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결코 나는 모범소년은 아니었다. 역시 4학년 때의 일이다.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데 일본인 교장선생님이 지나갔다 그때 내가 교장선생님 뒤에다 대고 “짱꼬로!”라고 소리를 치며 놀렸다. ‘짱꼬로’라는 말은 당시 중국인을 하시(下視)할 때 쓰는 말이었는데, 언젠가 아버지가 지나가는 말로 “짱꼬로 같은 놈이 교장으로 앉았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말이 생각났던 것이다.
교장선생님이 그 소리를 듣고 화가 나서 “이놈의 새끼, 어린놈이 버르장머리 없이!”라며 쫒아와 내 뒷덜미를 잡아챘다. 나는 그때 교장관사로 끌려가 대막대기로 흠씬 두들겨 맞았다.
내가 4학년 때인 1937년 일제는 일본과 조선의 일체라는 뜻으로 내선일체(內鮮一體)를 선포했다. '내(內)'라 함은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전, 그들의 해외식민지를 '외지(外地)'라 부른데 대한 일본 본토를 가리키는 '내지(內地)'의 첫자이며, '선(鮮)'이란 조선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내가 6학년 때인 1939년에는 일본 왕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황국신민화(皇國臣民化)가 전개되면서 창씨개명(創氏改名)이 강요되었다. 그러나 우리들이 그때 식민지라는 것을 제대로 이해했던 것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3, 4학년 때부터 우리는 풀을 베어서 퇴비를 만드는 근로동원을 자주 나갔다. 풀을 베어 쌓아서 썩혀 퇴비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 작업을 하고 오는 길에 나는 일본 군가 가사를 바꿔서 부르곤 했다. ‘천황님 대신해서 일본군대가 불의를 친다’ 이런 가사로 기억하는데 ‘훌렁 까져라’, ‘개판이다’ 이런 식으로 욕을 넣어 크게 불렀다.
어린나이에 무슨 반일(反日)의식이 있었다기보다는 근로동원에 대한 불만 같은 것이었다. 고노라는 일본인 교장은 직접 야단을 안 쳤다. 아버지가 경찰관이다 보니 내게 함부로 하지 못했던 면이 있었다. 결국 교장은 순사부장에게 이르게 되고 순사부장이 아버지한테 얘기를 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렇게 엄격하신 아버지인데도 그 일로 심하게 야단은 치지 않으셨다. 그런 일이 있었느냐고 물으며 너무 대놓고 그러면 안 된다고 주의를 주신 정도였다.
의식이 있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지만 어렸을 때 우리는 이런 노래를 몰래 부르기도 했다. ‘일’, 일본서 ‘이’, 이등박문이가 ‘삼’, 삼천리 강산을 뺏으러 왔다가 ‘사’, 사지가 발발 떨려서 ‘오’, 오대산을 넘다가 ‘육’, 육혈포에 맞아 ‘칠’, 칠요를 하다가 ‘팔’, 팔이 썩어 들어가 ‘구’, 구데기가 나서 ‘십’, 십일 만에 죽었다.
4학년 때 초등학교 이름이 ‘보통학교’에서 ‘소학교’로 바뀌면서 편제도 바뀌었다. 3년제의 심상과(尋常科)와 2, 3년제의 고등과로 나누어 실제 수업연한은 5, 6년이 되었다.
5학년 때 나는 정남면에서 심상소학교인 오산 <성호 초등학교>까지 기차를 타고 등하교를 했다. 병점(餠店)으로 나와서 기차를 타고 오산(烏山)으로 통학했다. 한번은 3등 칸을 가기위해 2등 칸을 지나가는데 대위와 소령 계급장을 단 일본군 장교 두 사람이 타고 있었다. 그런 계급장을 본 일이 없었던 나는 가는 길을 멈추고 넋이 빠져서 그들을 쳐다보았다.
소령이 “너, 뭐야?” 하며 내 팔을 잡아끌었다. 그래서 내가 경례를 딱 붙였다. 일본군 장교들은 그런 나를 “아, 그놈 똘똘하다.”며 “황국신민의 맹세를 외울 수 있느냐?”고 물었다. 당시 학생들은 아침조회마다 황국신민의 맹세를 외웠기 때문에 다 알고 있었다.
나는 호기롭게 외울 수 있다고 하고 큰 소리로 외웠다. 그러자 그들은 연신 “착하다, 똑똑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가방에서 포장한 양갱 한통을 꺼내주었다. 당시 우리는 일 년 열두 달 가야 그런 것은 먹어볼 수 없었다. 나는 양갱을 받아가지고 좋아서 학교로 왔다. 그러나 그 귀한 과자를 함부로 뜯어보거나 먹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오후 시간에 담임선생님한테 보여주며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그 담임은 일본인이었는데 ”그래 참 장한 일 했다“고 하며 ”집에 가서 어머니 아버지한테 얘기하고 열어보라“고 했다.
계속 먹고 싶은 것을 참은 나는 저녁에 집에 가서 아버지가 퇴근해 오시기를 기다렸다. 아버지가 오셔서 우쭐해서 양갱을 꺼내어 저간의 사연을 얘기했다. 아버지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잠자코 듣고 계시더니 버럭 고함을 질렀다.
“이놈아, 일본 놈 종이 되고 싶어!”
아버지는 비록 일제치하에서 경찰을 하고 있었지만 국민계몽을 염두에 두면서 속으로는 항일의식을 가지고 계신 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