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프레젠테이션이 시작되었다. 내가 IOC위원으로서 한국을 대표해서 평창 유치 위원회의 대표와 프레젠테이션을 할 팀원을 소개했고 인사말을 했다. “한국은 서울 올림픽처럼 잘 준비해서 훌륭한 올림픽을 치를 테니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 ‘아’ 다르고 ‘어’ 다르듯이 내가 서울올림픽을 성공시켰고 태권도를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시켰기 때문에 내 말은 액면 그대로 잘 받아들여졌다. 프레젠테이션은 동영상과 함께 진행했는데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이 감독한 영상은 뛰어난 예술성과 감성을 일깨우는 수작이었다.
프레젠테이션이 끝나고 3개 도시 유치단이 퇴장하면서 IOC 위원 투표에 들어갔다. 1차 투표에서 잘츠부르크가 떨어졌다. 그리고 바로 이어진 2차 투표에서 밴쿠버가 56표, 평창이 53표 나왔다. 세계가 깜짝 놀랐다. 벵쿠버는 평창과는 비교도 안 되게 많이 알려진 도시였다. 휘슬러 지역에 인프라나 동계종목시설도 갖추어져 있어 평창과 하늘과 땅 차이가 나는 도시였다. 강원도의 이름 없는 산골 마을 평창이 잘츠부르크를 눌렀고 밴쿠버와 대등한 53표를 획득하다니… 그러나 어쨌든 결과는 우리의 패배였다. 예상된 패배였지만 표차가 박빙이었기 때문에 아쉬움이 더욱 컸다. 그러나 표가 너무 많이 나오니 여기에서 문제가 생겼다.
다음날 호텔 로비에서 미국 NBC 스포츠의 에베솔 회장을 만났더니 “축하한다. 어제 로게 위원장을 만났는데 평창이 한 20표 정도 나올 줄 알았는데 53표나 나와서 놀랐다.”고 말을 전했다. 스포츠지에도 보도된 사실이지만 매 올림픽에 10억 불 이상의 TV 방영권료를 내던 NBC는 동계올림픽이 평창에서 개최되면 광고수입이 5억 불 준다고 아시아지역 개최에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TV 방영권 교섭을 중단시킨 바 있다. 평창의 적은 밴쿠버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53표가 어디서 나왔는지 일본의 요미우리(Yomouri) 신문, 스위스의 르 텀(Le Temps), 워싱턴 포스트(Washington Post) 지(誌)가 분석해 놨다.
요미우리 신문의 2003년 7월 4일자 기사를 보면 “평창이 15표 정도를 획득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53표가 나온 것은 표 획득에 힘을 쏟은 김운용 회장의 영향력이 컸다.”라고 지적했다. 2003년 7월 9일자 Le Temps는 “평창이 잘츠부르크나 밴쿠버와 대등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 이변의 주인공은 김운용 위원이었다. 김운용 위원은 회의장 곳곳을 누비면서 아시아의 여러 대표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심지어 아랍 모든 대표들과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는 장면이 목격되었음이 이를 대변해 준다. 서울 올림픽 유치의 선봉장인 김 위원은 사마란치 위원장 체제 하에서도 IOC 위원들로부터 존경과 두려움을 동시에 받는 인물이고 평창의 53표는 불가사의한 존재인 김 위원 혼자서 48표(아시아 21, 아프리카 16, 동유럽 11)을 끌어 모은 것이 거의 확실하며 이는 현대 올림픽사상 유례없는 기록을 창출한 이변이다.”고 보도했다.
동계올림픽 개최도시 투표가 끝난 다음날 총회에서 나는 평창 지지에 감사하며 4년간 잘 준비해서 2014년에 다시 유치에 도전하겠다“고 인사를 했다. 열렬한 박수갈채가 있었다. 멋있는 페어플레이(Fair play)로 받아들여진 것 같다. 끝까지 우린 유치경쟁에서 스포츠맨십인 페어플레이를 했고 좋은 이미지를 유지하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며 이를 유치위원단 본부에 알려주었다. 총리에게도 통화하고자 했는데 회의 중이라고 해서 외무부 차관에게 전화를 대신해서 그편에 전달을 부탁했다. 그런데 어쩐지 반응이 좋지 않았다.
