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태권도연맹 창설 (25회)

스포츠 정신의 기본은 페어플레이 정신에 있다. 페어플레이를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룰을 존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룰은 경기를 진행하는데 있어서 필이 지켜야만 하는 경기 규칙인 것이다.

하지만 무도에는 룰이라는 것이 없다. 서로 대결해서 실력이 위인 사람이 상대를 제압하면 승리자가 된다. 발 기술 하나로 상대를 쓰러뜨릴 수도 있다. 그런데 스포츠 세계에서는 그러한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

태권도가 스포츠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세계가 받아들이는 룰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태권도 경기는 지금까지 몇 번이나 정비를 거듭한 결과 오늘에 이르는 룰을 만들었다.

경기장은 8미터의 정사각형, 3분간씩 3회전을 싸운다. 리우 올림픽에서는 8각(Octagon)으로 바꾸었다. 선수들은 하얀 보호복을 착용하고 머리, 몸통, 급소에 보호대를 사용하며 팔과 다리에도 보호대를 붙이고 경기를 한다. 최근에는 전자호구를 착용하고 있다.

그러나 룰은 앞으로도 더욱 활발한 논의를 거쳐 끊임없이 개선해야 하며, 전자 채점과 호신구 등도 좀 더 발전시켜 나아갈 필요가 있다. 관중들이 보다 재미있게 관전하기 위해서도 좀 더 공격적이면서 자연스러운 경기가 행해져야만 한다. 현행 점수제로는 아무래도 공격이 패턴화 되어 단순해지기 쉬운 경우가 있어 관중은 흥미를 잃을 수도 있다. 리우 올림픽 후에 나온 선수 의견이나 논평을 보아도 안다.

더구나 어떠한 기술도 1점씩 밖에 주지 않던 제도 하에서는 공격하는 기술의 난이도가 정확히 평가되지 않기 때문에 좀 더 세분화되어질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많아 고난도 기술에는 가산점을 주는 룰을 채택했다. 보여주는 경기, 함께 즐기는 경기인 태권도가 되기 위하여 개선하고 더 나은 스포츠화가 한층 요구되어지고 있다.

또한 태권도 전문지를 발간해서 홍보활동을 강화해 나갔다. 그리고 나서 승단 심사는 중앙 도장인 국기원에서만 실시하였고, 단증도 국기원장의 이름만으로 발급하게 하였다. 이렇게 나는 태권도의 국기화에 뿌리를 내리게 하였다.

이처럼 태권도가 일원화를 성공시킨데 비해 일본의 가라테는 아직도 60개 이상의 유파가 있고, 그 내용도 다양하다. 하지만 가라테도 근래 경기의 현대화를 이루어왔고, IOC가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 요청을 받아들여 2020 도쿄올림픽에서 가라테도 정식종목으로 채택하였다.

어째서 태권도가 국기라고 하는가? 태권도가 가라테나 다른 전통 무술과 다른 점이 있는가? 있다면 어느 정도인가? 라고 하면서 갖은 트집을 잡으며, 태권도의 지위가 올라가는 것을 경계하는 그룹들도 존재하였다. 하지만 태권도에 대한 거국적인 성원이 높아가면서, 이러한 반대 목소리를 죽이며 조용하게 되었다.

태권도가 국내에서 체계화되고 자리를 잡아가고 있을 때 이제는 이것을 세계 속에 보급시키는 일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1973년 나는 세계태권도연맹을 창설하였다. 영어로는 The World Taekwonde Federation이며, 약칭은 WTF다. 이미 전 세계에는 우리나라의 많은 사범들이 진출하여 도장들을 열고 있었기에 그들을 하나로 통일하고 지원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WTF를 창설한 후 바로 제1회 세계 태권도선수권대회를 태권도의 모국인 우리나라의 수도 서울에서 개최했다. 국기원에서 열린 이 대회는 첫 세계대회였지만 19개국이 참가하여 성공적으로 대회를 치렀다. 여기에 힘을 얻은 나는 태권도를 세계적으로 공인된 스포츠로 육성시키고자 더욱 박차를 가하였다.

1975년 세계태권도연맹은 국제경기연맹총연합회(GAISF)에 가맹하게 되었다. ’75년 국제경기연맹총연합회의 총회는 몬트리올에서 열렸다. 국제경기연맹총연합회는 지금과 달리 이 당시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함께 세계 스포츠계를 리드하는 거대한 두 개의 조직 중 하나이다. 어떠한 경기라도 국제경기연맹에 소속되고 나서야 국제적인 활동이 보증된다.

’76년 몬트리올 올림픽 개회 1년 전에 개최된 총회였기에 관련 의제에 대해서도 관심이 상당히 높았다. 태권도는 국제적으로 공인을 받기 위하여 국제경기연맹총연합회 앞으로 가맹을 신청하였다. 그러나 일본의 가라테가 태권도의 국제경기연맹총연합회 가맹을 전면에서 가로막고 있었다. 일본은 태권도를 가라테의 아류라고 주장하였다.

태권도가 해외에서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 외국에 진출한 우리의 사범들이 태권도를 ‘코리안 가라테’ 또는 그냥 ‘가라테’라는 간판을 걸고서 일본식 무도와 나란히 태권도를 지도한 것이 잘못의 시작이었고, 가라테 그룹과의 사이에 정당성을 내세우며 종종 분쟁이 일어났다.

