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9월 24일 새벽 2시.
지중해에 접한 국제 관광도시 몬테카를로.
20세기 마지막 올림픽이고 21세기를 여는 2000년 올림픽 개최지를 결정하기 위하여 89명의 IOC 위원들이 모였다. 그리고 역사상 가장 치열한 투표전의 봉함 봉투가 열렸다.
베이징, 시드니, 맨체스터 등 올림픽 개최를 희망한 6개의 도시가 몬테카를로 중심가에 홍보관을 만들어 놓고, 뜨거운 홍보전을 전개하였다.
IOC 수뇌부가 묵고 있던 호텔 드 파리(Hotel de Paris)와 IOC 위원들이 묵고 있던 에르미타지(Hermitage) 호텔은 마치 전쟁을 치르는 것 같았다. 막대한 개최 비용의 조달 계획이 서지 않던 브라질, 밀라노는 이미 손을 들었고, 베를린도 자국민들의 반대로 사실상 철회한 상태였다. 그러나 호주는 키딩 수상을 필두로 300명 이상의 대표단을 파견하여 기세를 올리고 있었다. 중국의 베이징도 이난청 부수상을 단장으로 한 220명의 대규모 대표단을 보내와 그 힘을 과시하였다. 터키도 여성인 실라 수상이 진두지휘를 하였고, 영국은 메이저 수상이 전면에 나섰다.
특히 중국은 다른 어떠한 국가보다도 열심이었다. 자본주의 세례를 받기 시작한 중국은 2000년 올림픽을 기회로 복지국가 건설과 경제발전에 더욱 큰 힘을 얻기 위한 복안을 은근히 품고 이번 유치전에 임하고 있었다. 중국은 ‘보다 개방된 중국이 세계를 기다리고 있다’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대부분의 예상도 2000년 올림픽은 베이징으로 결정될 것으로 보고 있었다. 베이징은 1차 투표에서 32대 30, 2차에서 40대 37로 계속해서 시드니를 리드하고 있었다.
그러나 올림픽의 여신은 북경에 그렇게 달콤하지만은 않았다. 4차에 걸친 투표가 끝나자 마지막 투표 결과를 사마란치 위원장이 상기된 표정으로 읽었다.
“The Winner is Sydney"
45대 43. 승리의 여신은 호주의 시드니에 미소를 보냈다. 겨우 2표 차로 인구 12억의 거대한 대륙은 침통한 분위기에 빠지고 말았다.
역전된 이유는 여러 가지로 분석되었다. 영국 맨체스터가 같은 영연방인 호주를 지원한 것이 결정적이었다는 견해가 유력했다. 동남아시아 위원들이 시드니를 지원한 것도 또 하나의 요인이었다고 하는 분석도 있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이 몇 가지가 있다. 우선 미국의 상하 양원 의원들이 중국의 인권문제를 올림픽에 연관시켰던 점도 중국에 불리하게 작용하였다. 영국 외무성도 중국의 인권 문제에 관련하여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물론 정당한 스포츠 정신은 스포츠만으로 승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오늘날 한 국가의 이미지는 특정 분야에 한정된 문제만이 아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스포츠 등의 모든 분야는 거미줄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더 이상 특정분야만 나누어서 생각할 수가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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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4년 IOC 100주년 기념 IOC 집행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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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복잡한 연결고리가 약한 과거와 밀접한 현재를 비교하면, 미래에는 아마도 하나의 이미지가 모든 영역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 세계의 흐름에 따라 사고방향의 전환이 요구된다 하겠다. 동시에 스포츠에 대한 정치적인 영향도 배제할 수가 없다. 그러나 스포츠는 정치적인 문제로 장애를 만나기도 하고, 정치적인 문제가 스포츠라고 하는 순수 운동을 통해서 해결되는 것도 사실이다.
