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불가능은 없다 (27회)

’94년 9월 3일 IOC 파리 총회 당시, 누구 한 사람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될 것이라고 확신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새로운 종목이 IOC 총회에 상정되는 경우, 우선 먼저 프로그램 위원회를 통과해야만 한다.

그러나 태권도는 전년도인 ’93년 5월 스위스 로잔에서 개최된 프로그램 위원회에서 11대 9로 이미 한번 부결된 경험이 있었다. 프로그램 위원회를 통과했다고 해도 집행위원회를 거쳐 총회에서 최종 결정되는데 태권도는 출발부터 핸디캡을 갖고 있었다.

더구나 WTF(세계태권도연맹)는 당시 북한이 지원하고 있던 ITF(국제태권도연맹)와의 장기간 반목이 상당한 마이너스로 작용하고 있었다.

또한 ‘비슷한 종목은 올림픽 종목이 될 수 없다’라고 하는 IOC 규정에 따라서 태권도가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되는 경우, 커다란 피해를 입게 되는 일본(가라테)과 시기하는 유도와 중국(우슈)의 시셈, 같은 종목의 다른 국제연맹인 ITF의 저항 그리고 올림픽 비대화를 저지하기 위하여 종목 수를 대폭 축소하려고 하는 올림픽 운동의 새로운 흐름 등 넘어야 할 장애가 쌓여 있었다.

당시 IOC 집행위원에회에서는 태권도에 대한 거론이 없었기에, 한국 매스컴들은 태권도 올림픽 종목 채택은 물 건너 간 것이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아 실망스런 분위기였다. 반면 언론에서는 내가 아직 추천도 하지 않은 상태인 이건희 회장에 대해서는 ‘IOC위원 선출이 확실시 되고 있다’는 추측성 기사들을 대서특필 하고 있었다.

올림픽 규정에 의하면 정식 종목은 해당 올림픽 개최 6년 전에 결정하도록 되어 있다. 태권도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기 위해서는 이 파리 총회가 마지막 마지노선이었다. 더구나 프로그램 위원회에서 부결되었기 때문에 통상적인 경로를 경유해서 채택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그러나 물밑에서 기적적인 움직임이 조용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WTF 총재이고 IOC 부위원장(겸 IOC TV위원장)으로서 나의 능력을 발휘할 때가 온 것이다.

▲ 제1회 세계태권도 선수권대회 개회식(1973.) / 국기원

나는 우선 10년 이상을 함께 한 친한파 사마란치 IOC위원장과 숙의 끝에 마지막에 끼워 넣기로 전략을 세웠다. 그것은 트라이애슬론 등 3종 경기와 함께 태권도 정식 종목 상정 안을 준비해 집행위원회에서 가결시킨 후, 기회를 봐서 장소를 옮기지 않고 즉시 총회에 상정해서 채택시킨다는 전격적인 가결 플랜이었다.

이미 작년에 한번 프로그램 위원회서 부결된 것이기 때문에 설득을 할 시간적 여유가 전혀 없었다. 더구나 의견 조정도 용이하지 않은 상황에 미리 집행위원회에 올려서 잡음을 초래할 필요가 없다는 계산이었다. 이 계획은 우리의 후원자인 사마란치 위원장의 전적인 협조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사마란치 위원장은 “반대파 위원들의 반발을 어떻게 진정시킬 것인가?”라고 걱정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어보았다. 나는 재빨리 “IOC 총회까지는 반대의견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내 자신도 모든 것이 결정될 때까지는 사실 조금 불안감을 갖고 있었지만, 국익이 걸려 있는 이 순간, 자신만만한 제스처를 보일 필요가 있었다. 나의 말을 듣고서 사마란치도 “최선을 다해 IOC 집행위원들을 설득해 보시오”라고 동의해 주었다.

IOC 총회 전날까지는 태권도 정식 종목 채택을 위한 분위기는 비관적이었다. 사마란치 위원장은 사전에 이야기한 대로 집행위원회를 소집하였다. 그리고 최후의 의제로서 태권도의 올림픽 종목 채택안 총회 상정 가부를 집행위원들에게 제안하였다.

집행위원들은 나의 사전 설득 노력 덕분이었는지, 아니면 결국 총회에서 취급할 의제라고 생각하였는지, 특별한 반대는 없었다. 그렇게 ‘태권도 채택안’은 총회 상정으로 결정됐다. 그러고도 사마란치는 총회 상정을 주저하고 있었다.

IOC 총회 전야, 우리는 최종 관문인 총회 통과를 위해서 콩고의 강가(Ganga) 위원 등 지지파 위원들과 협의를 거듭하였다. 리비아의 아다라불시 위원(Attarabulsi)과 콩고의 강가(Ganga) 위원이 태권도 올림픽 채택 지지 발언을 한 것을 시작으로 일부 위원들의 반대 질문을 저지하기 위한 사전 조율 그룹도 결정했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