스포츠에 있어서 비슷한 종목이 단독으로 공인을 받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유도도 역시 가라테를 지지하고 나서, 태권도 세계화는 처음부터 암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영국 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이고 세계유도연맹 회장인 파머(Charles Parmer) 씨도 가라테 지지자였다. 그는 일본 측의 요청을 받아들여 태권도 반대파의 선봉에 서 있었다. 파머는 “태권도는 가라테의 아류(Style)인 것이 명백한데 어떠한 이유로 한국의 무술이라고 하는가?”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이 점에 대해서 강하게 반론을 제기했다. “가라테와 태권도는 엄연히 다른 종목이고 역사, 기술, 룰도 다르다. 유도와 스모를 비교해도 전혀 다른 종목이지 않느냐? 그것과 같은 이치이다.”

▲ 1975년 몬트리올에서 열린 세계태권도연맹회의

나는 파머 회장을 설득하기 위하여 그 사람 차에 동승해 총회가 열리는 몬트리올 시내를 빙빙 돌면서 무려 두 시간 가까이 격론을 주고받았다. 기본적인 동작, 유래, 그리고 경기 규칙의 차이점 등을 예로 들면서 태권도가 가라테와 어떻게 다른지를 구체적으로, 더구나 정열적으로 그를 설득하였다. 물론 우리의 대화는 영어였다. 나는 그때 나에게 어학적 재능이 있었던 것을 신에게 감사하였다.

“태권도의 역사는 고대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다양한 기록을 통해서 보아도 소림사 권법과 같은 중국 무술보다 좀 더 오랜 역사를 갖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태권도는 가라테나 쿵푸와는 사뭇 다른 세련된 발차기가 특징이며 아주 다이나믹한 스포츠다. 상대를 직접 가격할 수도 있으며, 채점 방식도 점수제와 KO제이고, 많은 사람들이 관전하기도 쉽고, 즐기는 경기로서 볼 수도 있다.” 나의 강력한 설득 작전에 기가 질렸는지, 결국 파머 회장은 항복을 하였다.

격렬하게 서로 토론을 할 때에는 그와 나는 서로가 생리적으로 불쾌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계속된 논쟁 중에 서로의 흉금을 이해하게 되었으며, 태권도와 가라테의 다른 점을 확실히 이해한 후에는 아주 좋은 사이로 발전하였다. “예전에 내가 유도를 했던 시기에는 태권도는 없었다. 만일 태권도가 일찍 보급되어져 있었더라면 나도 태권도를 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할 정도로 우리들은 지극히 친밀한 사이가 되었다.

총회 마지막 날에도 나는 다양한 사람들과 4시간에 걸쳐서 격론을 주고받았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설득한 덕분에 우리의 WTF(세계태권도연맹)는 국제경기연맹총연합회(GAISF)에 가라테나 ITF보다도 앞서서 가맹하게 되었으며, 세계화를 향한 제일보로 힘차게 전진할 수가 있었다.

ITF라고 하는 단체는 일본의 가라테 단체 이전에 북한의 지원을 받고 있던 단체인데, 이 단체의 창설자인 최홍희 씨는 좀 이상한 인물로 알려져 있었다.

태권도 세계 보급은 60년대 중반부터 베트남에 파견된 군인을 위한 태권도 교관단의 활동을 시작으로 첫 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66년 1월 대한태권도협회 정기 총회에서 최홍희 회장이 불신임 된 사건이 일어났다.

불명예 퇴진을 당한 최홍희는 같은 해 3월 베트남,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9개국으로 구성된 ITF를 창설하여, 해외 파견과 단증 발행 등을 독자적으로 하는 행동을 저질러 태권도협회와 마찰을 일으키게 되었다. 사실 ITF는 이름만 국제연맹이지 사설단체였다.

고국에서 활동 기반을 잃어버린 최 총재는 ’72년 캐나다로 이민을 하였고, ITF 본부를 ’73년 4월에 서울로부터 캐나다의 토론토로 이전시켰으며, 더욱이 ’85년에는 오스트리아의 빈으로 이전하는 등 돌발적인행동을 연속적으로 취하였다.

우리가 WTF를 GAISF에 가맹시킬 때에도 그들의 집요한 방해 공작이 있었지만, 이해해주는 사람들 덕분에 무사히 가맹을 할 수가 있었다. 그들의 ITF 등과 비슷한 단체들을 국제무대에서 압도하기 위해서도 GAISF 가맹이 하루라도 빨리 요구되었던 것이다.

당시의 일을 되돌아보면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 이미 고인이 된 국제경기연맹 사무총장이었던 영국의 오스카 스테이트 씨도 잊을 수가 없다. 그 당시 그는 총회에서 WTF와 ITF를 비교하면서 “WTF는 35개국이 모였던 세계대회에서도 국제경기연맹총연합회가 규정한 모든 규정에 성실히 따랐지만, 다른 한쪽의 ITF는 재정 보고서와 규정 사항을 제출하라는 요구에 아무런 회답이 없었다”고 발표하였다.

동시에 그는 “ITF 총재인 최홍희라는 인물은 한국에서 캐나다로 망명했는데, 그는 국적도 확실하지 않고, 더구나 국제경기연맹총연합회의 규정을 준수하지도 않으니 그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발언하는 등 WTF를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었다.

오스카 스테이트 이외에도 국제복싱연맹의 초드리, 세계유도연맹 사무총장이며 스페인태권도연맹 회장인 안토니오 가르시아 데라프엔테 등이 나의응원단으로서 힘이 되어 주었다. 탁구, 양궁, 레슬링, 소프트볼 등의 국제경기연맹 회장들이 차례차례로 연단에 올라 WTF를 지지한다는 연설을 해주었다.

GAISF에 가입한 다음해 4월 국제군인체육대회(CISM)에 정식 종목으로서 승인된 것뿐만 아니라, ’80년 모스크바 IOC 총회에서 WTF가 정식으로 승인을 받게 된 낭보가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