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선 후 아버지는 정치를 그만두고 사업을 했다. 내가 공병학교 교수단장을 지내고 육군본부로 발령이 나서 부산 집을 팔아 서울에다 집을 하나 마련하려고 했는데 아버지가 자꾸 닭을 키우겠다고 해서 결국은 그 돈으로 부천(富川)의 소사에 700평 정도의 땅을 샀다. 그곳에 아버지 집과 양계장을 크게 짓고 닭을 키웠다. 그런데 몇 년을 하시더니 수지가 맞지 않는 다며 나한테는 한마디 상의도 없이 몽땅 팔아 버리셨다.
그 후 소사에 국민주택을 얻어 기거하시며 영등포시장에 종이가게를 하나 사서 운영하셨다. 그런데 그 얼마 후 화재로 다 잃고 말았다. 아버지는 이상 하리 만치 사업을 벌이시면 불이 나서 전 재산을 잃곤 했다. 내가 기억하는 화재만 해도 네댓 번은 된다.
게다가 복이 없는 건지, 나를 키워준 계모도 척추가 가라앉는 병에 걸려 일찍 운명하셨다. 장례도 내가 다 치루어야 했다. 아버지가 뒷수습을 안 하시니 결국 장례도 다 내 몫이었다. 그 후 아버지는 또 장가를 들었다.
1972년 아버지의 환갑을 맞아 잔치를 하니 축의금이 꽤 들어왔다. 내가 정부에 있을 때니 뭉칫돈이 좀 들어왔던 것이다. 그 돈으로 기거하시던 돈암동 산비탈의 하꼬방을 헐고 15평짜리 새집을 지어드렸다. 그런데 또 그곳에 사시는 동안 부인이 몇 번 바뀌었다. 늘그막에 오는 여자는 돈보고 오는 것이고 결국 돈 없으면 가는 것 아닌가. 그러면서 아버지는 또 재산을 몽땅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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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할아버지, 아버지, 나, 큰 아들 4대가 모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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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버지는 재복(財福)도 기구했지만 평생 처복(妻福)도 없었다. 아버지는 새 어머니와 사별(死別0한다거나 이별(離別)을 해서 한 부인과 그리 오래 살지를 못했다. 그래서 연민이랄까, 그런 느낌도 없지 않지만 아버지가 자초한 일이었다. 자식한테 뿐만 아니라 부인한테도 인색하고 엄했으니까 말이다. 부인이 제대로 붙어 있지 못하는 것도 남편으로서 다정다감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평생 다섯 재취(再娶)를 얻어 살았다. 마지막 재취는 나의 아내보다 열 살이 아래였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보다 10살이 아래인 웃지 못 할 촌극까지 맞았던 것이다.
현재 이복형제가 나까지 5형제 생존해 있다. 제사나 명절 때면 다 모인다. 어쨌든 나는 평생 아버지한테 불만을 갖고 살았지만 그러나 자식 된 도리와 천륜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백말 띠인 아버지는 팔자가 셌다고나 할까, 인생의 기복이 무척 심한 분이었다. 그런데 그런 고난이 있어도 털끝만큼도 지조는 굽히지 않으셨다. 돌아가실 때까지 시종일관.
아버지는 1999년 향년 93세로 돌아가셨다. 젊었을 때부터 냉수마찰을 하시고 돌아가실 때까지도 열심히 운동을 하실 정도로 의지가 강하신 분이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이틀도 앓지 않고 돌아가실 정도로 고생 없이 운명하셨다. 다른 복은 없었지만 장수하시고, 천수는 누리셨다는 생각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