또 주목할 만한 점은 마지막에 벌어지는 유치 전략이다. ’96년 올림픽 개최지를 애틀랜타에 빼앗긴 호주는, 그때까지 4년간 개최지로서의 모든 조건을 통과하기 위하여 총력을 기울였다. “깨끗한 올림픽” 환경 보호를 가장 우선시하여 만들어 낸 호주의 표어였다. 전 세계인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환경 문제를 올림픽과 연결하여, 올림픽 역사상 가장 청결한 경기를 연다고 하는 이미지를 밀어붙이는 한편 최상의 자연 조건과 경기장 시설, 전 선수단에 대한 왕복 항공운임과 무료 숙박에 식사 제공 등 자연주의와 자본주의의 색채가 흠뻑 들어있는 슬로건을 내걸었고 이것이 설득력을 높였다.
’56년 멜버른(Mebourne) 올림픽을 개최한 적이 있던 호주는 8만 명 수용의 메인 경기장을 신축하고, 태양열을 이용한 무공해 선수촌을 운영, 에어컨이 없는 건물, 재활용품을 건축 재료로 사용한 경기장 등 환경을 최우선시하는 아이디어의 총 경연장이었다.
호주는 당시 지지자 20명을 시드니에 초청하면서 나도 초청했다. 나는 중국을 생각해서 당시 가진 않았다. 호주는 내가 시드니를 지원한 줄 알았고 그 덕에 시드니 올림픽에 IOC가 태권도를 넣을 때 호주올림픽위원회(John Coates)와 조직위원회가 쉽게 동의해주었다.
결국 중국은 호주에게 이미지 전략으로 지고 만 결과가 되었다. 지금 세계는 이미지 전쟁의 회오리 속에 살고 있다. 즉 세계 각국은 자국 고유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기 위하여 주야로 뛰고 있다. 이미지란 즉 경제력과 직결되어 있다.
‘한국’이라고 말하면 세계의 사람들은 무엇을 연상할까?
외국인이 우리나라를 미래가 있고 비전이 있는 국가로 볼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우리 자신이 우리의 문화를 명확하게 심어줄 필요가 있다. 그리고 동시에 전 세계가 공감할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일본과 멕시코는 올림픽을 통해서 새로운 국가 이미지 만들기에 성공했다. 올림픽 이전까지는 멕시코는 마리아치 모자를 쓰고 기타를 치면서 나무 그늘 아래서 낮잠을 자는 등 게으르고 뒤떨어진 국가라고 생각되었다.
일본은 전쟁을 좋아하고, 전근대적인 화장실을 갖고 있는 국가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멕시코는 세계인들의 인식을 바꿨을 정도로 국민적 노력을 기울였다. 일본은 30억 달러를 들여서 경제 재건 10개년 계획을 단축해 완성한 결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스포츠 등 모든 분야에서 놀랄만한 성과를 올려서 그 성과를 기초로 도약한 문화 국민이었다는 점을 세계에 알리기 시작하였다. 1964년 동경올림픽은 청결, 예의, 질서가 모토였다. 이제 도쿄는 2020년 다시 한 번 올림픽을 치룰 준비를 하고 있다.
역시 우리도 마찬가지로 서울 올림픽을 통하여 세게 속의 한국이라는 이미지를 만들 수가 있었다. 그러나 국제적으로는 경제력 면에서는 일본에 뒤떨어진다고 보이고, 여러 면에서 한발 뒤쳐져 있다고 보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하드면에서뿐 아니고 소프츠면에서는 더 크게 떨어져있다.
하지만 아직도 늦지만은 않다. 세계 속에 우리의 독자적인 스타일을 형성해 가자. 또한 눈앞의 쇼에만 집착하고 너무 국수적인 발상도 지양해야겠다. 우리에게도 힘과 능력이 있지 않는가? 우리의 미래는 충분히 낙관적이다. 우리의 긍정적인 면을 계속해서 개발하고 발전시켜, 세계 속에 우리의 확고한 이미지를 만들어야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