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유색인인 내가 백인의 성역인 IOC의 최고 권좌에 오른다는 것은 그 당시로서는 무리수였는지 모른다. 100년이 넘게 지배해 온 그들만의 영역을 쉽게 내줄 리는 만무했다.
프랑스 파리에서 출발한 IOC는 그 중심이 되는 위원들 중 50% 이상을 구라파(유럽)가 점유하고 있다. 나머지 세 대륙의 표를 모두 확보한다 해도 승산이 반밖에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나는 사마란치만 중립을 지켜준다면 승산이 있다고 보았고 외신들도 그렇게 점치고 있었다. 백인 IOC 위원들 중 상당수가 나와 가까웠고 내 능력과 그동안의 공헌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98년 12월에 터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뇌물 수수 사건은 백인의 아성에 도전하는 나를 흠집 내기 위해 남미와 아프리카 출신의 딕 파운드(Dick Pound) 조사위원장 등 Adhoc 위원들은 최선을 다했다. 조작된 첫 번째 사건이었다. 파운드가 조사위원장이 됐고 로게(Jackque Rogge), 슈미트(Pal Schmit) 등 위원장 후보는 위원이었다. 이 사건으로 어이없게도 나 역시 조사 받는 입장이 되었고, 많은 IOC 위원들이 퇴출되었는데 그때 퇴출된 10명의 IOC 위원들은 전부 나와 가깝고 나를 지지한 사람들이었다. 사실 최근에 문제 된 FIFA나 IAAF는 수백만불의 현금이 왔다갔다한 것이지만 IOC의 솔트레이크 스캔들은 IOC위원들이 식사 대접을 후하게 받았다든가 골프 퍼트를 받는 등 최근의 수뢰 혐의와 비교할 수조차 없는 황당한 내용이었다.
조사위원회에 위원장이었던 파운드도 족보 10만불 가치의 선물을 받았다고 보도되었다. 음바예도 500달러짜리 골프 퍼트를 받고 사마란치는 권총 두 자루를 받았고 프린스 알버트의 만찬 비용이 2천5백불이었다는 등의 내용이 밝혀졌다.
억울한 10명의 위원이 떠나고 시드니 IOC총회에서 다른 20명의 IOC 위원들이 보충되었는데 대부분 유럽 출신 백인이어서 결과적으로는 30표나 되는 지지표를 잃게 된 것이다. 이로써 120명의 IOC 위원 가운데 50%가 유럽 위원으로 채워지게 된 것이다.
어떻게든 나를 흠집 내기 위해서 나에 대한 조사도 치밀하게 진행하였는데 전혀 혐의가 없고 나올 게 없으니까 나중에는 사립탐정까지 동원해 가족들까지 쑤셔댔다. 동양 특히 한국인의 사상에 중심이 되어 온 유교적 전통은 오히려 손님을 접대하고 무엇을 주었으면 주었지 받지는 않는 것이다. 솔트레이크 사건은 나에게 심각한 타격을 줄 것으로 IOC 위원장 후보로 나설 사람들은 기대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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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년, IOC위원장 출마기자회견 직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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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나에 대해 무혐의로 끝난 이 사건을 IOC는 끝까지 물고 늘어지면서 내 이미지 실추를 노렸다. 앵글로색슨 계통의 신문들은 처음에는 대서특필하다가 아무런 결과가 나오지 않자 적이 실망한 눈치였고 그중 몇몇 기자는 자신의 본의가 아니라며 어쨌든 좋지 않은 기사를 내보내서 미안하다고 내게 사과를 하기도 했다.
이 사건이 일단락되고 조용히 출마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2001년 4월 3일 출마를 발표한지 일주일만인 4월 10일, IOC는 사마란치의 일방적인 지시로 IOC 위원장 선거 지침을 만들어 윤리위원회를 통해 발표했다. 하필이면 내가 출마를 발표한 날을 전후해서 직계인 음바예(Mbaye) 위원이 작성하여 일주일 내에 선거 지침이라는 전대미문의 규정을 만들어 발표를 했다.
선거 규정은 ▲IOC 위원들의 개인별 지지 후보 공표 금지 ▲위원들의 후보 개별 방문 금지 ▲위원장 후보 간의 상호 비방 금지 ▲위원장 후보들의 과다한 비용 지출 제한 ▲세미나와 회의조직 금지 ▲투표 전 선거공약 연설 금지 등이 주 내용으로 되어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당연한 규정 같은데 이는 사실 내 손발을 묶는 규정이라고 외신들은 생각하고 있었다. 투표 전까지는 어떤 일이라도 IOC 위원을 방문할 수도 없고 선물도 못 주고 세미나에 참석할 수도 없으며 같이 저녁식사도 할 수 없게 되어있다. 총회에서도 정견발표를 금지시켰다.
강령은 그렇게 만들어 놓고 사마란치와 자크 로게는 이미 예정되어 있는 회의라는 등 여러 명분을 들어 IOC의 비용으로 로게는 ENOC의 비용으로 유럽 각국을 수시로 방문했고 각종 행사에 참여하여 선거 지침을 위반했다.
더욱 어이없는 일은 2001년에 우리나라에서 IOC 문화위원회와 올림픽박람회를 개최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사마란치는 갑자기 아프다는 핑계로 참석을 거부했다. 자신이 분과위원장으로 있는 ‘올림픽 기념품 수집위원회’가 주관하는 행사에 오지 않았던 예는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말레이시아, 인도, 호주, 부탄 등은 방문하면서 일부러 한국에는 오지 않은 것이다. 오지 않은 것만 해도 그렇다고 넘어가겠는데 사마란치 측근들이 참석을 통보한 IOC 위원들에게 전화를 해서 방한하지 말 것을 종용했다고 한다.
사마란치는 올림픽박람회 개최 전에 자신의 직계인 질라디(Gillady)라는 이스라엘 IOC 위원을 통해서 내게 국회 연설을 요청한 바 있다. 나는 “국회 연설이라는 것은 클린턴이나 푸틴 등 외국 원수들이나 하는 것이지 인류를 위해서 봉사하는 NGO인 IOC 위원장이 하는 것은 올림픽 개최를 원하는 나라에서나 한다면 몰라도 관례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대신 청와대 예방과 대통령 면담을 주선해 놓았다고 했으나 사마란치는 방한을 취소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