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국 대표단 중에서도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다른 나라 대표들과 보다 긴밀한 접촉이 가능하게 된 것은 그와 같은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81년 5월 경제계의 정주영 씨, 언론계의 이원홍 씨를 비롯하여 박영수 서울시장, 조상호 대한체육회 회장(당시), 이규호 문교부장관, 이연택 총리행정관, 그리고 당시 세계태권도연맹 총재였던 나를 포함한 올림픽 유치 기획단이 조직되었다. 그리고 내가 도중에 올림픽 유치 기획단으로부터 나온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였다.
어느 날 IOC 사무총장 모니크 베를리우 여사가 나에게 한 통의 편지를 보내왔다.
“당신은 국제경기연맹(GAISF)의 회장이면서 서울 올림픽 유치 대표단에도 이름이 들어 있습니다. 개최지 선정이라는 중요한 안건을 다루는 총회에서, 특정인이 두 가지 단체의 업무를 겸임하는 것은 규정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합니다. 또한 총회에 참가하는 경우, IOC 위원의 ID카드는 A로, GAISF 회장은 B로, NOC(국가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은 C로, 유치 도시 대표단은 D로 분류됩니다. IOC, GAISF, NOC 3가지 기구가 10일간 회의를 진행하는 사이에 D로 분류된 ID카드를 소지하는 분들은 입장이 안 됩니다. 단지 자기 도시를 설명할 때에만 한 시간 정도 입장이 허용됩니다. 역시 민간 유치단보다는 GAISF 회장으로서 회의장내에 24시간 올림픽 유치 활동을 하는 것이 효과적일 겁니다.”
나는 그녀의 친절한 어드바이스 덕분에 올림픽 유치 기간 내내 폭넓은 활동을 할 수가 있었고, 많은 대표들과 만날 수가 있어서 보다 신중하고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가 있었다.
당시 IOC는 브래너스 파크 호텔, GAISF는 벨뷰 호텔, 그리고 NOC는 바디서 호텔 등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우리들은 프랑스 레스토랑인 스탈바트와 중국 레스토랑인 차이나 팔레스를 중요한 접객 장소로 사용하였다.
그 당시 우리는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좋을지? 유치 자금을 어느 순간에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지가 판단이 잘 서질 않았다. IOC 위원들에게 저녁을 대접하거나, 고려인삼차와 연수정 장식품 등을 선물로 준 것이 기껏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고 말하면 누구도 믿지 못할 것이다.
여기에 비하면 일본 측은 IOC 집행위원들을 이미 나고야에 초청하기도 하였고, 그들에게 세이코 손목시계를 선물하는 등의 선심공세를 펴고 있었다.
당시 바덴바덴은 반(反) 서울 무드에 휩싸여 있었다. 특히 ‘북한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던 동구권 국가들은 외교 관계가 없는 서울에 올림픽 개최권이 주어진다면 보이콧할 것이다’라는 소문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었다. 더욱이 선수단의 안전, 대회의 조직 능력, 지역과 거리, 교통 문제, 그리고 분단국가라고 하는 특수한 상황들이 한국의 입장을 굉장히 불리하게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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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1년 바덴바덴에서 / 바덴바덴 IOC 조직위 사무총장이자 독일 IOC위원인 Troger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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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양측 도시를 소개하는 전시실이 아르토반호프에 설치되었다. 나고야 시는 오래 전부터 유치 준비를 해왔다. 특히 토쿄 올림픽을 유치한 경험이 있어서, 지속적인 경제 발전이 가져다준 정치적‧경제적 안정이라는 요소는 그들에게 상당히 유리한 재료였다.
그러나 나고야는 승리를 너무 빨리 확신한 것인지 총회에 임하는 자세와 준비가 한편으로는 미흡하게 보였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방심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나고야에 있어서 상대를 얕잡아 보면 안 된다는 교훈이 적합한 단어가 될 수 있겠지만 버스가 지난 후의 일이다.
나고야의 전시실은 단 두 사람의 여성이 홍보 요원으로 나와 있었고, 몇 장의 사진이 장식되어 있었을 뿐 별다른 특징이 없는 것으로 관람객들에게 호소하는 것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특히 나고야는 메인 스타디움을 비롯한 다른 경기장 및 제반시설에 관해서는 단지 계획서만을 제시할 뿐이었고, 실제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설명이 미흡하였다.
한편 우리 한국 측의 전시실은 새롭게 건설 중인 메인 스타디움을 포함해 준비 상황에 관한 상세한 설명과 사진, 안내서, 인삼차와 부채를 무료로 배포하는 등으로 활기가 넘치는 서울과 한국의 이미지를 어필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특히 한국의 전통의상인 치마저고리를 예쁘게 입은 5명의 KAL 스튜어디스와 3인의 미스 코리아가 매력적이고 우아한 몸짓으로 전시장의 안내역을 담당하고 있었다. 이 점에서도 나고야와는 상당히 대조적으로 관람객들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 이때 헌신적으로 봉사한 대한항공 스튜어디스는 김여옥, 유승희, 최승희, 김성미, 최정란이었다.
더구나 한국은 이미 메인 스타디움을 비롯하여 경기장 시설 등의 공사에 착수한 점, 서울이 올림픽 유치에 얼마만큼의 열의를 기울이고 있는가를 강조했다. 그 후에도 한국은 수 일간 계속된 회의에서 쏟아지는 질문에 적절히 대답하는 것에 전력을 기울였으며, 수차례에 걸친 난관을 무사히 극복했다.
예를 들자면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경제 차관을 빌려서 쓰고 있는데, 올림픽 경비는 어떻게 조달할 계획입니까?”라고 하는 질문에는 유창순 씨가 “경제 원칙상, 차관은 어느 국가에도 있는 것이며, 경제 차관과 올림픽의 경비는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라고 반론을 제기했다.
또한 “컬러 TV도 없는 국가(한국)에서 인공위성과 국제 방송센터를 연결하는 대규모 올림픽 방송을 원활히 진행할 수가 있는 것인가?”라고 하는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에도 ‘한국은 충분한 능력이 있고, 시설과 설비 그리고 기술 등도 전혀 문제가 없다’라는 점을 인식시키는 것에 성공을 하였다. 그야말로 바덴바덴은 개발도상국 코리아에 대한 질문과 호기심으로 융단 폭격을 당하는 전쟁터와 흡사했다.
작렬하는 한여름 날씨의 태양 아래서 악전고투하는 우리 대표단에게 돌연히 내리는 소나기를 만난 것과 같은 시원하고 웃을 수 있는 일이 생겼다. 그것은 바로 당시 나를 마음속으로부터 지지하고 지탱해 준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태권도 사범들의 존재였다. 그들은 박수남, 최원철, 김만금, 김광일 사범과 이금홍 세계태권도연맹 사무총장 등으로 최홍희 일파가 데모를 한다는 정보가 있어 바덴바덴에 집결을 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