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아내에게 회한(悔恨)으로 남아 있는 게 두 개가 있다. 하나는 다섯 살 때 생이별한 생모(生母)이고 다른 하나는 6·25때 생이별한 아내의 부모, 그러니까 장인(丈人), 장모(丈母)에 대한 애틋함이다.
나와 아내는 북에 두고 온 장인 장모, 친정부모에 대한 자책감을 안고 살았다. 6·25때 생이별한 후로 생사를 알 길도 없거니와 소식도 전혀 모른다. 이미 밝혔듯 딸 둘(아내와 처제)은 월남했고, 아들, 그러니까 나의 처남이 되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그는 6·25때 행방불명되어 지금까지도 생사를 알 길이 없다. 처남은 해방 후 김일성 공산정권이 들어서자 서울로 가 공부를 했으나 6·25전란 중에 행방불명 된 것이다.
아내와 같이 내려온 처제는 내가 대대장 할 때 데리고 있던 장비장교를 소개해서 결혼을 시켰다. 지금은 아들, 딸 훌륭히 키우고 잘 살고 있다.
나는 평생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사무치게 품고 살았다. 심지어는 엄마한테 “공부 잘해라.” “싸우지 마라”는 잔소리 듣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얼마나 어머니를 그리워했는지 서울공고(경성공고 후신) 다니던 시절, 기차통학을 하다가 어머니 얼굴을 닮은 아주머니를 어머니라고 부르며 따라 붙은 적이 있었다. 지금도 오죽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쳤으면 그랬던가 싶다. ‘우리 어머니일지도 모른다, 아니 어머니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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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머니와 / 내가 건설차관 하던 시절 어머니가 연희동 집에 다니러 오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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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버림을 당하고 친정집에 있다가 개가했다. 의붓아버지가 어머니를 아껴주시고 참 괜찮은 분이셨다. 어머니는 의붓아버지와의 사이에 3남매를 두고 잘 사셨다.
1960년 부산에서 공병재생창장과 공병학교 교수단장으로 있다가 서울 육군본부로 발령을 받아 왔을 때 나는 마침 안채 바깥채로 된 비어 있는 친구 집이 있어서 거기서 살았다. 당시 어머니가 서울로 나를 만나러 오셨다. 그때 바깥채에는 아버지가 계셨다. 나는 아버지 몰래 어머니를 사랑방에 묵게 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그것을 눈치 챘다. 반기지는 못할망정 모른 체도 하실 수도 있으련만 아버지는 어머니한테 “왜 남의 집에 와 있느냐?”고 소리를 쳤다. 그때 아버지의 그런 태도에 얼마나 화가 났는지 나는 아버지한테 “왜 아들집에 오시면 안 됩니까? 그건 제 뜻이지 어머니 뜻이 아닙니다!”며 대거리를 했다. 아버지는 그때 더 이상 아무 말을 안 하셨다.
이상하게 나는 아버지 쪽 형제와는 서먹서먹한 편인데 어머니 쪽 형제와는 이물 없이 지냈다. 그래서 어머니 쪽 형제들이 내 생일 때나 명절 때도 오고 교류도 많았다.
어머니는 당신의 도움 없이 성장해 고위관직에 오른 나를 무척 자랑스러워하셨다. 내가 8대 총선에 출마할 때는 시장, 군수 이런 지방 유지들이 앞 다투어 어머니 집을 찾아가 인사를 하니 나름 기분이 좋으셨던 모양이다. 내가 가니 “애야 군수가 왔더라.”, “서장이 왔더라.”며 자랑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떠오른다.
어머니는 내가 조경공사 사장으로 재임할 때인 1976년 돌아가셨다. 의붓동생들이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며 자리를 잡았는데 아들집에 왔다가 불의의 사고를 당해 향년 87세로 운명 하셨다. 연탄가스 중독이었다.
의붓 막내동생이 서울에 새집을 장만해 집들이를 했다. 어머니와 의붓아버지는 보령에서 올라와 막내아들의 집들이를 하고 그곳에서 주무셨는데 그만 연탄가스 중독이 되었다. 의붓아버지는 그때 바로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일 년여 투병을 하시다가 후유증을 견디지 못하고 돌아가시고 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