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간의 총회가 열렸던 파리 외곽 라데팡스(La defence)의 국립산업기술센터 주위에 모여 있던 태권도 및 한국 체육계 관계자들 150여 명은 모두가 불안한 얼굴로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모든 의사진행, 제안, 설명, 투표 전략, 반대공격에 대한 방어 등은 나 혼자의 몫이었다.
WTF(세계태권도연맹)의 이종우 부총재와 이금홍 사무총장 등 관계자와 박연이(미국), 박선재(이탈리아), 박수남(독일) 등 해외에서 활약하는 사범들, 그리고 유럽지역 태권도회장들은 총회장 밖에서 혹시 있을지 모르는 북한 측 ITF(국제태권도연맹)에 의한 방해 공작에 대비하여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가라테 세계연맹 델콤트(Delcomt) 회장은 IOC를 고소한다고 하고 다녔다.
ITF는 이미 IOC 위원들에게 WTF·ITF 문제가 해결 될 때까지 태권도의 올림픽 채택에 반대한다는 문서를 보내고 IOC위원들 방에 서류를 배포하는 등 방해 공작 활동을 계속하고 있었다. 또 호텔과 회의장 주변을 몰려다니고 있었다.
“종목은 하나인데 왜 경기연맹은 두 개로 나누어져 있습니까?”라고 슬로바키아의 사르노사크(Cernusak) 위원이 날카롭게 질문한 것에 대한 나의 대답은 이러했다.
“이번에 태권도가 상정되게 된 것은 스포츠로서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르노사크 위원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자면, ITF 등의 다른 비슷한 단체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없습니다. 다만 WTF는 ’73년에 세계연맹을 창설한 후 계속해서 세계대회를 개최하여 왔으며, ’75년에는 GAISF(국제경기연맹총연합회)에 가맹하였습니다. ’80년에 IOC의 승인을 받았으며, ’83년 팬암 경기대회, ’86년 아시아 경기대회, ’90년 아프리카 경기대회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습니다. ’88년과 ’92년 올림픽에서는 시범종목이 되었으며, 전 세계의 회원국은 140개 국가입니다.”
이어 이렇게 덧붙였다. “태권도는 과거 20여 년 동안에 세계적인 스포츠로서 급속한 발전을 해 왔습니다. 일반 무도와는 다른 룰, 장비 등을 완벽하게 정비한 스포츠로서 가치를 높여왔기 때문에 올림픽 경기에 들어가도 전혀 무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ITF나 다른 스포츠 단체를 공격하거나 반박했으면 계속 반론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이 나의 발언과 5, 6명의 IOC 위원들에 의한 지지 발언에 이어서 표결로 들어갔다.
그런데 예상을 훨씬 넘어서 총 89명의 IOC 위원들 중 참가한 85명 전원이 만장일치로 찬성표를 던졌다. 회의 끝나고 카라드(Carrard) IOC 사무총장은 통과는 되겠지만 반대표가 있을 줄 알았는데 만장일치로 통과되는 데 놀랐다고 했다. 나는 태권도의 세계화, 국제화를 위하여 수십 년간 공헌하면서 여기까지 왔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다. 내가 IOC 위원에 선출된 이후 IOC 내에서 나의 영향력을 넓혀 가는 과정은 태권도의 세계화와 시기가 겹쳐져 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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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권도 올림픽 정식 종목 채택 통보문을 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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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86년 10월 제91차 로잔 총회에서 IOC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우리나라는 1947년 IOC에 가맹한 이후 이기붕, 이상백, 장기영, 김택수, 박종규 위원 등 5명의 IOC 위원을 배출한 바 있고, 나는 6번째 한국 출신 IOC 위원이 된 것이다.
박종규 위원은 ’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운명을 달리 했다. 전두환, 노태우 정권 당시, IOC 위원 자리를 노리던 사람은 자천, 타천 무수히 많았었다.
사마란치 IOC 위원장은 나를 추천해 주었는데 한국 정부는 쉽게 동의를 해 주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정부도 아래와 같은 이유로 할 수 없이 승낙을 했다. 사마란치 위원장은 추천은 필요 없지만 한국이 올림픽 개최국이라 자국의 추천을 받는 과정을 거쳤다고 했다. 제일 걱정한 것은 전두환 대통령의 태도였다 한다.
사마란치 위원장이 “서울올림픽 조직을 총책임 지고 있는 김운용 씨가 아니면 한국은 자국의 IOC 위원이 없는 상태에서 올림픽을 치르게 될 것이다”라고 강하게 주장을 한 결과, 한국 정부는 결국 IOC 추천을 받은 나를 승인할 수밖에 없었다.
IOC 위원은 위원장의 추천에 의하여 후보자가 결정되고, 집행위원회를 거쳐서 총회에서 선출된다. 이런 어려움들을 넘기고 나는 IOC 위원에 선출되었는데, 그 수일 후에는 국제경기연맹총연합회(GAISF) 회장에도 선출되어 세계 스포츠 무대에서 보다 강력한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여기에 대해 ⌜스포츠서울⌟은 다음과 같이 보도하고 있다.
“영어, 불어, 스페인어 등 6개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뛰어난 어학력, ’88년 서울 올림픽 TV 중계권료 협상, 소련권 참가를 위한 교섭에 있어서 보여준 완벽한 업무 능력이 인정되어 IOC 내에서도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기 시작하였다(1999년 10월 4일자).”
IOC 위원으로서 선출되고 1년 11개월 뒤인 ’88년 9월에는 서울 IOC총회에서 IOC 집행위원에 선출되었다. 더욱이 ’92년 7월 바르셀로나 총회에서는 일본의 이가야 위원을 54대 28의 표차로 누르고 IOC 부위원장에 선출되었다.
또한 ’93년 제31대 대한체육회장에 취임한 나는 ’88년 서울 올림픽 개최 이후 얼마간의 공백 기간이 계속되고 있었던 우리나라 스포츠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 각종 국제스포츠 행사를 국내로 끌어 들였다.
’94년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총회, ’95년 GAISF 총회, '96 세계생활체육총회, ’97년 부산 동아시아 경기대회와 무주 동계 유니버시아드, ’98년 IOC 집행위원회, ’98 서울올림픽 10주년 기념행사, ’99년 강원도 동계 아시아대회와 IOC 총회, 2002년 월드컵 축구 한일 공동개최, 부산 아시아경기대회, 2003년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 등등 계속된 유치 활동으로 성과를 높였다. 대회와 국제회의를 개최하면서 우리 임원들이 경험과 능력을 개발하게 되고 국제관계도 발전시킬 수 있었다.
나는 한국 내에서 열리는 스포츠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서울에 들어온 IOC 위원들과 국제 스포츠 관계자들을 꼭 국기원에 초대해서 태권도 전당을 보여주고 태권도 진흥에 적극적인 협력을 해 주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그러한 활동도 태권도의 올림픽 채택 과정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
태권도가 ’94년 9월 파리 IOC총회에서 예상외의 만장일치로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서 인정되었던 것은 이러한 나의 노력의 결과였다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