만에 천오백만 원으로 뛰었다. 그래서 서교동 주택을 판 돈과 10년 동안 모은 돈을 보태서 집을 불린 것이었다. 2층으로 지은 연희동 집은 1층에 안방과 거실 식당이 있고, 방이 2층에 3개, 지하층에도 2개가 있었으므로 저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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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2년 연희동 집에서 아내와 2남2녀 자식들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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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였는지는 몰라도 신문에서 내가 호화주택에 산다는 기사가 났다. 그 바람에 청와대에서 조사도 하고 곤욕을 치러야 했다. 신문에 기사화됨으로써 마치 정당치 않은 일을 한 것처럼 오해를 받게 된 것이다. 어쨌거나, 그런 기분 좋지 않은 일을 겪었는데 공직에서 물러난 후 본격적으로 수원농장에서 기거하다시피 하던 나는 최근 연희동 집은 팔았다. 자식들은 물려주기를 바랐지만 비싼 세금을 감당하기가 벅찼다. 국회의원, 조경공사 사장, 주택협회 회장, 대한건설진흥회 회장을 연희동에 살며 지냈다. 한 30여년 살았다.
각설하고, 나는 군에 있을 때도 나무심고, 농사짓는 것을 유달리 좋아했다. 8대국회가 해산(解散)되어 아무 공직도 없는 야인(野人)이 된 나는 제2의 고향인 수원(水源)에 사두었던 9천여 평의 땅을 개간하고 씨를 뿌렸다.
포도, 딸기 등을 재배하고 양어장을 만들어 양어도 했다. 그렇게 1년 6개월여가 흐른 어느 날이었다. 이낙선[李洛善, 1927 - 1989] 건설부 장관이 보자는 연락이 와서 만나게 되었다.
당시는 건설부 산하에 공기업인 <조경공사(造景公社)>를 설립할 때였다. 이 장관은 “국토조경을 위해 공사를 만들어야겠는데 당신이 적임자다, 사장을 맡아 달라.”고 했다. 나무를 좋아하고 건설이 특기인 내가 주저할 이유는 없었다. 이 장관은 “대통령의 뜻이기도 하다“라고 덧붙였다.
임명장을 받기 위해 청와대에 들어가니 박 대통령이 ”자네 요즘 농사짓는다면서?“라고 물었다.
”네, 수원의 노송지대 쪽으로 내려와 농사로 소일하고 있습니다.“
”그래? 거긴 내가 식목일 때마다 자주 식수하러 갔던 곳인데. 사도세자 능 있는데 말인가?“
“네, 지지대 넘어서 있는 산 쪽입니다.”
몇 마디 일상적인 얘기 끝에 박대통령은 “조경공사는 내가 대통령이 아니면 하고 싶은 일이야. 자네 농장을 가꾸는 것도 좋지만 나라농장 한번 가꿔봐.” ‘내가 대통령이 아니면 하고 싶은 일’이라는 말이 지금도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거니와 1974년 나는 친정이랄 수 있는 건설부 산하의 조경공사(造景公社) 사장에 취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