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기원 건설 (24회)

어떠한 기구든 필히 구심점이 필요하다. 이것은 마치 행정부의 중심인 청와대가 있고, 입법부의 중심인 국회의사당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당연히 태권도도 구심점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곧 국기원이다.

당시 우리는 태권도 전당의 이름을 국기 태권도의 ‘국기관’으로 할 계획이었지만, 이미 일본에서 스모 전당을 ‘국기관’이라 명명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적인 배경도 있었고, 일본에 뒤이어 따라가는 것은 피해 명칭을 ⌜국기원⌟으로 정하였다.

이유 불문하고 최우선적으로 먼저 태권도의 메카가 될 국기원(태권도 중앙도장, World Taekwondo Headquarter)을 건설해야만 하였다. 태권도를 하기 위해서는 도장이 필요한 것처럼, 태권도를 발전, 육성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혼란 상태에 있었던 각지의 도장을 통합해 관리할 수 있는 국기원이 꼭 필요하였다. 더구나 종주국 대한태권도협회의 중앙 도장을 건설하는 것은 모든 태권도인의 염원이기도 하였다.

그 당시 한 달에 200명 정도 받던 승단 심사는 한성여자고등학교 체육관에서 실시하였으며, 전국대회는 서울운동장 배구장에서 열렸다. 외국에도 도장이 많이 있었는데, 태권도 발상지인 국내에 외국인 수련자에게 자랑할 만한 중앙 도장이 없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태권도협회 회장 취임 직후, 처음 기자회견에서 나는 이 계획을 대외적으로 선언하였다. “중앙 도장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이 있는데 정말로 건설할 생각입니까?” “그렇습니다.” “어느 정도의 비용이 들어가는 계획입니까?” 기자의 질문에 순간적으로 나는 당황했다.

나는 바로 옆에 앉아 있던 이종우 지도관장에게 살짝 물어보았더니 “약 3억 원 정도라면 가능합니다”라고 말하기에 나는 2억 원이라고 했다. 다음날 신문에서는 “2억 원을 들여서 태권도 전당을 건설하다”라는 기사가 커다랗게 게재되었다. 그 당시 모든 협회가 연습장을 짓는다고 떠들었지만 실제로 지은 것은 없었다.

그러나 계획은 원대하였지만, 실제로는 문제가 산적해 있었다. 우선 국기원을 건설할 대지조차 없었다. 나는 서울시내의 시 소유지를 전부 조사하여 최종적인 도움을 받기 위해서 서울시장을 방문하였다.

당시 서울시장은 양택식 씨로 나와 친숙한 인물이었다. “국기원을 건설하기 위하여 땅이 약 2,000평 정도가 필요합니다. 어렵지 않다면 시유지 땅을 좀 빌려주세요.” 그러자 시장은 “잠실 지역은 어떻습니까?”라고 되물었다. 그 때 잠실은 물바다 같은 황무지였고 서울시가 개발하려는 지역이었다. 하지만 나는 “역삼동에 있는 가장 높은 장소가 좋을 것 같은데…”라고 말했다.

사실은 이미 조사를 마친 상태였기에 선뜻 그 장소를 지목한 것이다. 그리고 나서 나는 설명을 하기 위하여 지도를 펼쳤다. “잠실은 올림픽경기장과 같은 것을 만들기에는 좋지만, 우리의 중앙 도장은 2,000평 정도만 있어도 충분합니다.” 그러자 시장은 “기적이 있나 알아보겠다”고 하고 그 다음날 “좀 더 아래쪽에도 땅이 있는데, 기껏 선택한 장소가 그런 산꼭대기면 깍는 데도 돈이 많이 들 텐데요.” 실제 깍는 데 600만원이 들었다. 그때 철근 한 톤이 2만원, 시멘트 한 포대가 270원일 때다.

하지만 나는 상징적인 중앙도장은 산 정상에 건설하는 것이 기념비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후일에 그 당시 후보지로 거론한 잠실은 올림픽 경기장이 건설되었다.

우선 태권도 중앙 도장인 국기원은 일종의 기념비적인 상징물이다. 한발 더 나아가 국기원이 널따란 평지에 있는 것보다는 산 정상에 우뚝 서서, 위풍당당한 기품과 위엄을 표시하는 건물이어야만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당시 허허벌판이던 역삼동에 지금과 같은 고층 빌딩이 들어서기 전이기에 거기에 국기원이 건설된다면 그 자체가 세계 태권도의 메카로서 손색이 없지 않겠느냐는 것이 나의 구상이었다.

1971년 11월 30일 기공식을 거행하고 공사에 착수했다. 그리고 정확히 일 년 후인 ’72년 12월 9일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 산 76번지에 중앙 도장인 지금의 ⌜국기원⌟이 드디어 완공되었다. 국기원 건립은 그 자체가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었다.

