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란치 위원장은 늘 “운동시합과 선거는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고 말해 왔는데 그 말이 맞다. “法(법)은 이쪽으로도 해석하고 반대쪽으로도 해석되는 것이다”라고도 했다. 그는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준비하는 한국을 보고는 “한국 사람들은 득표 활동보다는 제안 설명, 평가보고서만 가지고 자위, 자만해서 꼭 되는 줄 알고, 되면 자기가 했다고 하려고 승전 축하 준비만 하더라”고 했다. 상대방 나라들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말이다. 결과적으로 평창은 1차에서 프라하 총회의 51표보다 15표가 적은 36표가 나왔다. 2차에서는 51대 47로 소치에 졌다.
우리 측은 로게, 사마란치, 중국, 일본, 미국, 유럽이 소치를 지지하는 것을 믿으려 하지 않았던 결과다. IOC의 생리는 들러리 후보도시를 많이 세우길 좋아한다. 유치 후보도시들에게 “다 좋다, 좋다”면서 평가보고서도 다 개최능력이 있으니 후보도시 경선에 나오라, 나오라 하는 게 습성이다. 거기에 속는 건지, 로게의 말을 구실삼아 나가는 건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는 국민을 속이고 돈만 낭비하고 한탕 쇼만 잘한 꼴이 되어 버렸다. 대통령에게도 된다고 속이고 과테말라(Guatemala)로 오게 한 꼴이 되었다.
국민과 젊은이에게 큰 꿈과 무한한 비전, 세계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 전철과 고속도로 건설을 통한 강원 발전, 평창의 세계 동계스포츠의 메카로의 발전, 한국 동계스포츠 발전의 새 전기 마련이라는 큰 희망을 한껏 부풀려만 놓고 실망만 안겨 준 것이다. 외국에서는 두 번째 도전에서는 누굴 희생양으로 삼을 것인지가 또 하나의 관심사였다. 그런데 프라하 때와는 달리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가서 애쓰는 바람에 노 대통령을 희생양으로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당시 7월 11일자 중앙일보를 보면 재도전의 신중해야 함을 경고하면서 무조건 푸틴(Vladimir Putin) 탓으로 돌리는 것은 이해를 안 한다는 취지다. 4년 전에는 내가 있어서, 그리고 이번에는 내가 없어서 졌다는 말이 자조적으로 들린다고 했다. 4년 전 각 외신에서 분석했듯이 내 덕에 표가 많이 나온 것을 생각 못하고 모두 자기들이 한 것으로 착각하는 모양이다. 프랑스 IOC 총회 직후에 나온 일본 요미우리 신문은 한국의 53표 중 49표가 내 덕이라고 풀이했다. 돈 로비를 하든, 얼굴장사를 하든 스포츠 외교에는 거물이 필요하다. IOC 위원들과의 친분이 두텁고 신뢰가 있어야 로비가 통하는 법이다. 거물은 하루아침에 키울 수 없다고 중앙일보는 전제하면서 재도전을 하기 전에 패인을 철저히 분석하고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넷에서는 주로 ‘김운용 부위원장이 있었으면 100% 가능했을 터인데 그의 빈자리가 너무 컸다, 앞으로도 쉽지 않다, 김운용이 필요하다, 김운용은 마녀사냥의 희생양이었다, 왜 내쳤으며 후회하면 무엇 하나, 지난번 탈락은 김운용 탓이라더니 매장시킬 때 이럴 줄 몰랐느냐, 차기 위원장 후보를 우리 손으로 끌어내리는 우를 범하다니, 김운용을 대치할 세계 스포츠계의 거물은 하나도 없으며 앞으로 수십 년이 지나도 쉽게 만들어질 수 없다, 한국이 낳은 세계 스포츠계의 거물이자 영웅을 끌어내린데 대해 공개사과하고 책임지라’는 내용이 주종을 이루었다. 또 이시대의 거물이 없었던 게 가장 큰 패인이며 그가 왜 위대했는지 알겠다, 불멸의 스포츠 영웅을 복권시켜야 한다, 최고에 대해서는 시기와 모함을 일삼는 한국인의 근성타령이 폭주했다.
