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인생이 시작되었다. 생사를 넘나드는 전쟁을 겪으며 군인으로 제 1의 인생을 살았고, 불철주야 국토건설의 건설관료로 제 2의 인생을 살았다면 이제 황무지(荒蕪地)나 다름없는 수원의 땅, 9천여 평을 개간해 <삼풍농원(三豊農園)>을 만들어 가꾸는 삶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모래밭이나 다름없는 삼풍농원 땅 1만여 평을 마련한 때는 1969년이었다. 당시만 해도 허허벌판이었는데 30여 년 동안 개간하고 가꾸어서 지금과 같은 나무숲을 만든 것이다.
원래는 하천부지였다. 정부로부터 불하를 받아 내가 하천개수를 한 것이다. 풀이나면 전부 깎아서 퇴비를 만들어 깔아주니 배수도 잘 되고 나무들이 쑥쑥 컸다. 나무 욕심이 많다보니 어디에 좋은 나무가 있다고 하면 구해오고, 또 수목원에서 몇 주씩 사다 심었다.
처음에는 뒤에 산이 있었고 그곳에 내 묘 자리도 봐두었는데 도로가 나는 바람에 산이 다 잘려나간 것은 지금도 아쉬운 대목이다.
원래 나는 삼풍농원 부지에 <신부(新婦)학교>를 지으려고 했다. 일본의 ‘하나요메’라는 신부학교를 본 따 시집가기 전의 처녀들을 두 달 동안 신부교육을 시키는 일종의 교육기관을 세우려고 했었지만 면밀히 분석과 조사를 해본 결과 장래성이 없어서 그만두었다.
처음에는 그야말로 순수한 농업을 했다. 포도, 딸기 등 농작물을 재배해 짭짤한 수익을 올렸다. 초창기만 해도 봄에는 딸기, 가을에는 포도농장으로 소문이 나고 양어장 등의 시설이 있다 보니 삼풍농원은 수원근방 기업의 사원야유회 장소로 많이 쓰였다. 또 경치가 좋다보니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이기도 했고 딸기나 포도를 먹으러 가족이나 단체들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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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0년대의 삼풍농원 / 이때 삼풍농원은 회사 야유회나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 많이 이용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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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가 한창이던 6, 70년대에 중소기업들이 많이 생겨났다. 경기도의 군포, 의왕, 수원 일대의 공장에서 일하는 사원들이 주말에 마땅히 갈 곳이 없었고 또 사원야유회를 할 만한 데도 별로 없었다. 그런데 우리 농원에 오면 열 개 내외의 중소기업이나 모임이 노래나 놀이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져 있었던 것이다. 연못과 아치 등의 시설이 있고 과일이 있으니 술과 김밥만 준비해오면 야유회 장소로 안성맞춤이었다. 많을 때는 한 3천 명 정도가 농원에 들어와 놀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
그렇게 한 10년 운영을 했는데 70년대 종반에 큰 수해를 입었다. 대홍수로 양어장이 다 쓸려나갈 정도로 피해를 입어서 두어 달 동안 문을 닫고 복구를 해야 했다. 마침 그때 내가 조경공사 사장을 했던 시기여서 농원에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또한 각종 시설도 짓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수영장을 만들고 그 다음으로는 예식장을 만들었다. 수영장의 부대시설로 방갈로도 지었는데 남녀가 와서 혼숙하는 일이 잦아지며 퇴폐적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어서 지금은 이용을 금지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수영장, 방갈로, 예식장, 피로연장, 식당, 연못, 야외예식장, 카페를 만들고 각종 수목(樹木)이 우거진 경관의 휴식공간으로 만든 것은 내가 퇴임하고 나서였다.
그렇다고 자금이 풍부해서 각종 시설을 지은 것은 아니다. 수영장을 지어 거기서 번 돈으로 본관을 짓고, 방갈로를 짓고, 그 다음에 예식장 짓고, 이런 식이었다. 그러다보니 80년대까지만 해도 한 해도 건축공사를 안 한 해가 없을 정도였다. 아마도 군인시절의 공병, 행정관료로서의 건설, 조경 등으로 국토건설을 설계하고 만든 경험의 되새김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만 해도 수원시가 지원도 해주었고 여름방학 때면 농업고등학교 학생들이 찾아와서 체험삼아 일도 많이 해주었다. 특히 수해가 났을 때 학생들이 냇가도 복구하고 돌쌓기도 해주었던 기억이 새롭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