▲ 국기원 기공식 (1971. 11.30) /좌로부터 김종락 야구협회장, 김운용 태권도협회장, 민관식 문교장관, 한 사람 건너 김영관 해군참모총장, 송요찬 장군, 윤일균 서울신문 전무

그 건립 자금은 전부 나의 사재와 친지, 지인들로부터 기부를 받은 것이었다. 삼성과 같은 대기업을 시작으로 현대건설, 동양고속, 대농, 진로, 경성방직, 풍한제지 등의 기업들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렇게 많은 분들의 도움에 의해서 공사비 일부가 조달되었다.

공사비가 어느 정도 마련되고 나니 다음은 건설 자재가 커다란 문제로 남았다. 하지만 이것들도 시멘트는 쌍용, 철근은 인천제철, 목재는 동아기업, 지붕은 벽산, 유리는 한국유리가 협력해 주었다.

국기원이 건설된 것을 축하하기 위해 한 턱 내겠다는 우인들에게 “접대는 괜찮으니 필요한 비품과 물품을 주지 않겠느냐”고 말하기도 하였다. 이 기간 교우관계에 있던 사람들로부터 받은 크고 작은 여러 가지의 지원과 성의가 바로 국기원 준공의 원동력이 되었다.

나는 또한 가능하다면 국기원을 한국적인 건축양식으로 건설하고 싶었다. 한국의 궁궐이나 지붕보다는 양쪽에 문이 높은 집과 같은 양식이 한국의 전통을 느낄 수 있는 스타일도 내가 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붕 위에는 파란 기와를 올리는 것으로 하였다.

그런데 국기원을 건설하던 그 시기에 갑작스런 중동 오일쇼크를 맞았다. 70년대 초기의 가장 심각한 경제 위기가 닥쳐왔던 것이다. 1년 이내에 마치려던 건설 계획에 커다란 장애가 생길 것 같았다. 이종우 관장을 위시하여 주위의 사람들도 3년 계획으로 공사를 변경하면 어떻겠느냐고 말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여기서 건설 계획을 늦춘다면, 그때의 한국 경제 사정으로는 2, 3년이 걸려도 공사가 끝나리라고 확신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한층 더 고삐를 조이기 시작했다. 이 기회를 놓친다면 국기원 건립의 기회는 영원히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하면서 나는 주위를 설득하였다. 일단 ‘기회가 왔을 때 단숨에 해내지 못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나는 이를 악물었다.

오일쇼크가 덮쳐서 우리가 우왕좌왕하며 어려운 공사라고 공사를 늦추었다면 2, 3년 정도가 아니라 국기원 공사 자체가 물거품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모든 것에는 필이 ‘때(타이밍)’라는 것이 있는 것이다. 그랬으면 WTF 창설, 세계선수권대회 대최, 국제경기연맹 가입이나 모든 것이 줄줄이 늦어졌을 것이다. 태권도 올림픽종목 채택도 못했을 것이다.

수도·전기가 안 들어오는 지대라 나는 우물물을 퍼 올리거나, 전기 공사를 돕기도 하였다. 그리고 약속한대로 공사를 끝냈다. 개관 하루 전에야 겨우 전기를 끌어들였다. 공사에 관여한 모든 사람들도 환호의 목청을 높였다. 전화기도 청와대 이동전화를 2대 달았다.

1972년 11월 30일 국기원은 완공되어 그 웅대한 모습을 드러냈다. 대지 2,300평, 지상 3층 건물로 227평의 경기장과 2,000명 수용의 관객석을 갖춘 태권도 세계의 전당인 현재의 태권도협회 중앙도장(국기원)이 완성되었다. 정면에 ⌜국기원⌟이라는 간판 글은 김종필 당시 총리의 글이다. 대문은 송요찬 전 내각수반이 세워주고 윤곡정(팔각정)은 진로(장익용 사장)가 세워주었다. 실로 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이 스며든 태권도의 중앙도장이 한강 남쪽의 역삼동 산 정상에 그 위용을 나타냈다. 돈이 없어 청기와지붕은 한국 슬레이트에 부탁하여 슬리이트를 올리고 푸른 칠을 했다. 청기와를 올리려면 600만원이 더 필요했다.

국기원의 건설과 보조를 맞춰서 태권도의 세계 진출 계획에도 가속도가 붙기 시작하였다. 태권도 기술의 통일과 승단 심사의 단일화되고 사범교육제도가 개설되었다. ’73년 5월에는 제1회 세계태권도 선수권 대회가 국기원에서 개최되었으며, 이어 세계태권도연맹(WTF)도 창설했다. 이에는 이종우, 엄운규 부회장, 홍종수 전무의 공헌도 잊을 수 없다.

’78년 8월에는 분산되어 있던 한국 태권도 유파가 대한태권도협회 이름 아래서 완전 통합을 완성하였다. 내분을 끝마치고 드디어 세계로 날개를 펼칠 도약의 시기가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