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 방영권은 올림픽에서 가장 주요한 자금원이다. 서울 올림픽에서도 방영권의 협상은 흑자 올림픽이냐, 적자 올림픽이냐를 가늠하게 하는 가장 큰 수입원이었다.
1960년 CBS가 스퀘벨리 동계올림픽 중계료로 5만 달러를 지불하면서부터 시작된 텔레비전 방영권료는 텔레비전 보급이 늘고 스포츠의 인기가 확산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68년 토쿄 올림픽 때는 150만 달러 하던 방영권료가 ’76년에는 2천 5백만 달러, ’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은 8,000만 달러로 늘었으며 ’84년 LA 올림픽 때에는 2억 2천 5백만 달러로 뛰어올랐다. 이런 추세로 간다면 서울 올림픽의 경우는 5억에서 6억 달러의 방영권료를 받아야 한다고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는 예상했다. 그러나 조직위의 예상은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판단이었다.
올림픽을 처음 치러 보는 조직위는 국내대회 치르듯 일방적으로 각 종목 스케줄을 발표했다. 경기 스케줄은 종목별 국제연맹과 충분한 합의를 거쳐야 하고 텔레비전 시청률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방영권료 협상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미국과 한국과는 시차가 14시간이 있기 때문에 프라임 타임이라 할 수 있는 뉴욕의 오후 8시와 12시 사이에 주요 종목 결승전이 열려야 협상의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특히 미국에서 인기가 높은 종목인 육상과 수영은 경기 스케줄을 맞추기가 가장 어렵고 힘든데 이런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조직위는 주요 스포츠의 오전 결승 스케줄을 제멋대로 발표해서 종목별 국제연맹의 분노를 사게 되었다.
무언가 안 되는 일은 늘 내가 수습하던 때라 내가 처리 책임을 맡았다. 나는 먼저 육상, 수영, 체조 등 주요 종목의 국제연맹 회장들과 만나 경기 시간을 조정했고 그리고 나서 공식 TV 방영권 협상에 나섰다. 미국의 각 방송사와 만나본 결과 CBS는 3억 달러를 제안했고 ABC는 2억 2천 5백만 달러에 추가로 유선방송인 ESPN이 보장하는 최고 1억 3천 5백만 달러를 합쳐 제시했다.
NBC는 두 가지 안을 내놓았는데 무조건 3억 2천 5백만 달러로 하거나 아니면 3억 달러에 광고 수입이 6억 3천 7백 50만 달러를 초과하면 최고 1억 5천만 달러를 더 추가하겠다는 것이었다. 사실 이때 3억2천5백만 달러 안을 수락했어야 했다. 조직위는 최소 5억 달러를 기대했기에 실망한 눈치였는데 나는 5억 달러를 미국의 방송사들이 내놓을 만한 예산이 없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당시 NBC와 기타 방송사들의 연간 예산이 20억 달러 정도였는데 월드시리즈, 미식축구, NCAA 및 NBA 농구, 드라마, 뮤지컬에 투입하고, 제작비 3억 달러, 장비 구입 7천 5백만 달러를 투입하면 5억에서 6억 달러는 엄두도 못 낼 거라는 계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울 올림픽 방영권료 협상에 있어서 ABC와 CBS는 협상에 능동적이지 않았던 데 비해 NBC는 열성적이면서 신중한 태도로 우리에게 접근했다. 1차 협상에서 NBC는 5억에서 6억 달러를 생각하는 조직위의 입장과는 거리가 먼 3억 달러 선을 제시해 1차 협상은 결렬되고 말았다. 당시 함께 협상에 나섰던 이영호 체육부장관은 시간이 연기되면 가격인상이 있을 것으로 낙관했지만 상황은 그와 정반대였다.
2차 협상은 뉴욕에서 있었는데 ABC와 CBS가 별다른 성의를 보이지 않자 NBC가 자기들이 유일하게 진지한 입찰자임을 알아챘다. 당시 3억 달러를 제안한 방송사는 CBS와 NBC였는데 NBC가 하도 오만한 태도를 보여 2백만 달러만 더 내도 CBS와 계약하려 했는데 CBS의 입장은 3억 달러를 최종 마지노선으로 정한 채 완강히 버티고 있었다. 할 수 없이 NBC와 협상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IOC에서도 계약을 빨리 서두를 것을 종용했고 나는 국가적 자존심과 국익을 위해서 최대한 가능성을 타진해 보았다. 그래서 현실적인 절충안을 내놓았다. 그것은 기본금 3억 달러 이상을 절대로 내지 않겠다는 NBC 입장을 고려해서 기본금은 3억 달러로 하되 광고 수입이 6억 3천 7백 59만 달러를 넘어서면 최대 2억 달러까지 더 보장한다는 안을 제시했다.
