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치소에 있는 동안 후배이며 나의 국회의원 후원회장인 김우식 청와대 비서실장(전 연세대 총장)이 몇 번 면회를 와서 위로를 해주어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다.
어느 날 병원에 당일 진료를 나가 있는데 김우식 청와대 비서실장이 면회 온다는 연락이 왔다. 면회 사절을 한 김정길 회장이 따라온다고 연락이 와서 사절할 수도 없게 돼 병실에서 함께 만났다. 김우식 실장은 경직해서 별로 말이 없고 밖에는 윤후덕 비서관이 대기하고 있다고 들었다. 김정길 말이 “마드리드에 가서 여러 사람을 만났고 사마란치 아들도 만났는데 싱가포르에서 내 제명 찬성 투표가 2/3가 나오면 평창에 불리하니 사퇴하는 것이 좋다는 여론이다”라는 나도 모르는 믿기지 않는 얘기를 하는 것이다. 더구나 나와 각별했던 사마란치 위원장의 아들이 그런 이야기를 할 리가 없었다. 만들어낸 이야기인 것 같았다.
‘IOC 백년사(百年史)’에는 그때 투표했으면 제명 정족수인 2/3은 안 나왔을 거라는 얘기가 나와 있다. 거기에 반대할 것이라는 IOC위원 40여명의 명단도 있다. 로게(Jacque Rogge)는 한국 측과 딜을 했다는 것을 본인은 부인하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싱가포르에서 IOC위원들이 정치적 사건으로 취급해 정족수인 2/3가 안 나오면 로게가 큰일 날 판이니 딜을 했다는 말이 나올만하다고 생각했다.
로게는 기소도 하기 전에 자격정지를 시키고 조사도 하지 못하면서 IOC 조사 운운을 공표한 사람이다. 다른 IOC 위원 경우와는 다른 이중 잣대를 썼다고 한다.
나는 김정길에게 “지금은 구금 상태에 있는데 사표를 구금상태에서 쓰는 것은 국가체면이 말이 아니니 어차피 5월 말 가석방 예정자로 되어 있으니 출소 후 쓰겠다”는 각서를 6월 15일자로 한국말로 써서 주었다. 김정길은 그것이 못마땅한지 밖에서 윤후덕 비서관보고 “오늘 중에 반드시 사표를 받아내라.”고 강력히 다짐을 하고 있었고 이를 본 김우식 실장은 불쾌해서 돌아가 버렸다고 한다. 윤후덕 비서관도 나의 연세대 후배로 괜히 입장만 곤란했던 것 같다.
여하튼 그날 각서를 써 주었더니 다음날 청와대에서 구치소에 윤후덕 비서관이 찾아와 우리가 도와주기 위해서는 5월 날짜로 사표를 써 달래서 구치소장의 소인 승인을 찍어서 5월 15일자 사표를 써 주었다. 그랬더니 가족을 통해 당장 그날 날짜로 써야 한다고 요청해서 귀찮고 피곤해 그냥 5월 9일자로 써서 이상수 의원에게 보여주었다. 또 청와대는 사표를 직접 IOC에 보내달라고 해서 우리 가족이 우체국으로 가 우편으로 보냈고 보낸 영수증을 청와대와 김정길에게 보냈다.
청와대에서 내 가석방과 관련해 IOC의 사표가 수리된 후여야 한다는 어거지 주장에 따라 가석방이 취소되었다. 그래서 예정된 5월 가석방은 청와대 허가가 안 나와 법무부가 막판까지 기다리다가 부결되어 나오질 못했다. 사표가 수리된 후 6월 30일에 출소하게 되었다. IOC에서 이것이 ‘협박이냐, 포기냐’ 하는 문제와 ‘자신이 직접 사표를 썼더라도 자의냐 타의에 의한 것이냐’는 물의가 있었지만 그냥 인터넷에 수리되었다고 발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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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년 IO집행위원회에서 / 이듬해인 2004년 정권의 압력에 의해 IOC위원 사표를 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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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구금상태에서의 협박이나 강압에 의한 사표는 무효(void&null)라는 것이 외국 기자들의 말이다. 법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자기나라 사람을 보호하고 힘이 되어줘야 할 정부가 거꾸로 상대방의 편을 들어 발등을 찍었다. 구치소의 공문 관인을 찍는 사람들도 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너무하다는 말도 있었다. 5월에 내보낸 사표는 IOC의 로게 명의의 수리서가 1년 후인 2006년 중반에 KOC를 통해 받았다.
