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88년 올림픽을 계기로 전 세계에 그 존재를 알릴 수가 있게 된 도시가 되었고, 올림픽 운동이 하나의 국가와 도시, 혹은 지역발전에 얼마나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는가를 증명해 보였다. 더구나 서울은 세계 스포츠 운동의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도시로 성장하고 있는 중이었다.
경기력으로 보아도 우리는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12개의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남미 국가들의 금메달을 다 포함하여도 14개뿐이었다. 브라질은 그 남미 국가 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이런 의미에서라도 우리 한국이 브라질에게 양보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이러한 상황 판단 하에서 우리는 서울 총회 유치를 위하여 로비 활동을 시작하였다. 리우 측은 강력한 후원자들인 라틴계 위원들을 총동원하여 서울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아벨란제(Havelange)와 바딜라(Podhilla)는 물론이고 이탈리아의 네빌올로(Nebiolo)와 국가올림픽위원회 연합회(ANOC)의 회장이기도 한 멕시코의 마리오 바스케스 라냐(Mario Vasquez Rana)까지 나서서 서울 유치를 반대했다. 아무런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그들도 아마 IOC 내부에서 상승하고 있는 나의 영향력을 경계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나와 친분이 있는 위원들의 협력을 얻어내 리우의 사회적 안정성에 문제점이 있다는 점과 총회 개최 능력에 대한 문제점 등을 거론하며, 만약 리우에서 개최된다고 하여도 서울 이상으로 성공할 보장은 없다는 점을 들면서 대대적인 역공세를 취하였다.
이탈리아의 카라로(Carraro) 위원이 나를 찾아왔다. 그는 로마 시장과 교통장관을 역임한 인물이었고, IOC 내부에서도 아벨란제의 강력한 후원자로서 널리 알려진 사람이었다. 그는 나에게 ’99년은 리우에서, 2001년은 서울에서 총회를 개최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제안해 왔다.
브라질은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유치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데 브라질의 체면도 생각해야 하지 않느냐고 호소하는 것이었다. 나는 역으로 제안을 했다. “1999년은 서울에서 개최하고, 2001년은 리우에서 총회를 열자”고 하는 정반대의 안이었다. 이렇게 양측의 주장은 완전히 대립되었다. 그 이상 타협의 여지는 있을 수가 없었다.
부다페스트 총회 마지막 날 폐회 직전에 ’99년 총회 개최지 선정 문제가 상정되었다. 제안 설명을 통하여 아벨란제는 마지막까지 리우의 개최에 열변을 토했고 나도 역시 IOC 총회가 왜 서울에서 개최되어야 하는가를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 동안 올림픽 운동을 위하여 우리가 해온 노력과 총회 준비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하자 많은 위원들로부터 호의적인 반응이 있었다. 아프리카의 올림픽위원회 총회장인 콩고의 강가(Ganga) 위원은 제안 설명에서 “서울은 리우를 녹아웃(knockout)시켰다”고 말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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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9년 서울 IOC총회 개회식 / 우로부터 김운용부위원장 내외, 김대중대통령, 이희호여사, 사마란치위원장 내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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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표 대결만 남겨 놓게 되었다. 라틴계 위원들은 모두가 리우의 절대적인 우위를 믿고 있었지만, 많은 위원은 표가 백중세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서울이 이기리라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 정도로 그때까지는 세계 스포츠계에 있어서 라틴계의 영향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예상 그 자체가 결과는 아니었다. 결과는 대다수의 예상을 뒤집고, 서울이 53대 31로 리우에게 이겼던 것이다. 라틴계로 보면 모처럼만에 패배의 아픔을 맛보게 된 것이었다.
아벨란제는 패배를 인정하는 연설 중에서 서울의 승리를 축하해 주었다. 나는 아벨란제에게 감사함과 동시에 아벨란제의 몫까지 더해서 열심히 총회를 준비할 것을 약속했다. 아벨란제가 말년에 수뢰혐의로 자격정지가 논의되자 IOC를 사퇴했는데 그의 공은 크다.
총회가 끝나고 밖으로 나가자 쿄토통신의 런던 지국장인 타케우치(Takeuchi) 기자가 인터뷰를 요청하였다. 질문의 요지는 서울이 리우에게 이겼기 때문에 월드컵 유치 때는 불이익을 당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이었다. 나의 대답은 하나뿐이었다. 그는 그 후에 2002 FIFA 월드컵이란 책을 낸 사람이다.
“월드컵은 유치할 능력이 있는 국가가 유치를 하는 것이기에 아벨란제 개인의 의사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FIFA에는 21명의 집행위원이 있지 않습니까? 그들이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서 올바른 결정을 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사실 FIFA에는 21명의 집행위원들이 있다. 그 중에 유럽이 8명, 미주 대륙이 8명, 아시아가 3명, 아프리카가 3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FIFA는 IOC와 달리 총회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집행위원회가 결정을 한다. 사마란치 위원장은 IOC도 총회가 아니고 집행위원회에서 개최지 선정을 하는 문제를 고려했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나는 이번 기회를 계기로 하나의 교훈을 얻었다. IOC 총회를 유치하는 것은 국제 경기대회를 유치하는 것과는 약간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은 대중적인 스포츠 행사가 아니고 IOC 자체가 벌이는 행사 그 자체이며, 얼마간의 비즈니스적인 측면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총회는 IOC 내부에서 영향력이 있는 위원들과 IOC에 많은 기여를 한 국가의 도시에서 열리는 것이 관례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에 유치 경쟁에서 서울이 승리한 것은 내 개인적으로 보아도 커다란 의미를 갖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이번 기회에 국제 스포츠계를 무대로 한 나의 실력을 시험해 보고픈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1986년에 IOC 위원이 되었고, ’88년에는 집행위원, ’92년에는 부위원장의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이번 총회에서는 수석 부위원장에 취임하였다.
그러나 IOC 위원들의 분포도를 보면 유럽은 40명의 위원, 남미 20명, 아프리카 20명, 오세아니아주 5명, 그리고 아시아가 13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동양인으로서 나의 입지는 별로 넓은 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최대 그룹인 라틴계와 정면 대결이라는 형태를 띠고 도전을 했다. 사마란치의 후광을 업고 IOC를 영구 집권하려고 하는 야망을 불태우고 있는 그들과의 경쟁은 국제무대에 있어서 나의 영향력을 직접적으로 시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결과적으로 나의 외교력은 서울의 승리에 의하여 다시 한 번 입증할 수가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때까지의 표 대결에서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다는 기록을 경신하게 되었다. 아무튼 서울은 ’99년 총회를 통하여 전 세계의 이목을 크게 집중시키는데 성공을 하였다.
서울총회가 무슨 역사적 의의가 있는지는 아무도 이해 못 했고 총회 개최 비용은 항공료·숙박비를 포함 전액 IOC가 부담했고 한국이 부담한 것은 우리가 주최하는 만찬비 등으로 2억원 정도였다. 배울 만한 일이다. 부다페스트 총회에서 김영삼 대통령은 한국의 추가 IOC위원으로 이건희 씨가 선출되기를 희망했지만 이 총회에서는 IOC위원을 한 사람도 안 뽑았다.
