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내, 최기복(崔岐福)과 사이에 창순(昌洵), 희순(喜順), 옥순(玉順), 용순(勇洵) 등 2남 2녀를 두었다. 장남 창순은 이미 적었듯 내가 미국유학 할 때 아내 혼자 낳았다. 장녀 희순은 중령(中領)으로 진급하고 김해(金海)에 있는 공병학교, 고등군사반을 졸업하고 육군본부 공병감실 작전교육과 선임장교로 근무할 때 서울에서 낳았다. 차녀 옥순은 208건설 공병대대 대대장으로 있다가 부산 공병기지창의 재생창장으로 있을 때 낳았다. 차남 용순은 대령진급을 해서 소우리에 있는 1103공병단장으로 있을 때 낳았다.
자식들 이름은 다 할아버지가 지어서 호적신고까지 했다. 용순이 만은 내가 지었다. 원래 창순이를 용순이라고 지어서 보냈는데 할아버지가 창순이라고 지어 호적신고를 했다.
자녀들은 이제 다 장성해 각기 일가를 이루고 있다. 장남 창순은 중앙대학에서 농업계통을 공부했다. 장차 농장을 할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었지만 뜻대로 되지 못했다. 내가 발령을 받아 근무지를 자주 옮기다보니 초중고를 여섯 번이나 전학을 한 것이 곤욕이었을 것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업을 몇 번 했지만 여의치 않았고 지금은 삼풍농원의 전무로 근무하고 있고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
장녀 희순은 서강대학을 나와 결혼해 아들 하나를 두었고 역시 장남과 함께 삼풍농원에 근무하고 있다. 차녀 옥순은 서울예고와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대학을 졸업했고 결혼해 아들 하나를 두었다. 차남 용순은 동국대학 조경학과를 나와 한양대학에서 석사과정을 거쳐 성균관대학에서 박사학위(조경학)를 받았다. 영국에 교환교수로 갔다가 현재 안양시 조경전문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용순은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두었다.
워낙 엄한 양육 탓에 아버지가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던 나로서는 그런 가정교육은 자식들한테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처럼 가정을 지옥처럼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자식들이 아버지 앞에서 무릎 꿇고 앉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자식들은 아버지가 엄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자식농사에 있어서 욕심을 부리면 한이 없다. 아들들이 삐뚤어지지 않고 장성한 것만으로도 만족할 일이다.
아이들의 성장기 때 내가 군에 있다 보니 부자(父子)의 살가운 정을 나눌 시간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내가 언제나 온실을 가꿨기 때문에 온실 관리인등 아이들보다 대 여섯 나이가 많은 일가친척이 항상 같이 있었고 또 가정교사가 있어서 보살핌 속에 성장했지만 정작 내가 군대에 있다 보니 자녀들과 함께 할 시간은 많지 않았다.
|
|
| ▲ 1972년 막내 용순의 생일을 기념하며 가족과 |
|
사실 요즘 상상하기 어려운 일로 가정이 파괴되는 것을 보노라면 옛날 아버지들이 너무 엄격하게 자식들을 키웠던 것도 문제가 있지만 지나치게 과보호로 키우는 세태도 문제다. 요즘은 아이들이 공공장소에서 난리를 쳐도 그저 부모는 “잘한다, 잘한다” 한다. 내 자신 고난을 겪으며 성장했지만 예의범절(禮儀凡節)을 경시하는 요즘의 풍토를 볼 때 우리 아버지식 교육도 아주 무의미한 것은 아닐 것이다.
가족 이야기를 하면 나는 아내에 대한 무한한 고마움을 갖고 있다. 공직생활 하다 부정부패에 휘말려 감옥 가고, 건강을 잃고 쓰러진 친구도 있고, 부인이 치맛바람 일으켜 패가망신 당한 사람도 많다. 내가 오늘날까지 대과(大過)없이 걸어와 황혼기를 보내고 있는 것은 아내의 내조덕분일 것이다.
살아오면서 아내는 나에게 부담되는 언행 같은 것은 일절 하지 않을 정도로 사려가 깊었다. 신혼 초 일선에 있을 때도 신문이나 방송이 없을 때니 전황이 굉장히 궁금할 텐데도 한 번도 묻거나 따지는 일이 없었다. 부모만 남겨두고 월남해서 친척 하나 없고, 전황 때문에 굉장히 애를 태웠겠지만 아내는 일절 내색하지 않았다. 만약 그런 걱정스런 얘기를 꺼내고 그랬으면 내가 일에 전념하는데 장애가 되었을 것이다.
내가 군을 떠나 공직에 있을 때는 집에서는 조용한 내조를 하면서도 아내는 장차관과 공공기관장 부인의 모임인 양지회 총무를 맡아 활동을 하기도 했다. 아내가 총무를 맡았던 것은 가장 나이가 어리기 때문이었는데 열성적으로 활동을 해서 육영수 여사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았다.
얘기했듯, 나는 결혼할 때까지 의지할 사람이 없었다. 결혼하면서 비로소 아내를 의지하게 되며 마음의 안정을 찾은 삶을 산 것이다.
가정과 내조뿐만 아니라 농원의 운영관리도 아내의 몫이었다. 그래도 내가 말년에 농원이라도 갖고 밥 먹고사는 것은 아내가 근검절약하며 건사를 잘했기 때문이다. 나무조경에서, 시설물 관리, 식당관리 등 여러 가지로 신경 써야 할 게 많은 농원도 아내가 없으면 하루도 유지가 안 되었고, 안 될 것이다. 아내가 2013년 현재 85세다. 편히 쉬어도 시원찮을 판에 늘그막에 밥장사를 시키는 것 같아서 안쓰럽고 미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