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OC 위원에 대해 올림픽 귀족들이라며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구성이 스포츠 실무형으로 많이 바뀌었다. 명예직임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오해를 받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 이것은 아마도 IOC 위원들이 향유하고 있는 여러 가지 특권에서 유래하는 것 같다.
전 세계 어디든지 비자 없이 출입국이 가능하며, 호텔에 숙박을 할 때에는 그 나라 국기가 게양되고, 국가원수 또는 수상급의 대우를 받는 것 등이 그랬었다. 활동에 따라서 수당이 지급되지만, IOC의 내각이라고 하는 IOC 집행위원의 경우에는 모든 비용과 경비가 IOC 재원에서 지출된다. 일반 위원들의 경우 풀타임으로 일을 하지 않기에 총회를 비롯하여 각종 회의와 행사 때에는 그 때마다 적절한 경비가 지급되고 있다.
IOC 위원들 중에는 그 나라에서도 영웅으로 대우를 받고 있는 사람도 있고, 또 거기에 상응하는 자격도 충분히 있다. 비선수 출신의 경우라도 위원 자격 진행 수속과 검증을 거치므로 적합한 자격이 없이 IOC 위원이 되는 경우는 불가능하다.
IOC 위원은 인격과 국가적 업적 등의 여러 가지 면에서 존경을 받는 사람이어야만 한다. 바꿔서 말하자면 그들은 IOC 위원이 아니라도 국제적으로 그만한 존경과 특혜를 받을 수가 있는 지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 가치가 바로 “Noblesse Oblige” (노블레스 오블리주: 고귀한 신분과 함께 하는 도의상의 의무)다.
IOC 위원이 된다고 하는 것은 곧 개인적으로도 커다란 명예이지만 그 지위에 올랐다는 것 자체로도 국가적인 위상을 높이는 일이다. 노벨상을 수상하거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것처럼 자국의 명예와 위용을 세계에 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더 평화롭게, 보다 나으며, 더 잘 사는 사회를 만들자는 올림픽 정신을 실천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고 가치가 있는 일인 것이다.
나 역시 IOC를 대표하는 IOC 위원이 되었고, 세계를 무대로 활동한다. 동시에 한국인으로서 우리나라의 국익을 위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발 벗고 나섰다.
’86년 아시아 경기대회와 ’88년 서울 올림픽은 IOC의 협력 없이는 결코 성공할 수 없었던 평화 시 세계최대제전이었으며, 나는 IOC 위원으로서 또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실행책임자로서 국가의 발전과 세계 평화를 위해서 작은 힘이나마 보탤 수 있었다는 점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IOC위원 생애에 자기 나라에서 올림픽이 열리고 또 그 올림픽대회를 책임지는 IOC위원이 몇 사람이나 되는가.
나는 IOC 위원으로 선출된 1년 10개월 후인 1988년에는 최고의사 결정기관인 집행위원회에 들어갔다. 당시 7인의 집행위원 중에서 에릭슨 위원과 같은 사람은 IOC 위원이 된 후 무려 25년이 걸려서 집행위원이 되었으며, 사마란치도 2년 차에 도전했을 때에는 낙선을 하고, 집행위원이 되는데 4년이 걸렸다.
|
|
| ▲ 1999년 IOC 집행위원회 / 왼쪽부터 Gosper, Bach, 필자, Rogge |
|
1년 10개월이라고 하는 나의 기록은 그 누구도 IOC 위원으로서는 얻지 못한 초스피드 승진이었다. 아마도 서울올림픽을 성공시키는 책임을 진 것, TV방영권 교섭에 성공한 것, 각 종목 경기연맹과 경기스케쥴을 조정한 것,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권 참여를 성공시킨 것 등이 인정된 것 같다. 그리고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직전의 총회에서는 5년 9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에 부위원장에 선출되었다.
나의 이런 신기록 경신 행진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당신은 참 운이 좋군요.” 이 말에 대해서 전부 부인할 생각은 없다. 뒤돌아보면 천운도 많이 따랐던 것이 사실이다. 사마란치와의 불화로 사임한 모니크 베를리우스(Monique Berlioux) 전 사무총장도 놀랍다는 축하서신을 보내왔다.
청운의 꿈이었던 외교관의 길에서 멀어지면서 인연을 맺은 스포츠가 바로 태권도였고 이것이 곧 결정적인 운명의 전환점이었다.
황량한 허허벌판 산꼭대기에 세운 국기원을 자력으로 건립하자마자 닥쳐온 중동 오일 쇼크. 그 동안 IOC 위원장 선거 전까지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투표 대결, 그리고 가족들의 일에 이르기까지 하늘의 도움을 받은 것에 대해서 감사를 올린다. 하지만 나의 이런 결과를 가져오기까지는 최선의 노력을 다 했고 그것이 많은 지원과 협력을 가져왔다고 자부할 수 있다.
나는 허풍을 떠는 것을 제일 싫어한다. “준비는 소리 소문도 없이 행하라. 그러나 결정은 신속하게!” 이것이 나의 생활신조다. 준비 과정에서 소리만 요란하고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그래서 끝마침이 중요하다. 모든 승부는 마지막까지 알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마란치 위원장은 늘 운동시합과 선거는 뚜껑 열어봐야 안다고 말했다.
지난 1993년 제31대 대한체육회 회장 선거에 출마하여 역시 투표를 통해서 당선되었다. 올림픽 회관에서 열린 대의원 총회 1차 투표에서 나는 재적 대의원 41명의 과반수를 넘는 26표를 얻어서 13표를 얻은상대방을 더블스코어(Double Score)로 상대 후보를 누르고 4년 임기의 회장직에 취임했다.
당시 IOC 부위원장이라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대한체육회 회장 경선에 나가는 것은 별로 좋은 모양새가 아니라는 의견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국내 체육 관계자들은 나를 추천했다. 서울 올림픽 이후 침체된 한국 체육을 세계 정상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주위 사람들의 결의에 찬 추대를 받고 나는 출마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대한체육회장으로 재임한 9년반 동안 상당히 바쁘게 생활했다. 2002년 부산 아시아 경기대회 유치에도 성공하였지만,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와 2003년 대구유니버시아드 대회의 성공을 위해서도 박차를 가했다. 1997년 무주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 1997 부산동아시아대회, 1999년 용평동계아시아대회도 잘 치렀다. 또 지금처럼 막대한 세금을 투입하지도 않았다.
또한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과 선진기술의 도입, 새로운 스포츠 과학을 이용한 국제경쟁력 강화 등에도 힘을 기울였다. 특히 선수들의 약물 복용 문제가 세계적인 골칫거리여서 거기에 대한 대책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실정이었다.
지금까지 겪어 온 수많은 승부 중에서도 최대 하이라이트는 역시 1994년 태권도 올림픽 정식 종목 채택이었다. 이 민족적인 쾌거는 내 개인적으로도 커다란 영광을 안겨주었다. 그 해에는 대부분의 매스미디어가 태권도의 쾌거를 10대 뉴스의 톱에 올려놓았다.
그 때문에 나에 대해 각 매스컴은 ’94년의 10대 인물’ ‘광복 50년, 한국을 바꾼 100인’ ‘한국을 이끌고 나갈 50인’ 등으로 소개했었다. 그러나 나는 늘 정말로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라고 생각하고 달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