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현역 중령 때 5.16 군사혁명이 나서 국방부 장관의 보좌관을 거쳐서 내각 수반 의전비서관으로 근무했다. 당시 내각수반은 송요찬 장군(전 육군 참모총장, 4.19 계엄사령관)이었다. 그는 외무장관과 경제기획원 장관 등을 겸임하고 있어 나도 그쪽 일을 보았다.
나중에 박정희(1개월반), 김현철(자유당 때 재무·부흥장관) 씨가 내각수반을 담당하였고, 나는 이 세 분들을 모시고 일을 하였다. 권력의 핵심에 접근해서 근무하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정치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하기보다는 군에 있던 시절부터 인연을 맺었던 송요찬 장군과의 개인적인 친분 때문에 내각수반의 의전과 통역 관계의 일을 담당하였다. 송요찬 장군은 자유당 시대에 육군 참모총장을 지냈다. 나는 당시 수석부관이었다. 김성진 대위(11기 1등 후에 과기처 장관), 이병관 대위(12기 1등)도 함께 근무했다. 그런데 그 때 4․19 의거가 일어났다.
4․19 학생혁명은 3․15 부정 선거에 대한 저항으로 시작되었다. 마산에 이어서 서울로 퍼졌고, 마침내 고려대학교 학생들의 데모로 발전했다. 여기에 대한 정부의 대처는 너무나 폭력적이었고, 비민주적인 발상이었다. 정부는 정치 깡패들을 이용해 대학생들의 데모 행렬을 습격했고, 이 사건은 시민, 학생들의 저항을 한층 과격하게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일반 시민들도 학생들에게 동조하여 정국은 통제할 수 없는 상태에 빠져들었다. 학생들과 시민의 행렬이 경무대(당시 대통령 관저)까지 이르게 되자, 이것을 저지하려고 경찰대가 발포를 해서 수많은 시민들이 귀중한 생명을 잃었다. 이에 격노한 시민, 학생들의 항거는 더욱 거세졌다. 이때 경찰은 데모진압용 물대포나 페퍼포그도 없었고 급해서 카번총을 발사한 것 같다. 데모대는 길에 있던 블록 등을 깨서 대항했다.
4월 19일 오전 11시경 효자동 도로에서 경찰의 발표가 있었고, 오후 3시경에는 송 장군이 경무대로 불려갔으며, 얼마 후 계엄령이 선포되었다고 알려왔다. 이에 따라서 군은 비상 동원체제에 들어갔다. 그 후 주위 분들로부터 듣기로는 각료회의에서 비상계엄령을 발포하기 이전으로 소급해 선포하자고 했다 한다.
그러나 송 장군의 강한 반발로 비상계엄령 선포는 15시로 변경되었다. 송 장군은 서울에는 30, 33 예비사단밖에 없어(1개 사단은 2천 정도) 서울의 혼란한 상태를 수습하기 위해서 양평에 있는 15사단을 경복궁에 진주시켰고, 조재미 사단장의 지휘권 남용을 막을 감독관으로 육군본부가 이석봉 준장을 임명할 정도로 신중한 대응을 취하였다.
군이 19일 심야부터 20일 새벽에 걸쳐서 고려대학교에 집결하고 있던 데모대를 포위하여 1,900명 전원을 구금하면서, 사태는 일단 수습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송 장군은 ‘학생은 폭도가 아니다’ 라며 방화범을 제외한 데모대 전원을 석방 조치했다. 경찰이 실탄 10만발을 빌려달라는 요청도 없다 그러라고 거절했다.
경찰은 불법을 저지르는 모든 사람들을 엄벌에 처한다고 선언했던 중이라 경찰의 방침에 정면으로 대치한 송 장군의 조치에 경찰은 못마땅해 했다. 이때는 이미 내각이 총사퇴해 명령 계통은 군의 총사령관인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송 장군에게 직접 내려올 때였다.
비상계엄령에 대해서 군은 정치 문제에는 관여할 능력도 없었기 때문에 군은 명령에 따라서 치안만을 회복한 후 정치적인 해결을 기대한다는 입장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3․15 부정 선거의 가장 주요한 표적인 이기붕 국회의장이 6군단에 숨어 있다 나타나 부통령 당선을 사임함으로써 일차적인 수습은 이루어질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계엄사령관인 송 장군이 외신기자들과 이기붕 씨 사퇴와 부정선거 책임자 처벌, 선거 재실시 등 수습에 관한 소식을 주고받던 중에 보도국장이 급히 들어와서는 놀라운 소식을 전해 왔다. 지금까지 이기붕 씨의 사퇴로 수습의 해결점이 보이고 있던 중에 이기붕 부통령 당선자가 사임을 고려한다는 내용이었다. 송 장군과 외신기자들, 그리고 나마저도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그리고 장면 부통령이 사임한다는 발표가 먼저 나왔다.
국민의 불만이 극에 달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러자 자유당 정권에서는 송 장군이 강경 진압책을 실시하지 않으면 당장 해임시킬 것이라고 압력을 가해오기 시작했다. 당무회의에서도 그를 소환해야만 한다는 전화가 쇄도했지만, 그는 무시해버렸다.
드디어 사태는 정부에 대한 불신감에서 배신감으로, 마침내 국가에 대한 증오감으로까지 커지기 시작했다.
4월 25일 대학교수들까지 참가한 전국 규모의 데모로 인하여 26일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로 발전했다. 이것은 세계의 정치 역사에도 선례가 없는 학생 혁명이었고, 무혈 혁명이었으며, 또한 학생들과 시민 그리고 군까지 일치단결한 국민 혁명이기도 했다.
학생들과 시민들은 일체가 되어 독재 정권을 쓰러뜨리고, 군도 국민의 편에 서서 국가의 최고 통수권자인 대통령을 보호해 정치는 정치가들에게 맡기는 특수한 혁명이기도 했다.
교수들의 데모와 일반 시민들의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어 이 대통령이 하야하고 국민의 지지를 잃은 이기붕 의장은 관사에서 가족과 함께 시체로 발견되었다. 자유당 정권은 그 마지막 장을 비참하게 마감하였고, 국민은 새로운 시대를, 그리고 새로운 역사를 일으켜 세우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