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계올림픽은 28개의 정식 종목을 가지고 경기를 겨루는 세계 스포츠의 제전이다. IOC 2030에 의거 2020년 도쿄올림픽에서는 야구·소프트볼에 이어 가라테 등 5개 종목이 늘게 되었다. 예전에는 올림픽 헌장에 따라서 대회 때마다 시범경기 종목을 2종목에 한해서 채택해 경기종목에 추가했다. ’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시범 종목이 폐지되었는데, 그전까지는 개최국이 신청한 시범 종목을 채택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었다.
’88년 서울 올림픽에서는 태권도가 시범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당시는 야구와 배드민턴이 시범종목으로서 채택 될 예정이었지만,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의 실질적인 책임을 맡고 있는 나의 끈기 있는 설득과 노력 끝에 야구와 태권도를 시범경기 종목으로 하게 되었다. 그러나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는 태권도가 제외되고 말았다. 스페인이 자랑하는 하이라이(Jailai)와 롤러 하키(Roller Hocky)를 시범 경기종목으로 이미 결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태권도를 세계적인 것으로 만들어 정식 종목으로 채택시키고 싶었다. 해외에 있는 태권도 사범들, 특히 유럽 지역 사점들의 활약과 생존을 위해서도 서울에 이어서 바르셀로나 대회에서도 채택시킬 필요가 있었다.
혹시 바르셀로나 대회에서 시범종목으로 채택이 안 된다면, 그만큼 세계화가 늦어지게 된다. 태권도를 2000년까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시킨다는 목표가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한발 늦으면 10년 아니 몇 십 년을 기다려야 하는 결과가 될지도 몰랐다.
나는 몇날 며칠을 고민에 빠졌다. 무언가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만 했다. 그러나 국제사회에는 필히 질서와 규칙이 존재한다. 거기에 나는 새 돌파구가 될 만한 아이디어를 제안하기로 했다. 그것은 '전시(exhibition) 종목'이었다. 헌장에는 없었다. 나는 사마란치 위원장을 방문했다.
“’88년 서울 올림픽에서 태권도가 시범종목으로서 채용되었지만, ’92년 바르셀로나에서는 제외되고 말았습니다. 태권도의 세계적 보급을 위해서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도 어떻게 해서라도 채택시켰으면 합니다.”
내가 이와 같이 말을 꺼내자 사마란치가 답했다.
“하지만 이미 시범종목은 결정되었고, 규정에도 2종목만 하게 되어 있는데…”
“그러니까 하루만 문화행사식의 전시종목으로라도 태권도 경기를 하고 싶습니다. 비용은 저희가 대겠습니다.”
“예?! 전시종목이라고요? 그런 내용이 규정에 없는데...”
“아니요, 없습니다. 제가 만들어 낸 것입니다. 집행위원회 결정이 필요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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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 카를로스 스페인 국왕과 태권도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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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대회가 여러 가지 새로운 경기를 공개하는 역사적인 장소가 된다면, 그만큼 관중과 전 세계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대회가 될 것입니다. 규정에는 없지만 관람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본다면 시범경기 종목이 2개보다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생각이 들지 않겠습니까? 스페인의 전통 스포츠 대신 IOC 위원장의 명의로 태권도 경기를 전시종목으로 진행되게끔 IOC에 요청서를 제출하고 싶은데요.”
“그런 것들이 가능합니까? 세부 사항에 대해서도 생각했습니까?”
“우선 가능한 한 체급별 수를 줄이고, 경기는 하루에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전시종목이라는 명칭에 어울리게 전시할 뿐입니다. 경비, 선수 보호 등의 문제는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드디어 사마란치가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한 번 해 봅시다.”
그가 태권도라는 새로운 스포츠를 발전시키려는 나의 노력에 감동했고 서울올림픽을 책임지고 성공시킨 일,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권 국가들의 참가, 서울올림픽 경기 일정 수립, IOC TV 방영권 교섭 등 지금까지의 내 실적에 대해서 평가해 주었기 때문에 나의 제안을 그 자리에서 거절할 수가 없었던 것 같았다. 또 이것은 올림픽 헌장에도 없는 일이니 IOC 집행위원들을 만나, 한 사람 한 사람씩 설득해서 지원을 요청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사마란치가 말하였다.
이때 나는 IOC집행위원으로서 곧 IOC부위원장 선출이 확실시 되고 있었다. 그리고 IOC TV위원장으로서 바르셀로나를 포함해 IOC의 TV 협상을 하는 입장이라 무시하기가 힘든 입지였던 것 같다. 국제스포츠는 역학의 힘이 중요하다.
사마란치의 ‘GO 사인’을 받고서 나는 집행위원들을 맨투맨 전법으로 설득하면서 돌아다녔다. ‘전시종목’이라는 명칭으로 하루만 태권도 경기가 열릴 수 있도록 협력해 주면 좋겠다고 부탁을 했다.
“반대는 없습니까?” 바르셀로나 올림픽 경기의 준비 상황을 점검하는 IOC 집행위원회에서 사마란치 위원장이라고 이렇게 말을 함과 동시에 도저히 불가능하리라고 생각했던 태권도가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입성을 하게 됐다. 그리고 사마란치 위원장은 한 수 더 나가는 제안을 해주었다.
집행위원회에서는 태권도를 내가 제안했던 ‘전시종목’이 아닌 ‘시범종목’으로 격상시켜 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그 결과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는 사상 초유로 시범종목이 3개로 늘어나게 되었다. 대회기간도 하루뿐이던 당초 개최 계획에서 4일간으로 연장되었고 그 비용도 바르셀로나 올림픽조직위원회가 책임져서 숙박, 수송, 운영 등에 있어 정식종목 대우를 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