스포츠 인테른 지(誌)와 AP 통신에도 기사가 난 일인데 나하고는 관계없이 월간 중앙의 한 기사내용으로 큰 소동이 났다.
그 기사는 11쪽에 걸쳐 나를 풀어 주는 대신 평창에 동계올림픽을 주고 김정길을 IOC 위원으로 만들기로 로게와 한국 정부, 청와대가 딜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청와대가 즉시 윤후덕 비서관을 보내 월간 중앙에 삭제 요청을 했다 한다. 그런데 월간 중앙 기자들이 ‘지난달 호에도 이종석 관련 기사를 삭제했는데 이제는 못하겠다.’고 거절했다 한다. 하여 청와대에서 다시 삼성에 부탁을 했고 이학수 실장이 직접 월간 중앙의 윗선과 연결해서 처리했다는 것이다. 이에 월간 중앙 편집장 이하 기자 전원이 사퇴했고 기자연맹이 성명을 발표했으며 로게의 사실부인이 이어진 것이다.
이때 병원에 있던 정대철, 김상현 의원은 분개하며 사표를 못 내게 만류했고 지금은 고인이 된 신상우 KBO 총재도 나중에 다 밝혀질 것을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2004년도 3월 방콕에서 소위 WTF 총재 권고 사표 처리 과정 때 일이다. 나를 사표 권고 처리 한 후에 창설자인 나를 명예총재로 추대했다고 들었는데 그것이 슬그머니 없어져 버렸다 한다. 그래서 동아일보의 장환수 체육부장이 문동후 WTF 사무총장에게 물었더니 총회에서 뺐다는 얘기다.
이상해서 총회 참석자인 박수남 부총재 등에게 물어보니 그런 것은 다룬 일이 없다기에 문 총장에게 따졌더니 서류상으로 처리한 것이다란 답변이었다. 그런데 더욱 이상한 것은 서류상으로 처리했다면 서류를 받아야 하는데 받은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나는 ’73년도에 내 독단으로 세계태권도연맹을 창설한 ‘창설총재’이니 창설총재로서의 더 큰 무게를 가지고 있어 명예 총재는 별 의미도 없는 것이지만 정부에서 태권도와 무관한 자들을 넣는 온당치 않는 처사로 전통을 망치는 결과를 갖게 되는 것이 염려되어 관심을 가진 것뿐이다. 로게가 퇴임한 후 조정원 WTF 총재가 사과하면서 그 때 로게의 압력이 상상 이상으로 대단해 결례했다고 한 일이 있다.
9월 4일은 태권도가 올림픽에 정식 채택된 날로 태권도의 날로 정해서 기념식을 열어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했는데 주인공인 나는 초대하지도 않았고 2007년에는 그나마 각 태권도 기구의 의견이 안 맞아서 기념식이 취소되었다고 한다. 요새는 국기원이건 세계태권도가 주최하건 창설총재인 내가 나가서 축사를 한다.
재판과정에서 북한의 장웅 IOC 위원이 서신을 보내 온 것이 신문에 실렸다. 내용인즉 액수는 밝힐 수 없지만 많은 지원을 받았고 도장을 가지고 다니지 않아서 영수증에 찍어주진 않았지만 늘 고맙게 생각하며 이것이 영수증이라고 하는 편지다. 장웅 IOC위원 말이 재판과정에서 자꾸 북한의 지원 액수가 150만 달러로 나오는데 계산해보니 400만 달러정도(물품 포함) 된다는 것이다. 장 위원은 재판에서 말하나 해서 끝까지 기다렸는데 끝까지 400만 달러 얘기는 없어서 의아해했다고 한다. 나는 만약에 400만 달러얘기를 했으면 횡령액수가 150만 달러가 아니고 400만 달러가 될 뻔 했다고 하면서 서로 웃고 말았다. 남북 체육 협력이 진행되고 있었고 아테네 올림픽에서 단일팀을 하기로 서로 내락이 있었다. 그것도 결국 물 건너가고 말았다. 대한올림픽위원회(KOC)가 북한에 지원한 120만 달러는 벌금으로 내가 전부 물어냈다. 결국 내 개인자산으로 스포츠 교류를 한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