나는 그 다음날인 5일 오후에 있었던 부위원장 선거에서 로게가 적극 지원하는 하이베르크(Heiberg)를 57대 43으로 누르고 두 번째로 IOC 부위원장이 되었다. ’92년부터 ’96년까지 이미 IOC 부위원장을 역임한 바 있고 2001년에는 가진 악선거(로이터 통신, 2004. 6. 3 기사 참조)에도 불구하고 IOC 위원장에 출마해서 차점을 한 내가 로게 밑에서 부위원장을 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그리 영광스럽거나 달가운 일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내 생각은 개인적인 입장보다는 사마란치 위원장의 조언대로 4년 후 수석부위원장이 됨으로서 평창 유치에 최대한 힘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출마해서 당선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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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계체육대회 개막식 / 좌로부터 필자, 이수성 총리, 김영수 장관, 민관식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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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용학 국회의원은 축하는커녕 “김운용이 부위원장이 되기 위해서 평창에 투표하지 말자.”고 터무니없는 말로 언론을 통해 공격을 가했다. 꼭 될 것이라 기대에 부풀어 있던 사람들에게 유치 관계자들은 희생양이 필요했고 그 희생양이 나였다. 서울에서부터 떨어질 때의 시나리오였던 것 같았고 4년 후는 안중에도 없다는 생각이었다. 내 판단으로는 평창의 입장에서 기대 이상의 선전을 했으니 2014년의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그러니 희생양이나 책임전가, 패배의 구실을 찾기보다는 서로 격려해서 다음을 잘 준비하는 게 2014년을 위해 훨씬 좋을 거라 생각했다. IOC식이다. 여론도 비판보다는 긍정적이며 고무적인 방향으로 형성하는 것이 2014년 유치에 유리하다는 판단이었다.
강원도 춘천에서는 나에 대한 규탄대회가 있었다. 또 누가 동원했는지는 뻔한 일이지만 버스 100대를 동원해서 강원도민이 상경하여 여의도 고수부지에서 매국노라며 화형식을 했다. 화형식은 부시 미국 대통령급 인사를 하는 것인데 나도 부시급이 되어 오래 살겠다며 쓴 웃음을 지었다. 나중에 들으니 화형식 경비에 2억이나 들었고 사람 동원이 안 돼 45인승 버스에 각각 20명씩 나눠 타 상경했다고 한다.
국회 평창 특위(김학원 위원장, 함승희 간사)에서도 공청회를 열어 연일 나를 집중 공격했다. 증인들을 내세워 방해 내지 소극적 활동을 했다는 얼토당토 않는 주장을 운운하다가 자기들 임의대로 결론 내 버리고 TV 쇼는 나를 평창 탈락의 주범으로 몰아세우면서 구속력이 전혀 없는 나의 공직 사퇴를 결의했다. 나는 평생 스포츠를 통한 국위선양에 헌신한 사람인데 어이가 없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한국의정치판이었다.
그 과정에서 강원도가 선거구인 김진선, 김학원, 김용학 등은 2004년 선거를 의식했는지 심하게 언론플레이를 전개했다. 고 건 총리도 국민의 여론을 의식했는지 사마란치 위원장의 정성 담긴 조언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부정적 발언으로 나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외국 언론보도나 사마란치 위원장의 코리아 타임즈 기고문에는 평창 유치를 위해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가가 언급되어 있지만 이런 내용은 완전히 무시당했다.
희생양으로 낙인을 찍어 놓은 상태에서 그들은 무방비인 나를 일방적으로 매도했고 여론몰이로 나를 국익에 반하고 개인적 영달만 노리는 파렴치한 사람으로 얽어매었다. 나는 평생 국위선양을 위해 노력해 왔고, 서울 올림픽, 태권도 올림픽 채택 등만 봐도 알 것이다.
나는 김용학, 공노명, 최만립, 최 사무총장(최 대사)등 4명을 명예훼손으로 형사, 민사 소송에 고소했으나 별로 조사는 진행되지 않는 상태에서 나에 대한 검찰 조사가 시작되었고 내가 구속된 지 얼마 안 돼 검찰에서 기각권고가 있었다. 그래도 기각을 하지 않았다.
김용학 의원이 2004년 총선에서 낙선 한 뒤 두 번이나 나를 찾아왔다. 낙선한 뒤 변호사라도 해야겠는데 검찰에 사건이 걸려 있어서 일하기가 힘드니 기각해 달라고 했다. 지난 일에 대해서는 사과한다면서 사과 성명서를 가져왔다. 검찰도 “다시 조사하면 힘들다. 김 회장이 구속된 상태며 다 지나간 일이니 기각을 해 달라”고 해서 변호사에게 요청해 기각시켰다. 김용학 의원은 “왜 최고 당사자인 김진선을 고소하지 않고 자기를 고소했냐?”고 물었다.
나는 “2014년 평창이 다시 도전하기 위해서는 김진선 지사가 필요하며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김진선 지사가 밉더라도 고소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어차피 희생양은 한 명이면 족하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