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는 당뇨뿐만 아니라 고혈압, 신장, 척추가 좋지 않아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 척추 때문에 보행도 불편할 정도지만 나는 결코 병과의 싸움에서 물러서지 않고 버티고 있다. 6·25때 그 빗발치는 총알도 나를 피해 가지 않았던가.
나는 오래전부터 술, 담배를 끊고 절제된 생활을 하고 있거니와 공직일선에서 물러난 후부터는 과욕을 부리지 않고 꾸준히 운동을 하며 되도록 자연을 벗 삼아 살려고 노력했다. 정치도 그랬지만 과욕을 부리지 않으니 실패를 해서 곤욕을 겪는 일도 없었다. 어찌 보면 모험을 하거나 야망을 꿈꾸지 않았다는 얘기도 될 것이다. 그래서 대성(大成)한 것도 아니고 무난한 삶을 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원래 나는 성질이 급하다. 그러다보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인데, 자연에 둘러싸인 농원에서 보내는 황혼기의 삶은 하루하루가 행복이었다. 한가할 때는 책 보고, 산책하고…. 그러나 나는 이제 늙었다. 요즘은 거동이 힘들어 나무와 꽃들이 만발한 그 좋은 농원을 산책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 육체의 노쇠…, 인생무상을 느끼며 울컥할 때가 많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강한 승부근성을 배웠고 검도 4단의 강인한 체력을 갖고 있었다. 한편으로 나는 어렸을 때부터 독서를 좋아했다. 그런 습관은 군 생활 때도 여전히 이어져 문무(文武)를 고루 닦고 또 겸비하려고 노력했다.
일제시대 경성공고를 졸업하고 해방 후 육군사관학교를 나와 군에 투신한 후 나는 부산의 공병대대장 시절, 야간으로 동아대학을 졸업했다. 그때 부관이 야간 대학에 다니고 있었는데 내가 늦게까지 퇴근을 안 하면 학교에 못가니까 전전긍긍했다. 그러면서 나한테 동아대학에 다니라고 자꾸 권했다. 결국 부관이 절차를 다 밞아주어 3학년 편입시험을 봐서 합격했다. 시간도 없고 업무에 쫓겨 학교를 제대로 못 나갔지만 그래도 학점을 받아 졸업은 했다.
나는 학교의 학업 못지않게 독서로 지적편력을 했다. 군사학이든, 토목공학이든 그 길을 걷는 한은 나는 독학을 해서라도 충분히 체득을 하고 일에 임했다. 나는 어떤 업무가 주어지면 밤새 공부를 해서라도 익혀야만 직성이 풀렸다. 현역 시절 골프를 치지 않았던 나는 절약된 돈은 취미인 선인장 가꾸기나 책을 사는데 할애했고 매주 책값으로 몇 만원씩 썼다. 일주일에 꼭 한두 번은 시내 서점에 들렀고 단 한 구절이 필요해도 그 책을 사야 직성이 풀렸다.
그렇게 독서를 좋아하다보니 1969년에는 장서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직무 수행에 필요한 책을 구하다보니 당시로서는 꽤 많은 5000여권을 소장하게 되었는데 워낙 바쁜 탓에 규칙적으로 책을 읽기보다는 차타고 갈 때나 화장실 같은 데서 틈틈이 읽었다.
독서 외에 내가 즐겼던 취미가 있다면 외국의 공예품, 기념품, 그리고 상아(象牙)나 호랑이 가죽 같은 희귀한 물건들을 수집하는 일인데 사실 수집은 나보다는 아내의 취미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말일 것이다. 수집은 내가 공직에 있을 때 기공식 같은 데서 테이프를 끊은 가위, 감사장, 이런 것을 잘 정리해두면서 시작되었다.
내가 해외출장을 나가게 되면 아내는 그 나라의 커피스푼 같은 것을 사다 달라고 해서 모았다. 그러다가 같이 여행을 다니면서 골무라든가, 자기(磁器)라든가 기념품을 사다가 모으다 보니 이제는 수천 점이 된다. 현재 본관 4층을 가득 채워 전시하고 있는데 정식으로 기념관을 만들어 농원에 있는 20여 점의 각종 조형물과 함께 전시를 할 계획도 갖고 있다.
또 내가 아내와 함께 했던 취미라고 한다면 여행을 들 수 있다. 공직일선에서 물러난 후인 80년대 후반부터 해외여행을 많이 했다. 어느 나라를 갔다 왔느냐고 묻는다면 간 나라보다는 가지 않은 나라를 열거해야 할 정도다. 아마 50여개 가까운 나라를 가지 않았나 싶은데 안 가본 나라라면 인도, 아프리카 남부와 남아메리카 정도가 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