사실 NBC와 방영권료 협상이 결렬되면 미국 TV 방영권료 협상은 완전 결렬된 것이 되고 그러면 다른 곳과의 협상에도 불리한 영향을 미칠 것이며 대회의 질이 뚝 떨어져 대회 개최 문제에도 막대한 영향이 미치게 될 것이었다.
NBC는 다음날 우리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러나 계약서에 서명하기까지는 더 많은 난관을 거쳐야 했다. 계약이 자꾸 미뤄지고 지연된 이유는 협상 자체의 복잡한 성격과 모든 권리 보호를 주장한 NBC의 요구 사항 때문이었다. 그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환불 조건이었다. NBC는 대회가 취소되거나 연기될 경우, 서울 근처에서 개최되지 않을 경우 등을 가정해 상환조건을 내놓았다.
총환불금에 해당되는 3억 달러의 액수로 된 신용장을 한국 외환은행에서 발행해야 하며 그것은 언제든지 NBC가 자동적으로 지불 요청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신용장을 요구하는 NBC의 입장은 이해가 가나 전례가 없는 일이어서 조직위원회나 정부의 입장에서 도저히 호의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문제였다. NBC는 모스크바 올림픽 방영 전 취소 경험에서 서울올림픽이 문제가 생길 것을 염려해 보호막을 치려했다.
IOC는 빨리 계약을 끝내고 일을 할 수 있게 우리에게 신용장을 발행해 주라고 조언했다. 사실 신용장은 별 탈 없이 대회가 진행되면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 것이었다.
’85년 12월에 나는 사마란치 IOC위원장을 방문해서 신용장을 정부에서 발행하도록 제의하겠으니 다만 몇 가지 보장이 어려운 항목을 제외시켜 신용장 적용 범위를 축소하도록 중재를 부탁했다. 사마란치는 즉각 NBC를 불러 내 제의를 받아들일 것을 설득했다. 그러나 NBC사장에 전화를 걸어 해가 바뀔 때까지 일방적으로 협상을 연기했고 ’86년 1월 13일부터 20일까지 뉴욕에서 또 한 차례 협상을 가졌으나 역시 똑같은 문제들만 재론할 뿐 진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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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OC본부에서 NBC와 서울 올림픽 방영권 서명식 (1986. 3.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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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최종 협상은 3월 17일 뉴욕에서 열렸는데 그때서야 비로소 여러 사항에 합의했고, 결국 3월 26일 스위스의 IOC 본부에서 IOC위원장, NBC(Arther Watson) 그리고 조직위(노태우 위원장) 대표인 내가 계약서에 서명했다.
신용장에 대해서는 우리 정부도 지급을 계속 미워 IOC로부터 매일 권고가 들어왔다. 나는 당시 체육부장관인 박세직 씨와 함께 청와대에 들어가서 전두환 대통령에게 1시간 30분에 걸쳐 상세히 설명하고 양해를 얻었으며 책임지고 교섭해 계약까지 마치고 오라는 격려를 받았다. 그렇게 해서 계약은 성사되고 그 이후 세계 방송사들과 협상을 계속하여 총 4억 8백만 달러의 방영권료를 끌어들였다. 방영권료는 순수입이며 180시간 생방송으로 전 세계에서 한국을 알리는 광고 효과는 돈으로 계산할 수 없다.
그 일로 인해 사마란치는 후에 바르셀로나,, 알베르빌, 릴레함메르, 애틀랜타 올림픽의 텔레비전 방영권료 교섭 임무를 부여했으며 IOC 라디오 텔레비전 위원회 위원장직을 맡게 된 것이다.
일본과의 방영권료 협상은 양국의 미묘한 관계로 볼 때 더욱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었다. 여론에서도 미국과의 방영권료 협상이 별로 좋지 않은 때여서 조직위원회는 일본 TV 방영권료 교섭에서는 더 나은 성과를 거두어야 할 입장이었다.
그러나 일본 방영권료 협상도 첫 단추가 잘못 꿰어 있었다. 이영호 장관과 당시 이하우 사무총장이 토쿄 시마 크리에이티브 하우스라는 회사의 야스히코 시마자키와 비밀 거래가 있었고 시마자키는 일본 TBS 방송사와 연결돼 있기 때문이었다. TBS는 사실 올림픽 방송 능력이 없는 회사였고 시마자키는 전문 방송인도 아니고 단지 중개 브로커에 지나지 않는 사람이었다.
