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환갑(還甲)이 넘어서 갑자기 정치판에 나간 적이 있다. 불려나갔다고 하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86년 주택사업협회장을 끝으로 공직일선을 떠나 농장 가꾸기에 전념하던 나에게 199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종필(金鍾必) 씨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는 나에게 14대 대통령선거의 민자당 서천, 보령지구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달라고 했다. 서천, 보령 지구당위원장인 김용환(金龍煥) 씨가 민자당을 탈당해 당원 700명을 데리고 정주영[鄭周永, 1915. - 2001.] 씨가 창당한 국민당으로 가는 바람에 지구당위원장이 공석이 되어버렸다. 서천, 보령지구에서 민자당 간판을 내려 버린 것이다.
그런 상태가 되어 민자당이 서천, 보령에 누구에게 지구당 위원장을 맡길 것인가를 두고 고민을 하다가 나를 점찍은 것이었다. 나는 김종필 씨의 제의를 듣고 대답은 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자 대통령 후보인 김영삼 씨가 농원까지 나를 찾아왔다. 김영삼 씨가 “지구당을 맡아서 선거운동을 해 달라.”는 정중한 부탁을 받고 더 이상 머뭇거리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지구당 위원장을 맡아 보령으로 내려갔다.
8대 국회로 정계를 떠나왔지만, 김종필 씨의 요청도 있었고 정치에 미련이 남아 있었는지는 몰라도 그때 나는 정치에 뛰어들 각오를 하고 보령으로 내려갔다. 그러니까 63세에 정계에 다시 나간 것이다. 과거 1972년 8대 때는 지구당 위원장모임에 나가보면 내가 가장 젊었는데 이제 나이가 가장 많은 사람이 되었다.
1992년의 14대 대선은 민자당의 김영삼(金泳三) 후보, 민주당의 김대중(金大中) 후보, 국민당의 정주영[鄭周永, 1915 - 2001.] 후보가 치열한 접전을 했다. 나는 김영삼 후보의 당선을 위해 서천, 보령지역을 열심히 누볐다.
그때 나는 큰아들 창순을 데리고 갔다. 지구당 위원장 사무실 4백여 미터 거리에 하숙을 하며 선거운동을 했는데 심장이 좋지 않은 탓에 조금만 긴장하거나, 단상에 올라가 연설을 하면 가슴이 아팠다.
서천, 보령은 민주당의 김대중 후보는 3위권이었고 사실상 김영삼과 정주영의 2파전이었다. 따라서 두 후보의 대리인 격인 김용환과 나의 대결이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내가 이겼다. 김용환 씨의 아성인 서천, 보령에서 김영삼 후보가 5천여 표를 이긴 것이었다.
그때 선거자금은 중앙당에서 지원 나온 5억하고 내 돈 한 3천만 원을 쓴 것 같다. 그 다음 해에 총선이 있었다. 총선에 출마하려면 계속 지구당위원장을 맡아야 했는데 나는 사양했다. 건강이 문제였다. 더 이상의 정치활동을 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심장병이 악화되어 대선 다음 해인 1993년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또 8대 국회에 이어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하고 정치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1993년에 수술을 받으려다가 안 했는데 98년도에 또 심장발작이 있어 삼성의료원에 입원했다. 위험하지만 수술이 불가피하다고 해서 서약서까지 쓰고 수술 날짜를 잡았다. 그런데 남경필 의원의 부친인 수원출신 남평우[南平祐, 1936. - 1998.] 전 의원이 그때 나와 똑같이 삼성의료원에서 똑같은 심장수술을 받았는데, 회복실에서 운명을 했다. 공교롭게도 내 수술하는 날이 남평우 씨가 타계한 날이었다. 그걸 본 아내가 모험이다 싶어 급히 “수술 안 하겠다”고 번복했다.
그 후 나는 심장과 당뇨로 통원하며 꾸준히 약물치료를 받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