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2월 IOC 집행위원회에서 태권도를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19일에는 사마란치 IOC위원장 명의로 된 공문이 우리에게 보내져 아테네 올림픽 태권도 정식 종목 채택을 확인시켜 주었다.
태권도가 시드니 올림픽에 이어서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정식 종목에 채택된 의미는 아테네 올림픽 이후에도 올림픽에 태권도가 계속 남을 가능성이 있다는 증후다.
태권도가 처음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회의는 ’94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103차 IOC 총회였다. 지금은 우호적이지만 당시는 적대감을 갖고 있던 북한 측의 집요한 방해 공작과 태권도와 유사한 무도 종목들의 거센 반발로 태권도 정식 종목 채택은 난항을 겪었다. 그들이 회의장과 본부 호텔 주변을 몰려다녀 사마란치 위원장과 나의 숙소에 특별경비를 요청해야할 정도였다.
그러나 태권도를 기필코 정식 종목으로 채택시켜야 한다는 나의 의지와 신념은 의사 진행에 이어 IOC를 움직였고 투표 85 대 0, 만장일치로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정식 종목이라는 역사를 만들어냈다.
’94년 9월 4일 파리 IOC 총회에서 태권도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고 6년이 지나 다시 아테네 올림픽 정식 종목에 채택됨으로써 태권도는 한층 더 안정된 발전과 세계화를 이룩하게 됐다. 사실, 올림픽 헌장과 올림픽 관련 어떤 규정에도 영구 종목이라는 단어는 찾아볼 수 없다. ’64년 도쿄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된 유도의 경우도 다음 대회인 ’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는 제외됐다.
올림픽의 발상지인 유럽에서 시작된 종목들은 올림픽 정식 종목에 채택되기까지 약 100년의 기간이 걸렸지만 태권도는 1973년에 세계화의 깃발을 올리고 자력으로 세계태권도연맹을 창설한지 겨우 20년 만에 세계에 그 뿌리를 내린 것이다. 1971년 대한태권도협회 회장직을 맡았을 때를 돌이켜 보면 내가 이 일을 해냈다는 것이 꿈만 같이 느껴진다.
조상의 얼과 혼이 담긴 우리 고유의 문화 태권도를 세계인의 스포츠로 승화시키겠다는 나의 꿈은 네 가지 비전에서 출발했다. 태권도의 국기화, 세계화, 국위선양의 기수, 호국의 근간으로 만들자는 비전.
먼저 나는 태권도 국기화를 위한 구심점을 마련코자 혼자의 힘으로 국기원을 건립시켜 사분오열되어 있던 태권도인의 단합을 촉구했다. 그리고 세계화의 전략으로 세계태권도연맹을 창설하였으며 국제경기연맹총연합회(GAISF)에 가입시켰다. 아울러 아시아‧아프리카게임, 국제군인대회(CISM), 국제대학스포츠연맹(FISU), 남미 팬암대회 등에 태권도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게 하는 데 혼신의 노력을 쏟았으며 한 편으로는 국제체육기구에 가입하는 방법을 추진했다. 그동안 정보의 재정지원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이것은 국가나 국제기구 등의 제도권에 들어가서 태권도에 대한 예산과 정책 반영을 유도하여 자연스럽게 태권도의 가치를 높이고 태권도 보급을 확산한다는 복합적인 생각에서였다. 1983년에 팬암게임에 태권도가 들어가는 바람에 1984년 로스엔젤레스올림픽 직후 미국태권도협회(USTU)가 100만 달러의 지원금을 받은 것 등이 좋은 예다.
세계태권도연맹, 국기원, 대한태권도협회, 그리고 해외 사범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세계 속에 태권도의 씨를 뿌리고 열심히 가꾸어 간 결과, 태권도를 하는 나라의 수가 크게 늘고 수련인구도 급증했다.
태권도의 세계화는 ’88 서울올림픽과 ’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시범 종목으로 채택하는 결과를 얻어냈다. 여기에는 IOC의 사마란치 위원장의 지원이 절대적이었다. 그 결실은 ’94년에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정식 종목 채택, 2000년에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정식 종목 채택이라는 쾌거로 이어졌다. 그리고 2008 베이징, 2012 런던, 2016 리우, 2020 도쿄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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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4년 9월 파리 IOC 총회 / 여기에서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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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정식 종목 채택은 많은 의미를 갖고 있다. 태권도 경기는 시드니 올림픽에서 본 것처럼 한국어로 진행한다. 한국어는 불어, 영어, 일본어에 이어 4번째로 올림픽 공용어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또한 한국의 문화가 태권도를 통해서 전 세계에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이다. 한국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세계가 그것을 받아들인다면 이것이 곧 세계화다.
지금까지 서양의 스포츠가 동양으로 수출되어 왔다면 이제는 동양의 스포츠가 서양으로 역수출되는 시대가 되었으며 유도와 태권도가 앞장서서 그 역할을 담당했다. 태권도 종목 자체가 국위선양을 한 셈이다. 우리나라의 올림픽 메달 획득 전략에도 크게 기여하게 되었다.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 수도 크게 늘어나 관광 수입 면에서 적지 않은 효과를 보고 있다. 또 우리는 올림픽에서 태권도를 보면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스포츠는 언제나 국민들에게 꿈과 용기를 심어주었다. 이제 태권도는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세계의 망망대해 속에 뛰어들어 세계와 당당히 경쟁하여 앞으로도 계속 발전해 나갈 것이다.
세계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한다면 결국 낙오되고 마는 것이 무한경쟁시대를 사는 우리의 현실이다. 만약 시드니 올림픽에서 태권도 경기가 성공리에 마쳐지지 못했다면 2004년 올림픽에서는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지 못했을 것이다. 시드니 올림픽에서 태권도는 경기 진행이나 운영 등 모든 면에서 거의 완벽하게 치러졌다. 이에는 이종우, 엄운규 부총재, 이금홍 사무총장의 역할이 컸다.
태권도도 개선해야 할 문제점이 많다. 채점 규정의 개정, 전자호구의 현대화 등이 풀어야 할 과제인데 이는 전 세계인의 동의를 얻어 끊임없이 개선해나가야 한다. 2017년에도 IOC 평가가 한 번 있을 예정이다.
태권도는 예의를 숭상하고 인간성을 중시하는 스포츠다. 따라서 외국인이건 한국인이건 경기력보다도 먼저 훌륭한 인간으로 존경받고 풍부한 인간성과 진취적인 기상을 높이는 것이 태권도가 갖는 근본정신임을 일깨우고 이를 실천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태권도가 처음 올림픽에 얼굴을 내보인 시드니 올림픽 때 국제문화교류원이 실시한 현지 앙케이트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하면 당신은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까?”란 질문에 41%가 “태권도의 나라”라고 답했다. 태권도의 보급이 한국의 이미지를 높이는 데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증거다.
현재 세계태권도연맹(WTF)에 가맹된 회원국 수는 206개국에 이르고 수련생은 8천만 명에 달한다. 태권도의 인구는 시드니 올림픽 이후 더욱 증가되고 있다. 또 가라테 간판을 내걸었던 해외태권도 도장도 태권도로 명칭을 바꾸었다.
한 번은 아프리카 세네갈을 공식 방문했는데 공항에서 선수와 사범 100여 명이 나를 환영해 주어 아프리카에도 태권도의 열풍이 불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해외를 방문하면 공항에서부터 현지 태권도인의 대대적인 환영을 받는다. 이런 환영에 별로 익숙하지 않은 나는 사전에 그들이 준비하거나 부담을 주지 않게 하기 위해 예고 없이 방문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