일본은 LA 올림픽 때 1천 8백만 달러를 LA 올림픽 조직위원회와 방영권료 협상을 했기 때문에 IOC 측은 서울 올림픽 방영권료도 3천만 달러 내외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정부와 SLOOC 간의 몇 차례 대책 회의를 가졌는데 대부분 사람들은 최소 8천만 달러는 되어야 한다고 떠들었다. 아무런 대안도 없이 정확한 판단에 근거하지도 않고 높은 액수만을 제시하는 데 말문이 막혔다. 대부분 이런 사람들은 잘 되면 자기 공이고 안 되면 교섭자들의 책임으로 떠넘기기 일쑤인 부류들이다.
일본과의 협상도 전적으로 내게 맡겨진 교섭이었다. 나는 정말 최선을 다했으며 캘거리(Calgary) 동계올림픽보다 높은 가격을 받아 내길 바랐다. 최초 회담에서 일본 방송 풀단과 만났을 때 나는 일본이 캘거리 동계올림픽보다 훨씬 더 많이 내야 할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첫째 일본의 GNP는 미국의 3분의 1 수준에 육박하고 텔레비전 숫자나 광고 시장 역시 3분의 1에 달한다. 게다가 우리나라와 시간대가 같으므로 미국보다 유리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일본은 경기 스케줄이 미국 시간대에 맞춰졌고 광고 판매고는 미국의 5분의 1 수준이며 방영권료의 80%를 내는 NHK는 공영방송으로 시청료에 의해 운영된다면서 반론했다.
2차 회담에서 일본은 총 4천만 달러의 방영권료를 제시했다. 그때 나는 일본과 방영권료 협상을 낙관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별도의 회합에서 일본 측 대표인 NHK의 시마(Shima Keiji) 전무에게 우리가 제시한 7천만 달러를 현실적인 선까지 낮춰 볼 테니 일본도 5천만 달러에서 6천만 달러까지 끌어올려 보라고 말했다.
일본과 우리 경제계간의 교량 역할을 많이 한 사람으로 알려지니 박태준 포항제철 사장도 5천만 달러 이상은 곤란할 것이라고 귀띔해 주었다.
3차 회담에서 우리는 7천 8백만 달러로 더 높이 제시했고 일본은 4천만 달러 이상은 도저히 안 된다고 물러서질 않았다. 4차 회담도 별다른 진전 없이 양측이 팽팽히 줄다리기를 계속했다.
드디어 ’87년 2월 23일과 24일 회담. 서울의 내 조직위원회 사무실에서 열린 이 회담에서 일본 측은 마침내 5천만 달러를 제시했는데 이 액수는 내가 기다리던 바로 그 방영권료였다. 거기에 일본은 NHK와 KBS의 특별협력비로 2백만 달러를 추가했는데 그것은 최소한 5천만 달러 이상을 받아내야 한다는 내 입장에 대한 배려였다.
결국 5천 2백만 달러로 양측은 계약을 했고 계약 조건은 절반은 협상 45일 후에 지불하고 나머지는 다시 45일이 지난 후에 지불하는 것으로 했다. 대회가 끝나고 나서 지불하겠다는 다른 나라 방송사의 조건과 비교해서 이자를 계산한다면 이는 6천만 달러에 버금가는 액수였으며 일본 측은 다른 까다로운 조건도 계약에 삽입하지 않았다.
계약이 성사되자 일부에서는 도저히 될 수 없는 ’6천만 달러를 받을 수 있었는데‘라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했지만 전두환 대통령과 사마란치 위원장은 성공적인 계약 체결이라며 축하해 주었다.
후에 바르셀로나 올림픽 TV 방영권은 내가 6천 2백 5십만 달러로 일본과 방영권료 계약을 했는데 인플레로 인한 화폐가치나 올림픽 열기의 증가를 감안한다면 서울 올림픽보다 높이 평가될 금액은 아니며, 이 역시 서울 올림픽 때 일본과의 협상이 성공적이었다는 데에서 비롯된 급부라 할 수 있다. 그 덕에 태권도가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시범 종목이 되는 데 도움이 됐다.
그 후 나는 IOC TV 위원장으로서 2008년 베이징 올림픽까지 33억 달러의 TV 방영권 계약을 했다. 그간 한국이 지불한 TV방영권료는 거의 거져 수준으로 해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