영국의 대(大)기자 데이비드 밀러는 7월 6일자 데일리 텔레그래프에서 소치의 승리와 평창의 패배 원인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차기 또는 차차기 동계올림픽을 노리는 아시아의 두 나라 즉 일본과 중국의 등 돌림, 러시아에 대한 동유럽권의 전폭적인 지지, 사마란치 전 위원장의 소치 지지, 소치에 대한 러시아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로게 위원장의 옹호, 그리고 나를 평창과는 하늘과 땅 차이의 여건을 가지고 있는 밴쿠버에 졌다고 희생양으로 삼아 가혹하게 투옥한 것에 대해 최소한 2명 이상의 반대투표다. 투표 얼마 전에 몇 번이나 싱가포르 IOC위원 능(Semiang NG)에게 물어 보아도 어려울 것이라고 하고 몽골의 마그반 위원도 모스크바에서 병원 치료를 받고 와서 알쏭달쏭하다고 전화를 걸어 달라 해서 걸었다. 벌써 소치로 넘어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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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년 일본 게이오대학 150주년 행사에서 / 좌로부터 필자, 박갑철 회장, 조광민 연세체육회 전무이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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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란치가 “과테말라에 오느냐”고 묻기에 “가야겠나?”고 했더니 “왔다가 또 안 되는 경우 뒤집어씌우면 어떻게 하느냐, 오지 말라”고 했다. 설마 또 뒤집어 싸우겠느냐 했더니 능히 그럴 사람들이라 했다. 사마란치가 소치를 지지하기 때문에 우리 대통령과의 조찬도 취소했다고 말이 많았다. 사마란치는 “밤늦게 도착해서 피곤한데 아침 8시 조찬을 어떻게 하느냐”면서 “푸틴에게는 리셉션 때 많이 몰려갔고 한국 대통령에게는 몇 사람 없더라”고 하면서 “한국은 IOC에서 너 없으면 아무것도 못한다는 좋은 교훈이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알렉스 길라디 이스라엘 IOC 위원은 한국은 좀 더 배워야 한다는 얘길 했다. 리우 올림픽이 끝난 후 최근에 길라디 위원을 만났더니 한국스포츠가 그 후 어떻게 되었느냐고 꼴 좋다고 말했다. 국제스포츠 사회는 무조건 밀어붙이면 되는 사회가 아니다.
말도 좀 안 만들면 좋겠다. 프라하(Prague) IOC 총회 때 박용성 회장이 아벨랑제(Havelange) 회장이 한 나라에 두 마리 토끼는 안 준다고 했다고 말하고 다닌다고 하기에 그러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더니 삐져서 그 후 오늘날까지 연락이 없었다. 그는 얼마 전 수천억 원 횡령, 분식 등으로 유죄판결을 받고 IOC로부터 자격정지처분을 받더니 국제유도연맹 회장을 사임하게 되어 IOC 위원(IF 회장 자격)도 자동 사임되었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되어 온 알제리(Algeria)의 라파우이(Lafaoui) 국제수영연맹 회장(IOC 위원)이 두 마리 토끼를 한 나라에 주지 않는다고 했다는 말을 누가 만들었냐고 한국 당국에 말했고, 프라하(Prague)에서도 내가 자기보고 한국을 지지하라했지 언제 찍지 말라했느냐고 했다.
2008년 3월 광주의 2013 하계유니버시아드 유치 문제 등으로 사마란치(Samaranch) IOC 종신 명예위원장을 만났더니 “김 위원장은 서울 올림픽을 유치 성공시켰고, 태권도를 올림픽에 넣었다. 들어갈 것을 들어갔느냐, 김 위원장 때문에 들어간 것 아니냐. 그리고 한국 체육을 세계 정상에 끌어올리지 않았느냐, 그것을 이렇게 치느냐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 그리고는 “각 분야 최고(Number One)은 다 치는 모양이다. Sports No.1 김 위원장을 치고 Business No.1인 이건희를 치고 있는데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 그 후 이건희 위원도 특검조사로 비자금, 비실명통장, 상속문제로 주식변칙증여, 탈세 등으로 3년 징역, 5년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2008년 4월 발간된 『올림픽경기와 IOC의 공식역사-100년사 아테네에서 베이징까지(Olympic Games and IOC official history-from Athens to Beijing)』, 데이비드 밀러(David Miller) 저작에는 평창의 패인, 희생양 만들기, 검찰의 기소내용과 재판, 김 위원 지지자들의 성명, IOC가 싱가포르 총회에 제명안을 냈을 때의 부결가능성, 청와대와 Rogge(로게)의 밀회, 강압적인 사표소동, 정치세력에 의한 희생양이라는 유엔인권보고서 등 자세한 내용이 실려 있다.
역사는 밝혀지고 살아있다는 것을 느낀다. 책에는 김진선 당시 강원도지사가 두 번의 유치활동에 예산 5000만 달러를 쓰고 연막작전, 비켜가기 작전으로 3수를 주장하는데 경쟁도시가 많아 어려울 것이라고 결론 짓고 있다. 국민이나 IOC는 세 번째 도전이 결코 쉽지 않다는 생각했지만 김진선 지사는 평창을 삼수로 끌고 갔다. IOC 100년사에서는 이를 면피용이라고 보고 있다. 후일 어마어마한 혈세를 투입한 내용을 밝히고 책임을 져야 하며 가능성을 철저히 검토할 것을 요구할 것이다.
지방자치제가 활성화 된 후 최근 너도 나도 국제대회 유치를 앞 다투고 있다. 그들은 국제대회 유치의 경제 유발효과가 몇 십조가 된다고 선전한다. 그러나 마케팅 가능성이 없는 대회를 숙박, 항공료 등을 모두 대주면서 나중에는 정부의 지원에 의존하려고 한다면 아까운 국민 혈세의 낭비만 초래할 뿐이다. 좀 더 면밀히 타당성을 검증하고 조정해서 유치에 쓸 돈이 있으면 국민 세금을 감해주고 필요한 복지에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2020년 도쿄올림픽의 마케팅 수입은 우리 평창의 수십 배가 된다. 지금 김진선 전 도지사가 벌여놓은 평창은 어떤 상태이고 그는 어디로 갔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