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불패가 시작되었다 (31회)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 참가하기 전까지 나는 한국이 올림픽을 개최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다.

당시 한국 스포츠의 특징은 ‘국제 경기대회에서 일본에는 조금만 질 것, 여자 선수가 우수하고 소수정예주의며, 북한에게는 이기고, 금메달 하나 따고 싶고 올림픽은 꿈도 못 꾸고 언젠가는 아시아 경기대회를 개최하고 싶다는 정도였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1966년, 1970년에 열린 제6회 아시아 경기대회를 유치해 놓고도 정부가 경제개발에 모든 재정적인 투자를 하기로 결정하여 10만 달러의 벌금을 물고서 아시아경기대회를 반납한 적이 있었다. 그 바람에 내가 이종하 교수를 대동하고 태국까지 간 일이 있다.

1978년 세계사격선수권대회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나서, 비로소 처음으로 올림픽 유치를 꿈꾸게 되었다. 이 세계사격선수권대회는 10년 후 서울 올림픽을 개최하는데 중요한 자산이 되었다.

제42회 세계사격선수권대회에는 당시 박종규 대한사격연맹 회장이 중심이 되어서 유치를 추진했는데 1974년 10월 스위스 베른의 국제만국우편연합(IPU) 건물에서 개최된 세계사격연맹 총회에서 한국으로 결정되었다. 남아프리카와 멕시코, 그리고 한국 등 세 나라가 유치를 신청하였는데 남아프리카는 철회하였고, 한국과 멕시코가 최종 후보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그 당시 한국은 세계 스포츠계에서는 무명에 가까운 존재로 국제대회 유치 경험이 전혀 없었던 것에 비하여, 팬암게임(PANAM GAME) 회장이던 마리오 바스케스 라냐(Mario Vasques Rana)가 사격연맹회장을 맡고 있던 멕시코는 이미 올림픽도 경험하고, 팬암 대회도 개최한 적이 있는 스포츠계의 강국이었다.

당시 세계사격연맹총회에는 박종규 회장(당시 대통령 경호실장)이 1974년 8월에 있었던 박 대통령 영부인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으로 인해 근신중이라 대신 내가 참가하게 되었다. 나는 당시 대한체육회 부회장과 KOC 부위원장 겸 명예총무를 맡고 있었는데 누구도 그 총회에 대한 결과는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다. 김택수 회장도 매우 부정적이었고 사격대회 유치 후 우리가 유치해놓은 세계역도선수권대회를 반납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총회에 동행한 사람들은 서재관 사격연맹 부회장, 신용석 조선일보 파리특파원, 오전식 전 경향신문 정치부장, 박갑철 현 연세체육회장, 이석현 전 합동통신 체육부장, 정진우 영화감독 등이었다.

멕시코와 비교하면 한국은 수많은 핸디캡을 갖고 있었다. 우선 분단국가로 많은 국가와 외교 관계가 없고, 정치적으로는 불안정하며, 경제 수준도 낮았고, 더구나 스포츠 시설도 부족한 시기였다.

▲ 세계사격선수권대회 기사 (경향신문 1978. 9.27.)

세계적인 부호로 알려진 마리오 바스케스 라냐는 자국은 이미 올림픽과 팬암 대회를 성공적으로 마친 국가이고, 자신들의 환대는 이미 폭넓게 인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안정도 이룩한 국가라고 자신만만하게 떠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멕시코의 재정능력을 과시하듯이 선수들의 식사비와 숙박비로 하루 10달러씩만 청구할 것이라고 약속하였다.

이어서 우리 측 설명 순서가 되었다. 나는 한국의 사격 시설은 세계적 수준이고, 모든 국가를 환대할 것이며, 선수의 식사와 숙박비를 하루 5달러로 할 것이라고 제안을 하였다. 나는 오만하게 자금력으로 한국을 짓밟으려는 라냐의 전략에 대해서 내 독단으로 그 반액을 제안하는 것으로 정면 돌파를 시도하였다.

“지금까지 41회의 대회가 진행되는 동안 단 한 번도 아시아에서 개최된 적이 없는 것은 불평등한 것이다. 이번에는 꼭 서울에서 개최되어야만 한다”고 호소하였다. 내가 말한 금액이 미국 5달러를 의미하는가 하고 질문을 했다.

나는 멕시코 대표인 라냐가 말한 10달러도, 내가 말한 5달러도 역시 미국 달러라고 대답하였다. 나는 멕시코에 이기려면 확실한 대안이 없이는 어렵다고 판단을 하고 있었다.

멕시코가 10달러라면 우리는 2달러 정도 내려서 8달러 정도 선에서 제안을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겨우 2달러 내지 3달러 정도의 차이로 한국이 승리할 수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문제는 몇 달러 더 쓰더라도 꼭 사격 대회를 유치하는 것이 수였다. 5달러를 불러도 4년 후에는 IMF 인플레이션 룰을 적용해서 더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1978년에 40달러 받았다.

이어서 그들은 한국에는 어떠한 식사가 있는가? 숙박 시설은 충분한가 등 우리를 바보취급 하듯 유치한 질문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미국 대표가 갑자기 일어서서 “사격장은 비스바덴(Wiesbaden) 식인가? 뮌헨 식인가?”라고 질문을 하였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서재관 부회장에게 물어보니 그도 하얗게 질려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나는 엉겁결에 “비스바덴 식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만약에 이 대답이 잘못되었다면 대회 유치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 이후 누가 어떤 질문을 하였는지는 지금도 기억이 없다. 회의가 끝나고 난 뒤에 부회장이 가까이 와서 “어떻게 비스바덴 식인지를 알고 있었느냐?”고 말을 하였다. “뭐 그럼 비스바덴 식이 정답이었단 말입니까?”하고 말하자 내가 농담으로 말한다고 생각했던지 그는 큰소리로 웃었다.

비스바덴은 예전에 세계사격대회를 개최한 적이 있는 독일의 도시고, 뮌헨은 올림픽을 개최한 도시였기에 세계대회를 개최했던 비스바덴 식이라고 대답을 했는데 그것이 정답이었던 것이다. 내가 임기응변으로 대답한 것이 결과적으로는 정답이었지만, 국제회의에서는 역시 충분한 사전 준비와 확실한 결단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배웠다.

질의응답이 끝나고 점심을 위한 휴식 시간에 들어갔지만, 나는 식자가 목에 넘어가지 않았다. 결국 오후 회의 투표 결과, 일반의 예상을 뒤엎고 62대 40이라는 표차로 한국이 1978년 42회 세계사격선수권대회를 개최하게 되었던 것이다.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국가들이 대부분 불참해서 불완전한 대회이긴 하였지만 박종규 회장을 비롯하여 한국사격연맹의 노력에 의하여 세계사격선수권대회를 무사히 마칠 수가 있었고, 이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지원이 절대적이었다. 이 대회의 성공을 통해서 우리는 ‘올림픽을 유치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새로운 희망의 꿈이 생겨났다. 이때 개회식은 서울운동장에서 개최했고, 선수촌으로 워커힐아파트를 건설했다. 정부 보조는 10억이었다. 대한체육회 1년 예산이 1억일 때 10억은 놀랄만한 액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