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9월 15일 오후 7시 29분, 전 세계 60억 인구는 21세기 첫 올림픽이며 평화를 추구하는 인류 최대의 제전인 제27회 시드니 올림픽 개막식을 주목했다. ⌜환경 올림픽⌟이라는 슬로건 아래 막을 연 시드니 올림픽 주경기장의 올림픽 스타디움에는 12만 관중이 운집해 있었다. 세계 200개국에서 모인 16,600명의 젊은이들이 자국의 국기를 앞세우고 한 나라, 한 나라 입장하기 시작했다.
96번째 입장국인 코리아가 불리자 귀빈석에 앉아있는 사마란치 IOC 위원장을 비롯한 12만 관중이 일제히 기립했다. 그들은 뜨거운 박수와 코리아를 외치면서 환호하기 시작했다. 180명의 남과 북 선수단이 하나가 되어서 들어오기 때문이었다. 한국 선수단 기수 정은순과 북한 선수단 기수 박정철은 한반도 통일을 상징하는 한반도기를 높이 들고 180명의 선수단과 힘차게 본부석을 통과하고 있었다.
⌜코리아⌟라고 쓰인 표지판 뒤로 남북 대표 기수가 입장했고, 그 바로 뒤에 나는 대한올림픽위원회 대표로서 북한의 장웅 위원과 손을 잡고 함께 행진했다. 7천만 한민족의 평화 통일에 대한 염원과 분단의 벽을 뛰어넘는 뜨거운 민족애를 느끼면서….
한반도가 남과 북으로 갈린 지 55년, 남북이 하나 된 역사적인 순간은 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12만 관중의 뜨거운 환호로 그친 것이 아니고 텔레비전 방송망과 인터넷을 통해서 지구촌 방방곡곡으로 전파되었다. 남과 북이 손에 손을 잡고 다정하게 입장하는 모습에서 더 이상의 이데올로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스포츠가 추구하는 평화와 화합의 물결만이 출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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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격스런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의 남복 동시 입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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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 통일의 새 장을 열면서 남과 북은 하나라는 민족 동질성을 만방에 과시했다. 어떤 정치, 사상, 종교, 문화적 차이도 이 순간만큼은 모두 사라지고 평화 통일에 대한 뜨거운 열망만이 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것이다.
세계의 언론들도 이날의 감격과 감동을 전파에 실어 전 세계로 보냈다. AFP 통신은 “남북 선수단은 통일의 염원을 스포츠를 통해서 실현시켰다”고 보도했고 미국 CNN 방송도 “남북한은 이날 올림픽 개회식에서 작은 통일을 이룩했다”고 흥분된 어조로 보도했다.
물론 한국 매스컴은 말할 것도 없었다. ‘행진, 7천만 코리아’ ‘통일을 향한 비약, 세계가 축복’, ‘아리랑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12만 명 기립 박수’, ‘Korea is one, 남북이 하나 된 새 역사가 열린 날’, ‘통일팀으로 세계 4위로 비약하자’ 등의 제목을 붙여 톱뉴스로 다루면서 시드니 현지의 흥분된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했다. 시드니 시내와 스타디움 주변은 마치 한반도가 통일이 된 것처럼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축하 파티를 열고 있었다.
개회식 이틀 전 선수촌에서는 남북 선수단장을 비롯한 선수들이 모여서 우즈베키스탄 팀이 가져다 준 위스키 1병을 열어 ‘통일주’, ‘화합주’라 부르며 건배를 할 정도로 화해 무드가 익어가고 있었다. 5분 여에 걸친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 역사적인 순간이 있기까지는 많은 고비를 넘고 사전에 물밑에서 치밀한 협상을 필요로 했다.
나는 북한의 장 웅 IOC 위원과 함께 3개월 이상에 걸쳐 남북 공동 입장에 대해서 논의하고 추진해 온 당사자여기에 더욱 각별한 감동이 가슴속에 밀려왔다.
남북 스포츠 교류의 획기적인 전환점이자 남북 평화 통일을 향한 첫걸음이 된 시드니 올림픽 개회식 동시 입장은 2000년 5월 25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Rio de Janeiro)에서 열린 IOC 집행위원회 직후, 사마란치 위원장의 명의로 된 IOC의 공식 서한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보낸 것이 첫 출발점이었다.
사실 남북 공동 입장이라는 아이디어는 내가 사마란치 위원장에게 제안한 것이었다. 리오데자네이루 IOC 총회를 앞두고 IOC 집행위원회에서 나는 “시드니 올림픽에서 남북한이 동시에 입장하고 경기는 따로 하고 싶은데 IOC가 적극 협조해 줄 수 있겠는가”하고 의견을 냈더니 사마란치 위원장은 “평화를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해야지요”라면서 협조를 약속했다. 그래서 사마란치 위원장의 명의로 된 IOC의 공한이 보내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